배달·냉동 음식 없이 일주일을 살았다..직장인 7인의 집밥 분투기[끼니로그]

최미랑 기자 2022. 7. 2.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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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밥 인증 챌린지’는 경향신문 식생활 뉴스레터 끼니로그 독자님들과 함께한 두 번째 이벤트입니다. 끼니로그 구독을 신청하세요. 좋은 식습관을 위한 맛있는 이야기를 메일함으로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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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매주 금요일 오전 끼니로그를 보내 드리는 도토리 에디터(34)입니다.

사 먹자니 달고 짜고 비싸고, 해 먹자니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고. 이 글을 읽고 계신 독자님도 혹시 끼니마다 이런 고민에 빠지시나요?

‘집밥 인증 챌린지’ 오픈채팅방에 서로 공유한 우리의 끼니들.

코로나19 대유행이 휩쓸고 간 지난 2년 반 동안 우리의 식생활도 크게 흔들렸습니다. 끼니로그 독자 하이님(29)은 재택근무 와중에 냉동식품과 배달음식으로 식사를 계속하다 몸이 부쩍 무겁게 느껴져 식습관을 바꿀 필요성을 느꼈다고 합니다.

슬기님(33)은 2주간 호텔에서 격리 생활을 했는데, 끼니마다 엄청난 양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오는 것을 보고 앞으론 직접 요리하는 횟수를 늘려 나가야겠다고 결심했대요.

하이님과 슬기님을 포함해 끼니를 직접 챙기는 일의 중요성에 공감하는 일곱 명이 모였습니다. 각자 처한 환경은 다르지만 건강을 위해서도 환경을 위해서도 외식과 배달 음식, 가공식품에 의존하는 지금의 식생활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루에 한 끼라도 ‘집밥’으로 먹는다는 목표를 세우고 각자의 주방에서 분투한 열흘의 기록을 나눕니다.

뉴스레터 끼니로그를 통해 참여자를 모집했어요.
집밥이란 무엇인가

챌린지는 지난 13일부터 22일까지 열흘간 진행했습니다. 줌(ZOOM) 화상회의와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으로 서로 소통했어요.

첫 사흘은 각자 식사 일기를 쓰며 식생활 습관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이후 일주일 동안은 하루 최소 한 끼를 ‘집밥’으로 먹고 사진과 일지를 인증하기로 했습니다. 이 과정을 돕기 위해 도토리 에디터가 만든 ‘끼니로그 식생활 점검 키트’를 참여자들께 발송해 드렸습니다.

식습관을 돌아보고 집밥을 계획할 수 있도록 질문지를 만들었어요. 대파가 그려진 노트에는 식사 일기를 씁니다.

음식이 단순한 즐길 거리가 아니라 우리 몸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매개라는 사실을 가장 알게 해 주는 활동이 바로 식재료를 직접 다뤄보는 일입니다. 마트에서 나온 가공 식품이나 식당에 잘 차려진 한 상만 접하다 보면 그 음식 안에 무엇이 있는지를 자주 잊게 돼요. 전문가들이 “건강을 생각한다면 직접 요리를 해 보라”고 조언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집밥’의 장점을 취하려면 어디까지 ‘집밥’으로 인정해 주는 게 좋을까요. 챌린지 시작 전 온라인 화상 회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한 후 다같이 이런 원칙을 세웠습니다.

1. 인스턴트와 가공식품은 최소화합니다.

2. 되도록 자연에 가까운 식재료를 씁니다.

3. 밥솥 또는 냄비, 식칼을 사용하는 것을 권장합니다.

4. 가족이 만들어 둔 음식을 잘 차려 먹는 것도 인정!

5. 라면은 직접 끓여도 집밥으로 인정하지 않기로 합니다.

6. 냉동만두 몇 개 곁들이는 것 쯤은 봐주기로 해요.

신청자들의 참여 동기를 바탕으로 ‘집밥’ 마인드맵을 그려봤어요. 음식 자체만이 아니라 밥을 하는 활동에도 의미를 두는 분이 많았습니다.
끼니를 일정의 우선순위로

오픈채팅방에 모인 참여자들은 제각각 다른 환경에서 일하고 또 식사를 챙깁니다. 거주 형태도 1~4인 가구로 다양하고, 식구의 식사까지 챙기는 생활이 익숙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1인 가구로 요리엔 거의 신경 쓰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도 있었습니다.

끼니로그 ‘집밥 인증 챌린지’에 참가한 사람들

사흘의 식생활 점검 기간 동안 각자의 상황에 맞는 목표를 세웠습니다. 바쁜 일정에 쉽게 밀려나는 ‘끼니’를 우선순위의 상단으로 끌어올리려면 식단을 느슨하게나마 사전에 계획하는 게 중요합니다. 인증 기간 동안 아침·점심·저녁 식사 가운데 집밥으로 할 수 있는 끼니를 미리 표시해 두고, 이를 ‘일정’으로 등록할 것을 권했습니다.

슬기님의 식사 일기와 집밥 계획

점심과 저녁을 모두 회사 근처에서 해결하는 날이 많은 저는, 인증 기간 동안 매일 아침 한 끼를 제대로 챙기는 데 주력하고, 주말에 잡혀 있는 친구들과 모임 때는 그동안 해보고 싶던 커리 만들기에 도전한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사두고 몇 달째 손도 대지 않은 커리 페이스트와 코코넛 밀크도 이때 쓰기로 작정했고요.

슬렁함성님(외쪽)과 도토리 에디터(오른쪽)의 식사 일기와 집밥 계획
채소를 만져본 게 얼마만인지

“오랜만에 샐러리를 자르면서 향을 맡으며 좋아했어요. 원재료의 신선함을 촉각과 후각으로 느끼는 게 요리의 행복이라는 점을 새삼 느껴보았습니다.”

식사 일기를 쓰기 시작한 첫날, 고영님(35)이 이런 소회를 밝혔습니다. 퇴근길에 내내 맥주와 과자만 사 오다가 채소와 버섯 따위를 들여온 게 참 오랜만이라고 했어요.

식사 일기를 공유하자 자연스레 서로의 식단과 장바구니를 엿보게 되었습니다. 1일 차에 하이님이 당근 라페를 공유하자 반응이 뜨거웠습니다. 슬기님도 당근 라페를 1kg이나 만들어 뒀다고 하시더라고요. 이 메뉴는 나중에 톨토리님(39)의 밥상에도 등장하게 됩니다.

집밥 인증 챌린지의 최고 인기 메뉴, 당근 라페. 당근을 채썰어 소금, 식소, 올리브오일 등에 무쳐 두는 간단한 요리입니다. 사진은 하이님, 톨토리님, 슬기님의 당근 라페를 활용한 요리들.

“한 번에 많이 해뒀다 두고두고 활용하는 게으른 레시피 좋아해요.”

2일 차엔 조이님(49)이 불린 약콩 사진을 올리며 이렇게 코멘트했습니다. 다수의 참여자가 조이님이 이 약콩을 어디에 쓸지 궁금해 했어요. “콩자반, 냉동실에 넣어 밥할 때 얹기, 일부는 갈아서 약콩 국수, 나머지는 땅콩과 섞어 갈아 두유로.”

끼니 전담 15년차 베테랑 살림꾼의 노하우가 술술 풀려나와 모두를 자극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조이 님의 약콩 레시피에 영감을 받은 저는 인증 기간 시작 전에 삶아둔 병아리콩으로 이것저것 해보게 되었어요.

병아리콩을 한 솥 삶아 두고 콩국수, 커리, 샐러드, 채소구이에 두루 활용했습니다.
어, 라면을 한 끼도 먹지 않았네

“아침에 일어나서 식빵 한 쪽과 달걀 하나 굽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어요ㅠ 아침을 먹겠다 약속하지 않았으면 일어나서 씻고 바로 나왔을 것 같아요!”

인증 2일 차, 톨토리 님이 아침 집밥을 인증하면서 이런 코멘트를 남겼습니다. 3일 차에도 노력은 이어졌습니다. 일정을 마치고 밥을 사 먹을까 했던 톨토리 님은 집에 가서 마라샹궈를 만들었고, 콩국숫집으로 샐 뻔했던 도토리 에디터도 조이 님의 약콩국수를 떠올리고 발길을 되잡아와 병아리콩을 갈았습니다.

대두가 아닌 다른 콩으로도 콩국수를 만들 수 있다는 데 한번 놀라고, 콩물을 가는 일이 생각보다 쉽다는 데 두 번 놀랐습니다. 콩국숫집에 들렀다면 지출했을 1만3000원이 굳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더욱 행복했고요.

챌린지 기간 동안 일곱 명이 단톡방에 올린 사진을 보면, 메뉴도 천차만별입니다. 토마토, 참외, 사과 등 과일만 씻고 썰어 챙겨 먹는 경우도 많았어요. 톨토리 님은 인증 기간이 끝난 후에 지난 일주일간 한 번도 라면을 안 먹었다는 사실에 꽤 놀랐다고 합니다.

이렇게 단순한 한 끼도 건너 뛰는 것보단 훨씬 좋아요. 하이님과 톨토리님의 끼니들.
식사 일기를 쓰며 알아챈 것들

매일 무엇을 먹었는지 노트에 써 보는 것은 무심코 지나치던 식생활 습관을 인지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저는 제가 집밥은 못 먹어도 밥은 잘 챙겨 먹는다고 생각했어요. 일기를 써보니 엄청 불규칙하고 들쭉날쭉한 식생활을 하고 있더라고요. 제일 큰 문제는 아침과 점심을 거의 건너뛰고 저녁 한 끼에 몰아 먹는다는 것이었어요.”(톨토리님)

“먹은 것을 사진 찍어 모아 보니 생각보다 채소를 덜 먹는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할인한다는 이유로 사온 간편 조리 음식을 자주 먹고 있다는 것도 알아차렸고요.”(슬기님) 비교적 규칙적으로 식사를 잘 챙겨온 조이님과 하이님은 각각 과자와 달달한 음료를 생각보다 자주 먹고 마신다는 걸 깨달았다고 합니다.

슬기님의 밥상. 미리 한 솥 끓여둔 카레에 두부와 샐러드를 곁들여 만족스러웠다고 했어요.

슬렁함성님(47)은 챌린지를 통해 “너무 많은 음식을 사서 버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고 했어요.

“온라인몰에서 할인쿠폰이 오면 ‘이거 필요할 거야, 저것도 필요할 거야’ 하면서 배달을 시켜놓곤 했는데, 쿠폰의 발생 속도와 나의 소비 속도에 차이가 있다는 걸 너무 몰랐던 것 같아요. 집밥을 해 먹지 못하니까 일단 재료를 구비라도 해 놓으면 준비는 돼 있는 것 같아 안심이 됐나 봐요.”

이 점을 깨달은 슬렁함성 님은 냉장고에 남아 있는 오래된 음식을 모두 버리고, 앞으로 소비 습관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할인쿠폰이 온다고 무작정 사지 않고, 특별한 재료보다는 활용도가 높은 기본 채소 위주로 장을 보기로 했대요.

요리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주말에 친구들과 함께 커리를 만들어 먹은 일은 모두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원래라면 맛집을 찾아보거나 배달을 시켰을 텐데, 집밥을 우선순위에 둔 덕분에 해볼 수 있었어요.

열흘간 쓴 식사일기를 다시 보니 변화가 결코 작지 않았습니다. 거리두기가 풀린 이래로 외식할 일이 많아져 배탈과 소화불량이 돌아왔었는데, 챌린지가 끝날 무렵 속이 아주 개운해졌어요. 감자, 양배추 따위의 흔한 재료를 주저 없이 전자레인지에 넣거나 프라이팬에 올려 ‘뚝딱’ 익혀 먹게 된 것도 큰 수확입니다.

도토리 에디터의 ‘냉털(냉장고 털이)’ 한 상. 콩은 삶아둔 그대로 먹었고 상추와 케일엔 귤식초와 호두를 조금 뿌렸습니다.

거창하게 생각하면 끼니를 챙기기 너무 어렵습니다. 참여자들은 다른 이들이 공유한 소박한 메뉴에 영감을 받아 챌린지를 이어갈 수 있었다고 했어요. 집밥을 인증해 준 서로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는 대목입니다.

“사실 집밥이라고 검색해서 블로그나 책을 보면 되게 멋들어진 것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그런 것들을 보면 나는 하지 못할 것 같거든요. 톨토리 님이 참외 도시락을 싸시는 걸 보고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 했어요.”(고영님)

끼니 걱정도 맞들면 낫다

“단백질을 어떻게 챙겨 먹을 지 늘 고민인데, 고영님이 어묵탕에 두부를 썰어 넣은 것을 보고 저도 해보고 싶어졌어요. 연두부를 넣어도 맛있을 것 같아요.”(슬기님)

“단톡방에 올려주신 것을 보고 후무스와 당근 라페를 처음으로 만들어 봤는데 되게 편하고 좋은 것 같아요. 그동안 샌드위치라면 토마토와 양상추 등을 층층 쌓아야 하는 줄만 알고 어렵게 생각했는데 이렇게 하니 간단하더라고요.”(톨토리님)

단톡방에서 끼니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서로의 집밥을 독려한 게 좋은 경험이었다고 참여자들은 말합니다. 다른 사람의 밥상을 보고 “나도 예쁘게 차려 나를 위해 대접하고 싶다”고 하신 분이 있는가 하면, “대충 먹어도 괜찮다는 영감을 받았다”는 분도 계셨습니다. 챌린지를 계기로 좋은 식습관에 관한 책을 찾아보거나 일일 요리 강습에 참여한 분들도 계셨고요.

챌린지 기간 동안 다들 이전보다 조금씩은 집밥에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늘 부족한 시간, 그리고 치솟는 물가와의 씨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 같습니다.

고영님의 아침 식사. 인증 첫날 다듬어 썰어둔 샐러리가 거의 매 끼니 밥상에 올라왔어요.

호주에 거주하시는 슬기님은 챌린지 시작 때 3달러였던 양상추 한 통 가격이 챌린지가 끝날 무렵엔 10달러 가까이 올라 집밥을 챙겨 먹는 데 지장이 컸다고 합니다. 어느 날은 마트의 냉동 채소마저 모두 동나 살 수 없었대요.

홍수로 작물 수확량이 감소한 데다 인플레이션까지 겹쳐 일어난 일이라고 하는데요. 기후변화와 전쟁 같이 멀게 느껴지는 일들이 우리의 밥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서늘하게 깨닫는 순간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이번 챌린지 참여자 다수가 이런 현실을 우려해 부분적으로나마 채식을 시도하고 계신 걸 알게 되었어요. 식단을 생각만큼 바꾸지 못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분도 계셨고요.

하지만 집밥도 너무 잘하려 하면 되레 못 챙겨 먹게 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챌린지를 통해 잘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하게 하려고 할 필요도, 너무 많은 것을 준비할 필요도 없습니다.

“스트레스받지 않는 선에서”(하이님), “오래 지속할 수 있는 작은 습관을 많이 만들고 싶다”(슬기님)

두 분 끼니어님 말씀을 빌려오며 ‘집밥 인증 챌린지’의 후기를 마칩니다. 뉴스레터 끼니로그를 통해 공지될 다음 챌린지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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