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트레이딩업] 중동에 불어오는 제조업 열풍
코로나 겪으며 공급망 취약성 절감
사우디·UAE, 제조업 육성 팔 걷어
현지 파트너 찾고 기술력 활용하면
韓 기업에 '제3의 중동 붐' 올 수도
요즘 어디를 가도 가장 큰 화두는 인플레이션이다. 이는 지난해만 해도 초과수요와 공급 부족에서 발생한 수요 측면이 주요 원인이었지만 올해는 곡물과 국제 유가 등 원자재 가격의 상승인 공급 측면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국제 유가 상승은 과거 중동과 세계경제에 큰 변화를 몰고 왔다. 첫 번째 상승은 1970년대 오일 쇼크 기간으로, 고유가를 기반으로 부를 축적한 중동 국가들은 대대적인 국가 기반 시설에 투자했고 중동의 건설 붐을 일으켰다. 두 번째는 2000년대 초반으로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의 빠른 경제 발전으로 인한 수요가 고유가를 형성했다. 이 시기 중동국들은 유입된 오일 머니로 적극적인 해외투자와 산업 다각화를 추진했다.
세 번째는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바로 지금이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사태를 거치면서 최근 국제 유가가 6개월 이전보다 37.5%나 상승했다. 이로 인해 중동 지역 내 산유국의 국가 재정은 오랜만에 흑자 전환을 보고 있는데 사우디아라비아는 6년 만에 그리고 이라크는 신정부 출범 이래 최초로 흑자가 예상된다.
중동은 제조업 성숙도가 낮고 서비스 위주의 산업구조로 돼 있다.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약 40%가 부동산, 금융 및 유통 등 서비스다. 생산은 평균 12%로 이마저도 걸프협력회의(GCC) 지역의 비중은 더 낮다. 무더운 기후에 인구도 적어 제조업이 발달하기 쉽지 않은 환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중동에 큰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팬데믹을 겪으며 기본적인 의약품과 생필품마저 수입에 의존해야 했었던 경험과 공급망의 취약성에 대한 인지, 탈석유화에 대한 대비책 등이 제조업 육성의 시급성으로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아랍의 맹주인 사우디는 대표적 에너지 기업 아람코를 필두로 석유화학·정유 분야의 다운스트림까지 사업 영역을 확대했고 또한 한국조선해양과 사우디 정부가 합작한 킹살만 조선소(IMI)와 현지 선박 엔진 제조 공장은 내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최근 자국 제품 생산 강화와 협력을 통해 자국 내 부가가치 최소 2조 1000억 원 이상이라는 생산 목표를 천명했다. 이집트의 경우 ‘EME(Egypt Makes Electronics)’ 정책을 통해 노동 집약형 전자 제품 제조업 육성을 도모하는 등 제조업 역량 강화를 꾀하고 있다.
최근 중동 국가들이 추진하고 있는 산업 정책의 핵심은 ‘국산화’에 방점이 있다. 사우디와 UAE 등에서는 해외 프로젝트 수주 기업을 대상으로 자국 내 생산 비율 강화를 선결 조건으로 내세운다. 사우디의 익티바(IKTVA), UAE의 ICV(In Country Value)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이집트와 알제리도 완성차·휴대폰·가전제품 등 우리의 유력 수출 품목을 중심으로 수입 규제를 진행하는 등 자국화와 외환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중동의 자국 내 제조업 육성 정책을 통해 우리 기업들에 더 많은 기회가 활짝 열릴 수 있다. 먼저 ‘메이드 위드 코리아(Made with Korea)’ 전략을 고려할 수 있다. 자국 내 조달 비율 강화에 따른 수입 규제와 해외 기업 참여 제한의 대안으로 현지 협력 파트너를 찾아 중동의 정부 지원을 활용하는 것도 방안이다.
우리나라 기업의 기술력을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우리의 소재·부품·장비 등 핵심 기술을 중심으로 현지에 조립 공장을 설립하거나 제조 설비 합작을 고려할 수 있다. 중동은 제조업 관련 경험·기술·노하우가 부족한 만큼 우리의 기술력과 글로벌 생산 전략을 현지에 맞게 재편하면 진입 기회를 찾을 수도 있다.
중동 지역 근무자들 사이에 속설이 있다. “중동 모래 먼지가 한번 묻으면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계속 중동 파견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한번 묻으면 떨어지지 않는 모래처럼 과거 두 번의 중동 특수를 누렸던 우리 기업이 한 번 더 시장 진출의 호기를 잡아 제3의 중동 붐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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