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중간선거는 져도 트럼프 재선은 절대 안 돼!
최근 미국 방송사들의 저녁 황금시간대를 점령한 프로그램은 뭘까요?
드라마, 예능이 아닙니다. 바로 미 의회 하원에서 열리고 있는 청문회 중계입니다. 우리 기억 속에는 이미 잊혀져 가고 있는 일이죠. 지난해 1월 6일 미 의회 의사당에 트럼프 추종자들이 난입했었던 초유의 사건, 이른바 미 의사당 난입 사건에 대해 하원의 특별조사위원회가 벌이고 있는 청문회가 미국 방송사들의 황금시간대에 배치되고 있습니다. 아니 그걸 아직도 조사하고 있단 말인가, 싶겠지만, 그렇습니다. 아직도 하고 있습니다.
■ "입이 떡 벌어진다…어마어마한 폭탄선언"
미 언론들의 반응도 '아래 턱이 떨어질 만큼', '세상을 바꾸는 폭탄선언' 등 깜짝 놀라는 분위깁니다. 이 정도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의사당 난입을 직접 지시했다"는 증언이 나왔을 법 한데요. 실제로 가깝습니다.
2020년 미 대선이 끝난 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줄곧 대선 불복을 주장해왔습니다. 투표가 조작되었고, 투표 용지가 조작되었고, 투표 기계가 조작되었다며 줄소송을 벌였고, 급기야 2021년 1월 6일에는 프라우드 보이스(proud boys)라는 극우파 등이 워싱턴 D.C.에 집결한 집회에 나가서 "의회로 가라"며 사실상 폭동을 방조했습니다. (그래서 사상 처음으로 2번째 탄핵 위기까지 몰렸죠). 그러나 아무도 트럼프가 직접 의회 폭동을 주동했거나, 알고도 방조했다고 증언한 이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터진 겁니다. 당시 백악관 비서실장 수석 보좌관이던 스물 다섯살 허친슨의 증언은 실제로 미국인들의 입을 떡 벌리게 했습니다.
트럼프가 의사당 폭동을 '알고' 있었으며, '고의로 추동했다'는 걸 밝혔기 때문입니다.
트럼프는 그의 지지자들에게 의사당으로 가서 '싸우라'고 할 때 그들이 무장한 것을 알고 있었다.
트럼프는 행진을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백악관이 아닌 의회로 가기 위해 운전사의 핸들을 빼앗고 목덜미를 잡고 폭행했다.
트럼프는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목을 매달아라'는 구호를 들으며 '그래도 싸다'고 말했다.
당시 백악관 법률고문은 트럼프가 위의 행동을 밀고 나갈 경우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범죄 혐의로 기소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 트럼프 전 비서실장 대행 "트럼프에게 매우 매우 나쁜 날"
물론 허친슨의 증언을 모두 믿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의사당 폭동이 일어난 당일까지 트럼프와 측근들의 행동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다 사임한 믹 멀베이니 전 비서실장 대행은 허친슨의 증언을 듣고 트위터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오늘은 트럼프에게 매우매우 나쁜 날이다."
멀베이니는 허친슨의 증언에 이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적시했습니다.
1) 트럼프는 시위대가 총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2) 트럼프는 자신의 경호원을 폭행했다.
3) 극우혐오집단 프라우드보이즈는 백악관에 직통라인이 있다.
4) 백악관의 최고위 보좌관들이 사면을 요청했다.
5) 위원회는 트럼프의 증인 매수/조작의 근거를 확보했음을 시사했다
이에 따르면 트럼프는 단순히 국가 안보를 위태롭게 한 데서 끝나지 않고 자신의 범죄를 덮기 위해 증인을 매수하고 증언을 조작하려 했다는 겁니다. (참고로 연방 증인 매수와 조작은 최고 20년 형에 처해지는 중범죄입니다) 트럼프의 법률 보좌관이 예언(?)한 대로 트럼프는 이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범죄 혐의로 기소될 지경에 처했습니다.
■ "트럼프 기소해야" 48%…대선 출마 가능성 조기 차단
AP통신이 현지시각 오늘(30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58%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 의사당 폭동에 책임이 있다고 답했으며, 절반가량인 48%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기소되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반면에 기소되지 말아야 한다는 답변은 31%에 그쳤습니다. 심지어 이 여론조사 결과는 허친슨의 증언 이전에 이뤄진 만큼, 다음주 나올 조사 결과는 트럼프에 대한 기소 여론이 훨씬 높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쯤되면 2024년 대통령 선거에서 트럼프의 부활만은 어떻게든 막겠다는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 온건파들의 목표는 어느 정도 달성된 것 같습니다. 고령인데다 사상 최악의 인플레이션으로 지지율이 바닥을 기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지고 있기도 합니다.
11월 미국 의회의 1/3이 유권자의 선택으로 의석이 바뀌게 되고, 인구 규모가 큰 많은 주들의 주지사 선거가 치러지는 중간선거에서 바이든의 민주당이 이길 가능성은 희박해보입니다. 의회가 공화당의 손으로 넘어가면, 바이든 대통령의 국정운영 동력은 크게 떨어지게 됩니다.
어차피 의회는 넘어갔어, 트럼프를 막는 게 더 중요해!
민주당원들 사이에선 공공연하게 나오는 말입니다. 트럼프 시대 급격히 보수화된 미 연방 대법원이 내리고 있는 결정들을 보면 더욱 그렇다는 겁니다.
김양순 기자 (ysooni@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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