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위기 총력대응 선언한 尹대통령, 지근거리엔 항상 경제수석이 있다
과거 비밀스러운 청와대와는 달라
‘경제위기 총력대응’을 선언한 윤석열 대통령 지근거리에서 최상목 경제수석이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과거 청와대 시절 주로 밀실에서 활동했던 경제수석이 직접 등판하고 있는 빈도가 높아지고 있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등 3고(高) 경제위기 극복에 윤 대통령이 사활을 걸면서, 최 수석의 국정운영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는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2일 대통령실에 따르면, 지난 5월 10일 출범 후 50일을 갓 넘긴 윤석열 정부는 과거 청와대 경제수석과 달리 윤석열 정부에선 최상목 경제수석이 언론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막후에서 국정을 조율에 ‘밀실에서 일한다’라는 인상이 짙었던 과거의 청와대 경제수석과는 확달라진 모습을 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상목 경제수석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보인 건 윤석열 정부 출범 사흘째인 지난 5월 13일이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명동 국제금융센터에서 열린 거시금융상황점검회의에 최 수석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이 자리에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배석하는 등 재정과 금융의 양대 수장이 동시에 모였다. 그만큼 경제에 대한 윤 대통령의 관심이 크다는 걸 드러냈다는 평가다. 이날 최 수석이 윤 대통령 바로 옆에서 주요 참석자들을 소개하고 윤 대통령은 그들과 일일이 악수하는 장면이 언론에 공개됐다.
정부 안팎에서는 이 회의가 최상목 수석에 대한 윤 대통령의 신임이 굳어지게 된 계기가 됐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 회의를 통해 윤 대통령이 생생한 금융시장 정보를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전의 전기요금 인상에 대한 윤 대통령의 생각이 바뀐 것도 이 회의가 한 계기였다고 한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한 민간 전문가는 1분기 7조8000억원에 이르는 적자를 낸 한전이 회사채 발행을 무더기로 늘리면서, 채권시장 교란이 심각해지고 있다는 발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한전의 전기요금 동결이 지속되면 기업의 자금 조달 창구인 채권 시장 경색이 심각해지고, 이런 상황이 멀쩡한 기업들의 자금조달에 문제가 생기고 금리도 올라가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전했다고 한다.
이 발표 내용을 접한 윤 대통령은 관심을 보이며 대책 마련을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물가 안정을 위해 공공요금 인상을 최소화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한전의 대규모 적자를 방치하는 것은 금융시장 안정에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윤 대통령이 깨닫게 됐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의 ‘전기요금 동결’ 공약이 정치적인 이유가 아닌 경제적인 이유로 수정되고, 최근의 전기요금 인상 결정으로 이어진 셈이다. 윤 대통령이 금융시장과 소통할 수 계기가 최상목 수석이 기획한 행사에서 마련된 것이다.
이어 6월 7일에는 윤 대통령이 최 수석과 함께 서울 종로구의 한 피자 가게에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 김용현 경호처장, 최상목 경제수석 등 대통령실 참모진과 피자로 ‘점심 번개’를 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당시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이 종로에서 목격됐다는데 무슨 일이냐’고 여기저기서 기자들 신고가 들어와서 알아보니 점심때 종로에 있는 피자 가게에서 식사를 했다”며 “오늘이 최상목 경제수석의 생일이었다”고 전했다. 대통령이 경제수석과 함께 일반 식당에서 찍은 사진을 공개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그만큼 신임이 두텁다는 걸 보여주는 광경이 됐다.
이후 최 수석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통해서도 언론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어 지난 29~30일(현지시각)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의 현장에서도 실명으로 브리핑했다.
이 같은 경제수석의 전면 등판은 과거와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라는 평가다. 경제수석이 주축이 된 의사 결정은 서별관 회의가 대표적이었다. 국민의 정부 당시부터 일반인에 그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한 소위 ‘서별관’은 청와대 영빈관 옆 조그만 건물의 이름이다. 비서동과도 떨어져 있는 외진 곳이라 청와대의 핵심 관계자 외에는 접근하지 않는 곳이었다.
서별관 회의는 이명박 정부 들어서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등 주요 경제부처와 기관장들이 참석하는 회의인 ‘거시경제협의회’가 시작점이 됐다. 경제수석은 이 회의 간사 역할을 하며 거시경제·금융정책을 조율했다. 2008년부터는 비공식적으로 운영되던 거시경제협의회를 경제위기 극복대책의 총괄 기구로 공식화하고 회의 명칭도 ‘경제금융점검회의’로 바꿨다. ‘서별관회의’를 최고위 정책협의체로 격상, 경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도록 했다. 역시 이곳에서는 이뤄지는 회의 역시 비교적 비밀리에 진행됐다. 이후에도 청와대 경제수석은 물밑에서 활동하는 게 상례였다.
윤석열 정부 시작 직후 실시된 소위 ’탈(脫) 청와대’ 후 경제수석이 과거와 달리 적극적으로 언론 브리핑에 나서는 등 외부 행보에 나서는 모습이 잦아지고 있다. 지난 6월 17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자이언트스텝(0.75%p 금리인상) 이후 열린 비상 거시경제금융회의가 대표적이다.
당시 최 수석은 회의 후 열린 언론 브리핑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바로 옆자리 앉아 있었다. 기재부 장관,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등 기관장 사이의 회의체인 거시경제금융회의에 대통령실 경제수석이 전면에 나서는 것은 이전에는 볼 수 없던 광경이다.
이에 대해 한 대통령실 관계자는 “대통령이 경제위기 총력 대응을 선언한 상황에서 경제수석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는 증거 아니겠느냐”라고 했다.
최 수석의 영향력은 전공 분야인 거시경제·금융정책에 국한되지 않고 확장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바보 같은 짓”이라고 비판하고, 원자력 발전 세일즈를 약속하기 위해 지난달 22일 경남 창원 두산에너빌리티 원자력 공장을 방문한 자리에서도 최 수석은 박지원 두산에너빌리티 회장,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함께 최일선 수행 현장을 지켰다. 윤 대통령이 사활을 걸고 있는 원전 세일즈 등에도 최 수석이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으로 평가된다.
실제 윤 대통령은 연일 강도 높은 경제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지난달 3일 출근길에 여당의 지방선거 승리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여러분, 지금 집에 창문이 흔들리고 마당에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거 못 느끼십니까”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 경제위기를 비롯한 태풍의 권역에 우리 마당이 들어와 있습니다. 정당의 정치적 승리를 입에 담을 그럴 상황이 아니다”라고 했다.
또 윤 대통령은 지난달 7일 국무회의에서는 ‘반도체 특강’을 열고 국무위원들에게 ‘미래 먹을거리’인 반도체 산업을 공부하라면서 “목숨을 걸어라”라고 당부했다. 지난달 20일에도 “지금 국민들이 숨이 넘어가는 상황이기 때문에 법 개정이 필요한 정책에 대해서는 초당적으로 대응해 줄 것으로 생각한다”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1일 주재한 국무회의에서도 “모든 정책의 목표는 첫째도 민생, 둘째도 민생, 셋째도 민생”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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