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의 사회심리학] 우리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용서할 수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2022. 7. 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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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 대한 미안함을 굳이 나를 향한 미움으로 바꿀 필요가 없는 이유.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어떻게 저런 사람을 용서할 수가 있지?”라는 질문이 생길 때가 있다. 끔찍한 짓을 저지른 가해자를 향해 피해자나 유족들이 나는 당신을 용서한다고 이야기하는 장면들을 볼 때면 늘 그렇다. 용서란 이해하기 어렵고 다루기 어려운 주제다. 사람이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이 애초에 가능한 일인가 싶기도 하다. 

그러던 중 최근 《내 죽음을 기억하시나요》 라는 연극을 봤다. 폭력 사건으로 인해 동생이 죽고 나서 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형이 주인공이었다. 형은 용서의 의미를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하지만 더욱 깊은 좌절에 빠지고 만다. 이런 형에게 (죽은) 동생은 이제 그만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지라고, 형의 인생을 살라고 당부한다. “우리가 용서할 수 있는 건 오직 자기 자신”이라는 대사가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용서에 대해 자꾸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가해자에 대한 용서보다도 자기 자신에 대한 용서가 시급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우리는 다들 크고 작은 후회를 짊어지게 된다. 여기에는 내가 직접적으로 타인에게 잘못을 저지른 것도 있지만 소중한 사람을 지키지 못한 것, 더 잘해주지 못한 것, 충분히 이해해주지 못하고 위로해주지 못한 것 등이 주가 된다. 또는 내가 나를 실망시킨 일들, 예컨대 충분히 좋은 성과를 내지 못했거나 멍청한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던 기억들로 “이런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하곤 한다. 

자신을 책망하는 마음은 자신이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일 때에도 나타난다. 내가 그 때 거기에 없었더라면, 좀 더 조심했더라면 등 현실과 다른 다양한 가정들을 하며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일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후회에 빠지곤 한다. 실제로 나쁜 일을 막을 수 있었을 지 알 길이 없고 책임은 그러한 일을 저지른 가해자에게 있음에도 많은 피해자들, 특히 성폭력 피해자들이 자신을 책망하는 모습을 보인다. 많은 피해자들이 가해자 못지 않게 자기 자신에게 책임을 지우고 자신을 미워하며 고통받곤 한다. 

사실 가해자는 용서하지 않더라도 안 볼 수 있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으면 그만이다. 흔히 타인에 대한 용서를 강조하는 이유는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미워하는 일로 소모되지 말라는 의미에서 미움을 내려놓으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용서하지 않고도 감정 소모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하면 된다. 하지만 자신을 용서하지 않는 것은 조금 다르다. 용서하지 못한 자신과는 안 볼 수도 생각하지 않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는 등의 다양한 후회로 인해 스스로를 지속적으로 책망하는 경우 내가 미워하는 자신과 24시간 함께해야 하는 고통을 짊어지게 된다. 자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는 한 미움의 고통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는 것이다. 

나 역시 주로 가족에 대해 좀 더 따듯하게 대할 걸 같은 후회들을 지니고 있다. 특히 어린 동생에 대해 내가 바쁘다는 이유로 충분히 챙기지 못했다는 미안함을 크게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나아가 내가 나를 지나치게 책망하는 일은 어쩌면 동생을 챙기는 행동을 방해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흔히 자기 비난에 빠지면 한정된 에너지를 자기 자신을 미워하는 데 쓰느라 정작 중요한 건설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또는 스스로를 비난하게 만드는 일로부터 아예 도망치게 되기도 한다. 나 역시 죄책감으로부터 도망치느라 바빠서, 즉 내가 만들어낸 불필요한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느라 동생은 보지 못하고 계속해서 나만 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만든 나에 대한 미움으로부터 나를 지키겠다고 결과적으로 계속 내 생각만 하며 이기적인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타인에 대한 미안함을 굳이 나를 향한 미움으로 바꿀 필요가 없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미워하는 마음으로 인해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관련자료

Hall, J. H., & Fincham, F. D. (2005). Self-forgiveness: The stepchild of forgiveness research. Journal of social and clinical psychology, 24(5), 621-637.

※필자소개

박진영 《나, 지금 이대로 괜찮은 사람》, 《나를 사랑하지 않는 나에게》를 썼다. 삶에 도움이 되는 심리학 연구를 알기 쉽고 공감 가도록 풀어낸 책을 통해 독자와 꾸준히 소통하고 있다. 온라인에서 '지뇽뇽'이라는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미국 듀크대에서 사회심리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박진영 심리학 칼럼니스트 parkjy02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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