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리포트] 블록체인, 불평등을 불러오다

신현우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대학원 강사 2022. 7. 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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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최근 몇 년간 전 세계는 암호화폐 채굴 및 투자로 인한 열병을 겪고 있다. 암호화폐에 이어 대체불가능토큰(NFT), 메타버스, P2E(Play to Earn)게임 등 블록체인은 삶과 경제를 완전히 혁신할 수 있는 기술 화두로 떠올랐다. 그런데 블록체인이 과연 긍정적인 미래로 우리를 이끌어나갈 것인가? 현재로서는 그런 전망이 잘 보이지 않는다.

이른바 기술혁신담론은 주로 블록체인을 경제적인 관점으로 접근한다. 신산업육성, 4차 산업혁명, 초연결 신산업, 신산업 혁신기술 발굴 등 아름다운 말이 가득하다. 하지만 우리가 자주 마주하는 것은 암호화폐 폰지 사기 등 각종 문제 상황이다. 암호화폐 거래소 해킹범죄, 암호화폐 상장을 빙자한 사기 등 금융범죄가 블록체인을 뒤덮고 있다.

완전히 자유로운 세계를 향한 꿈

1980년대, ‘정부와 기업의 통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대안 세계’를 꿈꾼 이들이 있다. 수많은 컴퓨터 너드들과 자유지상주의적 히피들이다. 이들은 은행을 거치지 않고 조폐국이 발행하지 않는 화폐를 만들고자 했다. 추적되지 않고, 법에 규제 받지 않으며, 오로지 네트워크에 의해서만 발행되고 교환될 수 있는 화폐가 있다면 1980년대에 꿈꾸던 ‘사이버 공간의 완전 독립’은 현실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1985년 데이비드 차움이라는 프로그래머의 논문부터, 2008년 사토시 나카모토의 비트코인에 이르기까지 장장 25년여 동안 두 가지 로직으로 실현됐다. 하나는 ‘탈중앙화(Decentralisation)’이고 다른 하나는 ‘작업 증명(Proof of Work)’이다. 

기존 화폐 시스템을 생각해보자. 우리는 화폐에 적힌 숫자로 표현된 노동생산물의 가치를 사회구성원 모두와 공유한다. 이 약속은 중앙에 집중된 신뢰를 통해서만 담보될 수 있다. 어떤 물건을 1000원을 주고 교환하는 순간 양자는 돈과 물건만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은행을 통과한 ‘신뢰’를 교환한다. 이 1000원 지폐가 조폐국에서 발행한 것이고 은행을 통해 교환될 수 있으며, 다음 교환에서 똑같이 1000원의 가치가 있는 물건을 교환할 수 있다는 신뢰다. 또한 이 물건에 들어간 노동의 가치가 1000원이라는 약속이기도 하다.

정부와 은행을 대체한 ‘탈중앙화’ 노드

암호화폐는 이를 철저히 우회하도록 설계됐다. P2P로 연결된 분산네트워크에서 ‘탈중앙화’ 컴퓨터 노드들은 함수 연산 문제인 ‘해시’ 퍼즐을 풀이한다. 해시 정답인 논스(nonce)가 나오면 블록이 생기고, 가장 먼저 해시 정답을 찾은 노드에게 보상으로 암호화폐가 주어진다. 블록에는 암호화폐의 지급과 거래 내역이 낱낱이 기록되며, 블록의 용량이 다 차면 다음으로 생성된 블록에 다시 거래 내용이 기록된다. 

정부나 은행처럼 신뢰받는 제3자가 없기 때문에, 암호화폐가 발행되거나 이것으로 뭔가를 교환하기 위해서는 P2P 분산 네트워크로부터 ‘증명’을 받아야 한다. 해시 퍼즐 풀이에서 편법이 사용되지는 않았는지, 암호화폐 거래 과정에서 누군가 꼼수를 부리지는 않는지 모든 프로세스를 네트워크가 검증한다. 블록에는 첫 암호화폐 생성부터 모든 작업과 거래 내역이 축적되고 이를 기반으로 작업이 이뤄지기 때문에, 분산된 네트워크가 이를 검증한다면 누구도 사기를 칠 수가 없다.

방송국 MBC가 발행한 무한도전 ‘무야호 NFT’는 지난해 11월, 950만 1000원에 팔렸다. 이 NFT를 샀다고 해서 저작권을 갖는 건 아니다. ‘MBC가 인정한 원본을 소유했다’는 의미만 갖는다. MBC공식 NFT 사이트(archivebymbc.com) 캡처

승자독식 시스템이 불러온 역설

이 완전무결해 보이는 시스템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첫째, 암호화폐를 생성하는 해시연산 단계에서 네트워크에 연결된 수많은 노드들이 협력하는 것이 아니라 경쟁한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연산에 성공한 노드가 보상을 독차지하기 때문에, 당연히 컴퓨팅 연산 자원을 더 많이 보유한 노드가 보상을 차지할 확률이 높다. CPU를 가진 사람보다는 GPU를 동원하는 쪽이, 컴퓨터 한 대 보다는 세 대를 동원하는 쪽이 이긴다. 

이 때문에 암호 화폐를 채굴하고자 하는 대대적인 컴퓨터 연산 동원 경쟁이 과열된다. 개인은 꿈도 못 꿀 엄청난 에너지와 자원을 동원해야 채굴에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암호화폐 채굴을 위해 투자자들로부터 투자를 받고 대가로 코인을 지급하는 ICO(Initial Coin Offering) 방식의 ‘블록체인 금융화’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이 때문에 불필요한 자원과 에너지 낭비는 물론, ‘신뢰받는 제3자’로부터 규제 받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해 온갖 금융 사기가 난무하는 현실이 연출된다. 

거래내역 자체는 기록되지만, 누가 거래했는지는 철저히 익명화 돼 정부도 은행도 이를 추적할 수 없다. 법정통화가 아니기 때문에 암호화폐 투자·환전 과정에서 투기 및 사기가 발생해도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최근에는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 ‘지분 증명(proof of stake)’과 이를 이용한 다양한 대체시스템이 도입되고 있지만, 오히려 금융화를 부추기고 있다. 암호화폐를 더 많이 소유한 쪽이 연산 영향력을 더 행사하고, 더 많은 지분을 가져간다. 이는 ‘탈중앙화’라는 블록체인의 목표를 역설적으로 뒤엎는다. 대주주가 배당금을 더 많이 가져가고, 의사 결정권도 독점하는 승자독식 시스템이란 이야기다.

노동의 가치를 부정하는 기술

둘째, 탈중앙화와 ‘증명’ 로직은 인간 사회 시장경제의 토대였던 ‘노동 가치 기반 시스템’을 해체한다. 인류는 처음에 시장에서 물물 교환을 했고, 그 다음엔 주화를 사용했으며, 금본위제를 만들고 1971년에는 달러본위제를 운용했다. 노동이 들어간 생산물의 가치를 측정하기 위해 도량형, 금과 지폐, 은행과 정부가 만들어졌다. 

어떤 물건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만큼의, 어떤 노동이 들어가는지 양과 질을 측정하고 하나의 사회적 약속으로 만들고자 발명된 것이 화폐이다. 그렇기 때문에 화폐를 마구 찍어낸다고 해도 늘어나는 것은 통화량일 뿐이지 상품과 노동력 자체가 아니다. 그런데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은 이 모든 것들과 불협화음을 일으킨다. 비트코인은 긴 작업증명 시간 때문에 실생활에서 사용하기 어렵고, 이더리움은 수수료가 비싸며 매번 바뀐다. 또 하루 아침에 가치가 폭락하기도, ‘떡상’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암호화폐는 노동의 가치를 표현하기 위한 적절한 수단이 아니며, 법정화폐를 대체하지도 못한다.

이러니 암호화폐는 지금까지 화폐시스템이 측정하지 못한 미지의 노동 영역에서 특유의 투기 매커니즘을 가동시킨다. 게임 아이템, 디지털화된 미술작품, 어플리케이션 개발, 인앱 제작활동 등이 대표적 사례다. 기존에는 노동이 아니라 활동에 속하던 놀이, 예술 등을 시장화하는 전략이다.

놀이와 예술의 시장화

새 시장 영토를 개척하기 위해 암호화폐는 변화무쌍하게 변신할 필요가 생겼다. 블록 생성시 가장 먼저 기록되는 거래내역 증명을 디지털 아트에 적용해 ‘원본성’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낸다(NFT). 법적으로 재물에 해당하지 않는 게임 아이템을 이용자들이 거래할 수 있도록 NFT와 암호화폐를 분산 네트워크 결제시스템과 연결한다. 이더리움이 이를 가장 잘 하고 있다. 탈중앙화 애플리케이션(DApp), 탈중앙화 자율조직(DAO) 등 파생 블록체인 기술이 ‘자유로웠던’ 사이버 공간의 인간 활동 및 커뮤니케이션 분야를 시장 논리로 잠식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제 사람들은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암호화폐로 캐릭터와 아이템을 교환하기 위해 게임을 한다. 복제가 가능하고, 원본과 복제본 사이에 아무런 질적 차이가 없는 디지털 아트에 ‘원본성’을 부여해 미술경매 시장에서 비싸게 거래되도록 만든다. 메타버스의 아바타를 제작하거나 아바타가 입는 아이템을 스스로 제작해서 암호화폐를 받고 판다.

기술비판이론의 선구자인 앤드류 핀버그는 말했다. 모든 기술에는 당대 사회문화의 지배적 논리, 즉 기술의 사회적 코드가 새겨진다고. 기술의 설계와 디자인, 사회적 이용에 이르기까지 동시대의 ‘주류’ 또는 ‘공식’이라고 여겨지는 경제적·문화적·심미적 논리가 언제나 들어온다는 뜻이다. 이런 관점은 기술이 중립적이고 순수하다는 일반적인 통념을 거부한다. 

기술에는 사회적 코드가 담긴다

‘기술은 사회적으로 형성되며, 따라서 언제나 정치가 반영돼 있다’. 기술철학자 랭던 위너의 주장이다. 그는 대표적인 예로 1960년대 뉴욕 인근의 해변휴양지 존스비치로 가는 길목에 건설된 고가도로를 제시한다. 이 고가도로는 높이가 낮아 버스가 그 고가도로 아래 도로를 지날 수 없었다. 이는 자가용 승용차를 가진 백인 중산층만 존스비치 해수욕장을 독점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고가도로는 미국에 수백 군데가 넘었고, 최근에 이르러서야 대부분이 사라졌다. 

인종·젠더·계급·세대·지역을 넘나들며 불평등한 지배 논리는 기술의 디자인과 설계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 블록체인에서도 마찬가지다. 블록체인의 설계와 디자인에 새겨진 기술의 사회적 코드는 ‘극소수만이 돈 벌 수 있는 신자유주의 사회 구조’다. 여기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블록체인에 대한 광적인 열광은 역설적이게도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정당한 노동으로 안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게 된 현실에서 나온다. 그렇다. 우리가 꿈꾸던 그 자유롭고 유토피아적인 ‘사이버 공간’이 아닌 ‘메타버스’다. 인간의 지적·유희적 행위가 노동이 되고, 불평등이 암호화돼 인지하기 어려워진 공간. 블록체인에 대한 시민적·인간학적 성찰이 그 어느 때보다도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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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우 서울과학기술대 IT정책대학원 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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