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올해 10승은 가능할까?' 지독한 불운과 싸우는 투수들[슬로우볼]
[뉴스엔 안형준 기자]
최근 사이영상 투표에서는 투수의 승수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승리는 온전한 투수의 능력만으로 얻는게 아니라는 것이다. 제이콥 디그롬(NYM)이 두 차례 사이영상을 각각 10승(2018), 11승(2019)으로 수상하며 달라진 흐름이 확실하게 나타나고 있다. 투수는 승리, 타자는 타점이라는 소위 '투승타타'로 대표되던 시대는 세이버 매트릭스가 보편화되며 저물었다.
많은 승리를 거두지 못해도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왔지만 활약에 비해 지나치게 승수가 적은 것도 달갑지는 않다. 시즌 내내 큰 불운에 시달리고 있다는 의미기 때문. '멘탈 스포츠'인 야구에서 투수 스스로 '내가 운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품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제 소개할 투수들은 남은 시즌 성적 뿐 아니라 멘탈도 다잡아야 한다. 심각한 불운에 시달리고 있는 선수들이기 때문이다(이하 기로 7/1 기준).
올시즌 최고 '불운의 아이콘'을 꼽으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는 단연 셰인 비버(CLE)다. 비버는 올시즌 15경기에 선발등판해 91이닝을 투구했고 3승 4패, 평균자책점 3.16을 기록했다. 단축시즌 아메리칸리그 사이영상 수상자인 비버는 지난해 부상으로 시즌을 절반밖에 치르지 못했지만 올시즌에는 건강하게 다시 팀 마운드를 이끌고 있다. 하지만 승리와는 좀처럼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비버는 15번의 선발등판에서 11차례 퀄리티스타트를 성공시켰다. 7이닝 이상 3실점 이하의 '퀄리티스타트 플러스'도 5번이나 달성했다. 하지만 단 3승밖에 거두지 못했다. 퀄리티스타트 플러스를 달성하고도 패한 경기가 2경기나 된다. 4점 이상을 내주며 무너진 경기는 단 한 번 뿐이었지만 타선이 전혀 도와주지 못했다. 비버의 불운은 그 뿐만이 아니다. 4-5월에만 무려 4번의 우천순연을 경험하며 수시로 등판이 밀렸다. 시즌 초 클리블랜드의 우천순연 경기는 거의가 비버의 등판 경기였다. 6월에는 완봉승 페이스로 4.1이닝을 막아낸 뒤 긴 우천 중단으로 승리조차 챙기지 못한 경기도 있었다.
1일까지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비버보다 많은 퀄리티스타트를 달성한 투수는 단 4명 뿐. 그리고 그 4명은 모두 8승 이상을 거뒀다. 비버와 마찬가지로 11차례 퀄리티스타트를 달성한 저스틴 벌랜더(HOU)는 벌써 10승 고지에 올라 올시즌 20승도 바라볼 수 있는 페이스다. 하지만 비버는 시즌 10승 달성 여부조차 불투명하다.
비버의 불운은 비버의 팀 동료들도 비슷하게 겪고 있다. 클리블랜드 타선의 심각한 기복 때문이다. 칼 콴트릴은 14경기에서 84.2이닝을 투구하며 퀄리티스타트 9번을 달성했지만 4승(4패, ERA 3.72)을 거두는데 그쳤다. 14경기에서 79.1이닝을 투구하며 8차례 퀄리티스타트에 성공한 잭 플레삭은 2승 5패, 평균자책점 3.86을 기록 중이다.
오히려 비버가 부러운 투수도 있다. 승수는 적지만 패배도 많지는 않기 때문. 적은 승리는 물론 많은 패배까지 쌓고 있는 투수가 있다. 바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의 프랭키 몬타스다. 몬타스는 16경기에 선발등판해 95.2이닝을 투구했고 3승 8패, 평균자책점 3.20을 기록했다. 몬타스는 비버보다 퀄리티스타트가 1개 적다.
사실 몬타스는 시작이 좋았다. 시즌 첫 3차례 등판에서 2승 1패를 기록했다. 하지만 두 번째 승리 후 3승 고지에 오르기까지 무려 55일이 걸렸다. 54일 동안 9번 선발 마운드에 올라 퀄리티스타트 6회, 퀄리티스타트 플러스 4회를 달성했지만 패전만 5번을 기록했다. 최약체 오클랜드의 전력이 전혀 몬타스를 지원해주지 못했다. 불펜 역시 몬타스의 편이 아니었다.
아메리칸리그에 비버와 몬타스가 있다면 내셔널리그에는 션 마네아(SD)가 있다. 지난해까지 몬타스와 함께 뛴 마네아는 전력이 강한 샌디에이고로 이적했지만 오클랜드 시절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모습이다. 마네아는 올시즌 14경기에 등판해 85이닝을 투구하며 3승 3패, 평균자책점 3.92를 기록했다. 평균자책점이 다소 높지만 퀄리티스타트에 실패한 경기는 단 3경기 뿐이었다.
역시 타선 기복 때문이다. 마네아는 완벽한 피칭을 펼치는 투수는 아니었지만 퀄리티스타트 플러스 4회를 포함해 거의 모든 등판에서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유독 승리는 따라오지 않았다. 12번의 등판에서 퀄리티스타트를 3번밖에 달성하지 못한 루키 맥켄지 고어가 벌써 4승을 거뒀다는 것을 감안하면 마네아의 불운은 더욱 실감이 난다.
'상대적 박탈감'을 가장 크게 느낄 투수는 마네아가 아닌 뉴욕 양키스의 조던 몽고메리다. 몽고메리는 올시즌 15경기에 선발등판해 85.1이닝을 투구했고 7차례 퀄리티스타트와 함께 평균자책점 3.27을 기록했다. 몽고메리의 시즌 승패는 3승 1패. 앞서 언급된 투수들보다 성적이 아쉬웠던 만큼 '억울함'이 덜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팀 동료와 비교하면 엄청난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양키스 팀 내 다승 1위이자 메이저리그 전체 다승 공동 2위인 제임슨 타이온은 15경기에서 퀄리티스타트를 단 4번 밖에 성공시키지 못했지만 무려 9승을 거뒀다(9-1, ERA 3.32). 타이온과 몽고메리의 시즌 이닝 수는 단 1.1이닝 차이. 두 선수의 투구 '퀄리티'에도 큰 차이는 없었다. 하지만 승운은 극과 극으로 차이가 나고 있다.
시애틀 매리너스의 마르코 곤잘레스도 비슷한 상황. 곤잘레스는 15경기에서 81.2이닝을 투구하며 4승 8패, 평균자책점 3.31을 기록했고 9차례 퀄리티스타트를 달성했다. 팀 내에서 가장 많은 퀄리티스타트를 달성한 선수다. 하지만 승수는 로건 길버트(9-3, ERA 2.66, 8QS), 로비 레이(6-6, ERA 3.78, 8QS)는 물론 불펜투수인 디에고 카스티요(5승)보다도 적다.
아무리 승수로 평가를 받는 시대가 지났다고 해도 이기는 것을 싫어하는 선수는 없다. 하물며 지고싶은 선수는 더욱 없다. 잘 던진 만큼 승리가 따라오는 것은 모든 투수가 바라는 것이다. 예년에 비해 두드러지는 투고 현상 속에서도 유독 승리와 인연을 맺지 못하는 투수들이 과연 남은 시즌에는 어떤 성적표를 받아들지 주목된다.(자료사진=셰인 비버)
뉴스엔 안형준 markaj@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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