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천만원 집 전세가 1억대.. 깡통전세 시한폭탄 다시 불붙는다

신수지 기자 2022. 7. 2.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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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평택시의 A도시형생활주택(전용면적 27㎡) 전세 매물이 지난달 8일 1억2000만원에 계약됐다. 불과 닷새 전 매매가(9400만원)보다 2600만원 비싼 가격이었다. 지난 4월 전북 군산시에선 B아파트(전용 74㎡)가 9800만원에 팔렸다. 그런데 5월엔 같은 단지, 같은 면적이 보증금 1억2500만원에 전세로 나갔다. 세입자만 구해지면 자기 돈을 한 푼도 안 들이고 집을 살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 전국 주택시장에서 전셋값이 매매 가격을 웃도는 거래가 속출하고 있다. 이런 ‘역전세’ 현상은 공시가격 1억원 안팎의 지방 중소 도시 저가 아파트에서 시작돼 최근엔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 소형 주택이나 빌라 시장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올 들어 금리 인상과 대출 규제 영향으로 집값이 약세로 돌아섰지만, 실수요자들이 찾는 전세 시장은 상대적으로 가격 강세가 여전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한국부동산원 통계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5월 9일부터 지난달 말까지 서울과 지방 광역시를 뺀 9개 도(道)의 아파트 매매가격은 0.01% 내렸다. 하지만 같은 기간 아파트 전셋값은 0.11% 상승했다.

/그래픽=이철원

전문가들은 앞으로 집값 하락 국면이 지속하고, 부동산 경기가 침체할 경우 세입자가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깡통 전세’ 피해가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집값이 내린 탓에 집을 팔아도 전셋값만큼도 안 되거나, 갭 투자자인 집주인이 다음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기존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매매 대신 전세를 찾는 수요가 늘면서 전셋값이 오르고, 전세가율도 계속 높아지는 추세”라며 “갭 투자가 성행한 지역에선 나중에 전세 보증금을 떼이는 피해가 생길 수 있으니 세입자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집값 하락 국면에서 역전세 현상이 확산하면,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하거나 세입자도 모르는 사이 집이 경매 매물로 올라가는 등 전세 사고가 늘어난다. 실제로 집주인이 세입자의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보증금 반환 보증 사고는 해마다 가파르게 늘고 있다. 올해 1~5월 세입자가 집주인에게서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해 HUG(주택도시보증공사)가 대신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 사고금액만 2724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2021억원)보다 35% 증가했다. 세입자가 보증금을 떼인 사고 건수는 2018년 372건에서 지난해 2799건이 돼 3년 사이 7배 이상으로 늘었다.

◇ 집값 떨어지자 역전세 속출 ’깡통전세’ 피해 올해만 2700억…세입자 피해 우려

지난 2월 서울 강서구 화곡동 빌라 세입자 김모씨는 집주인에게 “집값이 떨어져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으니 전세를 연장하거나, 차라리 집을 매수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김씨는 보증금 2억원에 전세 계약을 맺었는데, 최근 2년 사이 2억2000만원이던 집값이 1억원대로 떨어진 것이다. 다행히 김씨는 HUG의 전세 보증금 반환 보증에 가입해서 지난달 보증금 전액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전세 계약 때 전셋값이 매매가보다 비싼 경우엔 전세 보증금 반환 보증에도 가입할 수 없어 특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HUG 관계자는 “집값이 전세 보증금과 주택에 포함된 선순위 채권의 합보다 비싼 경우에만 반환 보증에 가입할 수 있다”며 “전세가가 매매가격과 비슷하거나, 역전세인 매물은 될 수 있으면 계약을 피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부동산 업계에선 통상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이 80%를 넘어서면 ‘깡통 전세’ 위험이 크다고 본다. 이미 지방 중소 도시 중에 전세가율 80%를 넘기는 도시가 적지 않다. 1일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5월 기준 전남 광양이 85%로 전국에서 전세가율이 가장 높았다. 청주 서원구(84.3%), 경기 여주(84.2%), 충남 당진(83.5%), 전남 목포(83.4%), 경북 포항(82.9%) 등도 전세가율이 80%를 웃돌았다.

실제로 전셋값이 매매가격을 추월하는 역전세 거래는 지방 중소 도시에서 빈번히 나타난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강원 원주시 단계동 C아파트 전용면적 59㎡는 지난달 1억2000만원에 전세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한 달 전 매매 실거래가는 전셋값보다 2500만원 낮은 9500만원이었다. 경남 김해시 부곡동의 D아파트 전용 80㎡도 매매 실거래가(1억4900만원)보다 1300만원 비싼 1억6200만원에 전세 세입자를 맞았다.

◇외지인 투자 수요 몰린 지역 특히 조심해야

수도권에선 상대적으로 집값이 싼 도시형생활주택에서 역전세 현상이 나타난다. 도시형생활주택은 소형 평형으로 구성된 300가구 미만의 단지형 빌라를 가리킨다. 경기 평택시 E빌라(전용 25㎡)는 지난 4월 7000만원에 팔린 매물이 지난달엔 9500만원에 세입자를 맞았다. 경기 의정부시 F빌라(전용 17㎡) 매물도 지난 5월 매매가격(7500만원)보다 1000만원이 더 많은 전세 8500만원에 계약됐다.

역전세 현상은 공시가격 1억원 이하 초저가 주택에 특히 많다. 공시가격 1억원 이하 주택은 다주택자에 대한 취득세, 양도세 중과가 적용되지 않아 투자 목적으로 사들이는 경우가 많다. 김광석 리얼하우스 대표는 “지방 초저가 아파트는 규제를 피해 단기 시세 차익을 노리는 외지인들의 갭 투자 수요가 많다”면서 “최근 집값이 주춤하자 자기 돈을 안 들이고 집을 사는 ‘마이너스 갭 투자’까지 생겼다”고 말했다.

실제로 역전세가 나타난 지역은 외지인의 주택 매입 비율이 높게 나타났다. 지난 4월 경남 김해에선 전체 아파트 거래(810건) 중 44%(353건)가 외지인이 사들인 것이었다. 강원 원주 역시 전체 거래 671건 중 40%(266건)의 매수자가 다른 지역 사람이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대출 금리가 더 오르고,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으면 지방 소형 주택은 수도권보다 가격 하락세가 훨씬 두드러질 수 있다”면서 “전셋집을 찾을 때 지나치게 전세가율이 높은 집은 피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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