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3나노의 세계

박건형 논설위원 2022. 7. 2.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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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파인만은 1959년 미국 물리학회 강연에서 원자 규모로 물질을 다루게 되면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고 했다. ‘나노 세계’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제시한 것이다. 그는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24권을 2만5000분의 1 크기로 줄여 직경 1.6㎜ 머리 핀 굵기에 담는 사람에게 1000달러를 주겠다고 했다. 청중은 모두 농담으로 여겼다. 1985년 스탠퍼드대 학생 톰 뉴먼이 이 상금을 가져갔다.

▶10억분의 1을 의미하는 나노(nano)는 난쟁이라는 뜻의 고대 그리스어 나노스(nanos)에서 유래했다. 1나노 미터는 원자 3~4개를 늘어놓은 정도 길이다. 사람이 볼 수 있는 가시광선의 파장은 수백 나노미터 수준이다. 나노 기술은 가시광선 파장보다 작은 물질을 볼 수 있는 현미경이 1981년 개발된 뒤에야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원자와 분자를 볼 수 있게 되자 깎고 다듬고 재배열도 할 수 있게 됐다. 이 현미경을 발명한 IBM 과학자들은 5년 뒤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나노 기술은 과학과 산업은 물론 인류의 삶을 바꾸고 있다. 휘거나 말 수 있는 디스플레이, 깃털보다 가볍지만 강철보다 단단한 금속 같은 첨단 분야는 물론 자외선 차단제와 골프공도 나노 기술로 만든다. 사람의 혈관 속을 누비며 약물을 정확히 전달하는 나노 로봇을 개발하는 과학자도 있다. 공상과학영화 이너스페이스가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 10년간 나노 기술 특허를 가장 많이 출원한 회사는 IBM, 그 다음은 삼성전자와 도시바이다. 캐논, TSMC, 인텔도 10위 안에 있다. 모두 반도체 기술을 개발하거나 생산하는 곳들이다. 반도체는 시장에서 가장 앞선 기술, 이른바 ‘선단 기술’을 가진 회사가 시장을 독식한다. 먼저 제품을 출시해서 비싸게 판매한 뒤, 경쟁사가 따라오면 가격을 낮춘다. 지난 수십년간 수많은 기업들이 이 경쟁을 이기지 못하고 도태됐다.

▶삼성전자가 그제 세계 최초로 3나노 반도체 양산을 시작했다. 3나노 반도체는 반도체의 회로 선폭이 10억분의 3m라는 얘기이다. 20년 전만 해도 100나노가 반도체의 한계라고 여겼고, 10년 전엔 10나노의 벽을 넘기 힘들다고 했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매번 예상을 뛰어넘고 있다. 반도체 회사와 과학자들은 이미 1나노 이후를 연구하고 있다. 나노의 1000분의 1인 피코(pico), 100만분의 1인 펨토(femto) 기술 시대가 열리면 우리는 또 어떤 세상에 살게 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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