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나폴레옹과 조세핀이 마시던 진짜 보르도 와인”

김성윤 음식전문기자 2022. 7. 2. 03:0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 의해 수정되어 본문과 댓글 내용이 다를 수 있습니다.

[아무튼, 주말] 19세기 보르도 와인 복원했다는
세계 최고가 ‘리베르 파테르’
로익 파스케 대표가 자신이 만든 ‘리베르 파테르’ 와인 시음 행사를 위해 서울을 찾았다./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여러분은 나폴레옹 황제와 조세핀 황후가 마시던 보르도 와인을 맛보고 있습니다.” 로익 파스케(Pasquet·46) 대표가 자신이 빚은 ‘리베르 파테르(Liber Pater)’ 와인을 잔에 따르며 말했다. 파스케 대표는 지난달 8일 와인수입사 ‘코지와인’이 마련한 시음 행사를 위해 자신의 와인을 들고 방한했다.

파스케 대표가 프랑스 보르도 그라브(Graves) 지역에서 생산하는 리베르 파테르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와인’으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출고가가 무려 3만5000유로(약 4800만원). 김성중 코지와인 대표는 “정부에 내야 하는 세금(출고가의 약 45%), 여기에 운송비, 성분 분석 검사 비용, 마진 등을 붙이면 소비자가는 8500만원가량으로 책정될 듯하다”고 했다. 시음회에 참석한 국내 와인 업계 관계자들은 “와인 한 병(750mL)에서 7~8잔이 나오니까, 1잔당 1063만~1214만원인 셈”이라며 흥분한 표정이었다.

파스케 대표는 “리베르 파테르가 보르도 와인의 진정한 맛을 되살렸다”고 주장한다. 그의 주장을 이해하려면 19세기 후반 유럽 포도나무를 초토화시킨 ‘필록세라(Phylloxera) 사건’을 알아야 한다. 필록세라는 진딧물의 일종으로, 포도나무 뿌리와 잎에 붙어 수액을 빨아 먹음으로써 포도나무를 말라 죽게 한다. 필록세라는 북미 대륙이 원산지. 미국의 포도나무를 프랑스에 연구 목적으로 들여오면서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필록세라는 ‘포도나무 흑사병’이라 불릴 만큼 무시무시한 재앙이었다. 프랑스 와인 생산량은 1860년대 50억~60억L에서 20년 만에 절반 수준으로 추락했다. 다행히 1881년 미국 포도나무가 필록세라에 면역력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미국 포도나무 뿌리에 유럽 포도나무를 접붙이는 시도가 성공을 거뒀고, 유럽 와인 업계는 마침내 필록세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현재 프랑스에서 재배되는 포도나무 대부분이 접목 방식으로 재배된다. 동시에 지역별 전통 포도나무 품종은 상당수가 사라지게 됐다.

파스케 대표는 “필록세라 이전 보르도 와인 맛을 재현하려면 뿌리부터 줄기까지 토착 포도나무 품종이라야 한다”고 했다. “포도나무 뿌리는 토양의 특성을 빨아들이는 필터와 마찬가지입니다. 보르도 지역에 최적화된 포도나무 품종의 뿌리가 아닌, 미국 포도나무 뿌리라는 ‘잘못된 필터’를 사용한다면 테루아(terroir·토양, 강수량, 일조량 등 와인 생산을 둘러싼 자연환경 전반)의 특성을 온전히 와인에 담아낼 수 없습니다.”

2015년산 '리베르 파테르' 와인./코지와인

엔지니어 출신인 파스케는 13세 때부터 와인을 사 모았을 정도로 관심이 많았고, 30세이던 2006년 프랑스 자동차 기업 푸조를 그만두고 그라브 지역 오래된 포도밭을 인수해 ‘필록세라 이전 보르도 와인의 원형’이라는 자신의 목표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프랑스 남부에서 프티트 비두르(Petite Vidure), 카스테(Castets), 타르네(Tarnay), 생 마케르(Saint Macaire) 등 접붙이지 않은 토종 포도나무 품종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파스케 대표는 포도 품종뿐 아니라 재배, 양조 방식까지 필록세라 이전 보르도 전통을 따른다. 헥타르당 포도나무 1만 그루 식재가 일반적인 반면, 파스케는 과거 방식대로 헥타르당 2만 그루를 심었다. 포도나무 열(列) 간격이 좁으니 트랙터는 물론, 말조차 들어갈 수 없어서 덩치가 작은 노새를 부려 150년 전 만들어진 나무 쟁기로 농사를 짓는다. 인공·화학 비료나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는 100% 유기농법이다.

와인 발효와 숙성은 대부분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사용하던 토기인 암포라(amphora)에서 한다. “과거 보르도에는 시멘트 저장고가 많았습니다. 오크통을 과하게 사용할 경우 포도 품종과 테루아 본연의 특성을 가릴 수도 있고요.”

이렇게 생산한 리베르 파테르는 현대적으로 양조한 와인보다 비쌀 수밖에 없다. 게다가 생산량이 한 해 500병에 불과하다. 영국과 미국 등에서는 이미 와인 컬렉터들에게 수집 대상으로 주목받으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시음회에 참석한 장보리 소믈리에는 “진하거나 강하지 않으면서 아로마(향)의 여운이 길었고, 빈속에도 탄닌이 부담스럽지 않고 부드러웠다”며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19세기 보르도 와인의 맛을 재현했다는 독창성에 희소성까지 감안하면 충분히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지구온난화로 기온이 올라가는 등 포도 생산과 와인 양조 조건이 달라진 상황에서 과거 방식을 그대로 따르는 게 의미 있느냐”는 의문을 갖는다. 파스케는 “리베르 파테르 포도밭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을 극복하기에 유리한 토양을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