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 코리아] 런던 공항서 짐 잃고 택시 대란 떠올린 이유

김미리 문화부 차장 2022. 7. 2.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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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객 폭증에 마비된 유럽서
코로나 이후 과부하 현상 절감
택시 대란 등 한국도 예외 아냐
‘회복 탄력성’ 기를 계기로 삼아야
수화물 시스템 고장으로 여행 가방이 산더미처럼 쌓인 히스로 공항. /Stuart Dempster 트위터

거대한 여행 가방의 쓰나미에 말문이 막혔다. 초현실적 풍경에 누군가는 설치 예술 아니냐고 했다. 열흘 전 2년여 만에 오른 해외 출장길, 런던 히스로 공항에서 겪은 대혼돈 장면이다.

최종 목적지는 덴마크 코펜하겐이었지만 경유지 히스로 공항에서 연결 편이 갑자기 결항했다. 짐은 행방불명. 영문 모를 대규모 결항이 이어지며 공항은 아수라장이 됐다. 짐 잃은 다국적 동지 수만 명이 얼굴 가득 피로와 짜증을 욱여넣고 하염없이 수하물 컨베이어 벨트를 쳐다볼 뿐이었다. 이유를 설명하는 안내 방송도, 직원도 없었다. 히스로 공항에서 일주일 머물고 책 ‘공항에서 일주일을’ 쓴 작가 알랭 드 보통이 떠올랐다. “화성인을 데리고 단 한 장소에 간다면 공항. 현대 문화의 상상력이 넘치는 곳”이라 예찬했던 그. 이 지옥을 경험해도 같은 생각일까 싶었다.

다음 날 ‘수하물 산(baggage mountain)’이란 헤드라인으로 도배한 영국 언론을 보고서야 상황이 파악됐다. 방역 해제 이후 첫 여름휴가를 맞는 유럽에서 그 사이 억눌린 여행 수요가 폭발했다. 공항에 짐이 넘쳐나며 수하물 처리 시스템이 마비된 것이었다. 설상가상 공항과 항공사의 대규모 인원 감축 여파로 현장에서 문제를 처리할 인력은 턱없이 부족했다.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진 히스로 공항은 갑자기 항공편 90여 편을 강제 결항시켰다. 그 바람에 여행객 1만5000여 명과 짐이 속수무책 공항에 묶여버렸다. 영국만이 아니다. 유럽 도처에서 비슷한 상황이 속출하고 있다.

히스로 공항의 대혼란 한가운데서 어쩌면 이것이 우리의 가까운 미래일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다. 아직 방역 고삐를 완전히 풀지 않아 인천공항은 한산하지만, 얼마 지나 해외여행이 정상화되면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코로나 사태 직전, 우리는 연간 해외여행객 3000만 시대를 열었다. 여행 금단현상 겪은 이들이 공항으로 쏟아질 것이 자명하다.

문제는 공항뿐만 아니다. 엔데믹을 향해 가며 사람들의 심리적 정상화 속도를 서비스 정상화 속도가 못 따라가면서 과부하에 따른 ‘병목현상’이 여기저기 도사려 있다. 택시 대란만 봐도 그렇다. 지난 2년간 법인 택시 기사가 30% 정도 준 탓에 거리 두기 해제 이후 폭발한 택시 수요를 좀처럼 못 따라간다. 스마트폰에 택시 호출 앱 3개를 깔아놓은 지인은 장마철 되니 아예 포기라고 했다. 택시 잡느라 서울 밤거리를 헤매는 무리와 히스로의 짐 잃은 여행객은 정확히 포개진다. 강남의 한 유명 식당은 직원 뽑기가 너무 어려워 두 층 가운데 한 층을 아직 못 열고 있다. 손님은 코로나 이전 수준으로 회복됐는데 일손이 부족해 다 못 받는다고 주인이 울상 짓는다.

바이러스만 사그라지면 모든 게 정상화될 줄 알았더니 예상치 못한 회복 지체가 발생하고 있다. 우리 사회의 ‘회복 탄력성(resilience)’, 즉 ‘충격 이후 제자리로 돌아오는 힘’이 시험대에 올랐다. 마커스 부르너마이어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가 신간 ‘회복 탄력 사회’에서 강조한 대목이 인상적이다. “지금까지 세상은 효율을 우선시해 모든 것을 타이트하게 관리하는 ‘적시(just in time) 대응’ 원칙을 강조했지만, 코로나 이후엔 비효율적으로 보이더라도 ‘만일의 경우(just in case)’에 대비해 어떤 충격도 잘 흡수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한다.

자전거 타기에 비유하자면 무조건 빨리 목적지에 가기보다 바람 불어도 계속 자전거를 굴릴 수 있는 속도와 요령이 더 중요해졌다. 그 사이 빨리 갈 줄만 알았던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코로나 이후 조금 느려도 제대로 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근력(筋力)을 제대로 키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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