核 진실 밝혀진 '쿠바 미사일 위기'.. 한반도는 안심할 수 있나

윤상진 기자 2022. 7. 2.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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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출신 하버드대 역사 교수
새롭게 공개된 KGB 문서 통해 당시 소련 핵 보유 상황 재조명

핵전쟁 위기

세르히 플로히 지음 | 허승철 옮김 | 삼인 | 463쪽 | 2만4000원

1992년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한 학술대회.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핵탄두가 장착된 9기의 미사일이 쿠바에 있었다는 소련 전직 장성의 증언이 나왔다. 핵탄두 한 기의 위력은 1945년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탄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었다. 당시 미국은 쿠바에 있는 소련 미사일 기지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공습’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그렇지만 미국은 소련이 쿠바에 핵을 보유하고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위기 당시 미국의 국방장관이었던 로버트 맥나마라는 30년이 지나서야 핵전쟁이 운 좋게 비켜갔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쿠바에 핵탄두가 있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쿠바 미사일 위기 해결 과정은 안보 위기 관리의 ‘모범’으로 평가받아왔다. 케네디와 최측근 참모들의 상황 판단과 올바른 의사 결정 덕분에 결국 소련과의 갈등을 해결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출신 하버드대 역사학 교수인 저자는 지난해 출간한 이 책에서 새롭게 공개된 KGB(소련 정보기관) 문서 등 소련 측 자료를 아우르며 쿠바 미사일 위기가 결코 미국 외교 안보 정책의 승리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오히려 핵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었던 백악관과 크렘린궁의 오판들을 조명한다. “케네디와 흐루쇼프 둘 다 쿠바 위기가 미국과 소련의 핵전쟁으로 비화될 것을 두려워했던 것이 전면 충돌이 발생하지 않았던 결정적 요인”이라고 저자는 진단한다. 핵전쟁을 막은 것은 ‘이성’이 아니라 ‘공포’였던 셈이다.

쿠바 미사일 위기는 소련이 1962년 플로리다와 불과 200여㎞ 떨어진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설치하며 본격화됐다. 이즈음 미국은 터키와 유럽에 모스크바를 타격할 수 있는 핵무기를 갖고 있었지만, 반격할 수단을 갖지 못한 소련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1959년 반미 노선의 카스트로가 쿠바 정권을 잡았다. 쿠바의 전략적 가치에 주목한 흐루쇼프는 미사일 기지를 설치하기로 결정한다.

‘쿠바 미사일 위기’가 본격화되기 전인 1961년, 빈에서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과 니키타 흐루쇼프 소련 공산당 총리가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미국의 쿠바 피그스만 침공 작전과 베를린 장벽 등의 현안이 나온 회담에서 두 정상은 서로의 입장 차이를 확인했고, 이후 냉전은 최고조로 향하게 된다. /삼인

1962년 10월 15일. 미군의 U-2 정찰기가 쿠바 상공에서 담아온 사진엔 미국 동부 지역을 타격할 수 있는 소련의 지대지미사일이 포착됐다. 미사일 위기에 대응하는 백악관의 모습은 합리적 의사 결정 과정보단 ‘혼란’에 가까웠다. ‘유약하고 경험 없는 대통령’ 꼬리표를 떼고 싶었던 케네디는 두 가지 선택지를 떠올린다. 하나는 미사일 기지에 대한 국부 공습이었고, 다른 하나는 전면 공습이었다.

“쿠바에 8기의 소련 미사일이 전투 배치됐다”는 CIA의 보고가 들어오며 공습 대신 소련의 선박들이 쿠바로 오지 못하게 막는 ‘해상 봉쇄’ 전략이 채택됐지만, 이후 소련으로 회항하는 소련 선박에 공격 명령을 내리는 등 백악관은 우왕좌왕했다. 크렘린궁의 선택이 위기를 부르기도 했다. 흐루쇼프는 쿠바의 소련 미사일 기지와 터키의 미국 미사일 기지 공동 철수를 제안했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미국의 합참과 백악관의 ‘매파’들을 자극해 쿠바 대규모 공습 계획을 준비하게끔 하는 결과로 이어지기도 했다. 당시 소련군은 쿠바가 공격당할 경우 쿠바 현지 소련군 사령관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던 참이었다.

백악관과 크렘린의 판단은 실수로 가득했지만, 케네디와 흐루쇼프 두 지도자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경험한 세대. 냉전기 이어진 수소폭탄 실험을 통해 고도화된 핵무기의 파괴력도 실감했다. 핵전쟁이 몰고올 파국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이들의 선택이 극단적 최후를 막았다는 것이다. 저자는 “두 지도자는 원자폭탄이 인류 전체를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이들의 행보를 결정한 것은 핵무기에 대한 두려움이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우크라이나 전쟁 1년 전 이 책을 썼다. 그동안 쿠바 미사일 위기는 더 이상 과거가 아니게 됐다. 우크라이나에선 러시아의 핵무기 사용 가능성이 언급된다. 하지만 오늘날 세계 지도자들은 케네디와 흐루쇼프가 느꼈던 위기감을 공유하지 않는다. ‘핵은 핵으로 막을 수 있다’는 주장이 오히려 힘을 얻는다. 미국과 러시아는 2019년 냉전 시대부터 이어져온 무기 통제 합의인 ‘중거리핵전력조약’을 탈퇴했다.

소련 측 방대한 기록을 참고했다. 미국과 소련의 입장을 대조하며 당시 양국 수뇌부 앞에 펼쳐진 장면들을 생생히 보여준다. KGB가 수집한 정보를 통해 쿠바로 향하는 러시아 장병들의 대화 내용도 담았다. 북한의 핵 공격 능력이 고도화·현실화되고 있는 한반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핵전쟁에 가장 근접했던 쿠바 미사일 위기를 통해 우리가 어떻게 핵 위기에 대처해야 할지 점검해 볼 수 있게 하는 책. 한국의 핵 안보 정책을 돌아볼 수 있는 반면교사가 되기도 한다. 원제 Nuclear Folly: A History of The Cuban Missile Cris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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