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레터] 음식과 바꿀 이야기
“나를 현실주의자로 만든 것은 떠돌이 생활의 혹독한 훈련이었다. 현실주의자만이 남의 집 부엌에서 음식과 바꿀 만한 이야기를 짜낼 수 있다.”
잭 런던의 책 ‘더 로드(The Road)’(지식의편집)에서 읽었습니다. 19세기 미국 소설가 잭 런던은 어린이 대상 축약판으로도 많이 소개된 ‘야성의 소리’ 저자이기도 합니다. ‘야성의 소리’의 주인공 벅은 판사 가족의 반려견으로 안온하게 살다가 개도둑이 썰매개로 팔아넘기면서 알래스카의 거친 설원(雪原)으로 내던져지죠. 폭력이 난무하는 냉혹한 세계에서 살아남은 벅이 야성을 되찾고 늑대개의 우두머리가 되는 이야기.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 저자의 성(姓)이 ‘런던’인데 왜 영국 작가가 아닌지 의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더 로드’는 금 채굴꾼, 선원 등 다양한 직업을 거쳤던 런던이 호보(hobo, 떠돌이 노동자) 생활을 하던 젊은 날을 기록한 책입니다. 떠돌이 시절 런던은 남의 집 문을 두드리며 그럴듯한 이야기로 주인을 설득해 음식을 구걸해야만 했답니다. 이 경험이 글쓰기의 자양분이 되었다고 하네요. “음식을 얻기 위해 나는 진실성이 느껴지는 이야기들을 지어내야 했다. 나는 남의 집 뒷문에서 권위 있는 평론가들이 단편소설의 미학적 요소라고 평가하는 진정성과 현실성을 키울 수 있었다.”
고난 없는 인생이란 없지만, 그 고난을 어떤 이야기로 엮어가느냐는 각자의 의지와 재능, 천성과 운에 달려 있겠죠. 런던은 썼습니다. “호보는 다음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절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오직 현재만을 살아간다. 목표를 가지고 노력을 한다 한들 소용없다는 걸 배웠고, 우연이라는 변덕에 몸을 맡기고 흘러가는 즐거움을 안다.”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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