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이방인이 본 조선.. '날것 그대로' 전하다

이복진 2022. 7. 2.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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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884년 우리나라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에 관한 기록이다.

뫼르젤뿐만 아니라 수많은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이 기록들로 인해 우리나라의 역사적 순간들에 드리워져 있던 장막이 또 다른 쪽에서 열린다.

우리나라에는 들어오지 못하니 일본에서, 그리고 중국에서 이웃 나라 조선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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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허 '중국도설'·하멜 '하멜 표류기' 등
조선에 대해 기록한 서양 고서 46권 탐색
단 몇 문장의 표현이나 막연한 동경·미화
무의식적 혐오·폄하·왜곡된 내용들까지
마주하기 불편한 기록들 가감 없이 소개
우리가 미처 몰랐던 역사 이야기도 전해
저자는 고서에 기록된 당시 외국인들이 바라본 조선의 모습은 허점투성이에 오류가 난무하지만,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다며 고서를 통해 지금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보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사진은 로웰의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 은행나무 제공
1만1천권의 조선/김인숙/은행나무/2만2000원

“보초를 보고 있던 사람들이 우리에게 와서 일본인들이 공사관의 깃발을 내렸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얼마 후 우리는 ‘와’ 하는 함성과 일제히 사격을 가하는 소총 소리를 들었다. 바로 그때 일본인들은 그들의 공사관을 버리고 서울을 빠져나가기 위해 길을 떠났던 것이다. 그들은 2열 종대로 길게 늘어서 걸어갔다. 군인들이 각 대열을 인솔하고 있었다. 무장한 민간인들이 열의 끝에 따라붙었고, 열 사이에는 일본 공사, 부대를 지휘하는 장교, 공사관 관리 그리고 약간의 일본 여인들이 걸어갔다. 또 열 사이에는 석 대의 가마가 있었다. 가마가 넉 대라고 말한 이도 있었지만, 나는 석 대밖에는 보지 못했다. 각각의 가마에는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이 타고 있었다.” (‘갑신정변 화상기’ 중)

이 글은 1884년 우리나라에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에 관한 기록이다. 맞다. 갑신정변이다. 이토록 생생한 목격담을 쓴 사람은 조선인이 아니다. 독일인 뫼르젤이다. 당시 인천 해관에서 근무하던 그는 정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상사인 묄렌도르프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급히 서울로 갔다. 그리고 위와 같은 장면들을 목격했다. 뫼르젤뿐만 아니라 수많은 외국인이 우리나라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이 기록들로 인해 우리나라의 역사적 순간들에 드리워져 있던 장막이 또 다른 쪽에서 열린다.
김인숙/은행나무/2만2000원
누군가에게는 역사를 통으로 뒤집는 순간이 이들에게는 타인의 일일 뿐이다. 그들과 약간의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그러나 남의 나라,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일. 그래서 냉정하고, 그래서 냉담하고, 또 반면 그래서 연민을 보이기도 하는 이들의 시선이 그들의 글에 담겨 있다.
키르허의 ‘중국도설’부터 하멜의 ‘하멜 표류기’, 샬의 ‘중국포교사’, 키스의 ‘오래된 조선’, 카를레티의 ‘항해록’, 프로이스의 ‘일본사’, 쿠랑의 ‘한국서지’ 등. 우리나라가 서구권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6세기 무렵부터다. 물론 그 이전에 신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아랍과의 교역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소개가 되는 시기를 찾아보면 그 기점이 16세기다. 가톨릭 선교사 역할이 컸다. 우리나라에는 들어오지 못하니 일본에서, 그리고 중국에서 이웃 나라 조선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책에 실린 고종의 모습. 은행나무 제공
그런데 이 고서들 속 조선에 대한 기록은 허점투성이에 오류가 난무한다. 우리나라가 등장하는 부분이 단 한 줄 혹은 몇 문장에 그치는 경우도 많고, 그마저도 자신들의 고정관념과 이해관계가 덧씌워진 채 왜곡되기 일쑤다. 막연한 동경이나 미화 혹은 무의식적인 혐오와 폄하의 틀을 벗어던지지 못해 마주하기 불편한 기록들도 적지 않다.
크랜의 ‘조선의 꽃들과 민담’. 은행나무 제공
저자는 이 모든 구부러지고 빗겨나간 정보들을 있는 그대로 소개한다. 저자가 3년간 명지-LG한국학자료관에서 접한 서양 고서 46권. 책들에 관한 이야기와 책을 집필한 인물과 그 시대의 이야기, 그리고 책과 책 사이에 숨겨진, 미처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 속 이야기와 그들의 눈에 비친 우리들의 모습을 전한다. 예컨대 ‘금과 은이 풍부한 나라’(핀투의 ‘핀투 여행기’), ‘자유연애를 하고 부모의 허락 없이 결혼할 수 있는 나라’(마르티니의 ‘타르타르의 전쟁’), ‘모세의 후손으로 이스라엘의 사라진 열 지파 중 하나’(맥레오드의 ‘조선과 사라진 열 지파’) 등 자신들이 잘 모르는 막연한 나라에 대한 환상부터 ‘겁 많고 게으르며 비능률적인 민족’(런던의 ‘신이 웃을 때’), ‘달콤하고 정겹지만 결코 서구인을 넘어서지는 못할 착한 미개인’(뒤크로의 ‘가련하고 정다운 나라 조선’)과 같은 서구중심주의에 물든 시선 등이다.
하멜의 ‘하멜 표류기’ 네덜란드어 회팅크 완역본. 은행나무 제공
그러면서 책은 마지막에 조선인이 바라본 조선을 담았다. 바로 조선의 제26대 국왕이자 대한제국의 초대 황제인 고종의 시선이다. 1909년 덕수궁 함녕전에서 고종의 운에 맞춰 이완용과 이토 히로부미 등은 칠언절구의 시를 짓고, 이는 긴 두루마리 형태로 기록된다. ‘함녕전 시첩’이다. 외세의 격랑 속 조선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았던 그 시기 고종은 ‘인(人), 신(新), 춘(春)’을 제시한다. 춘추전국시대 적왕 초나라 문왕에게 애첩으로 아들 셋을 나을 때까지 일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한 식나라 왕비 도화부인을 기린 두목(杜牧)의 시에서 가져왔다고 저자는 해석했다. 망해가는 나라의 왕이었고, 침략자를 위한 연회에서도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던 고종은 ‘인, 신, 춘’ 석 자로 도화부인을 떠올렸던 것이다.
하멜의 ‘하멜 표류기’ 독일어판본. 은행나무 제공
“고대하던 단비 내려 온 백성 적시니(甘雨初來霑萬人) / 이토 히로부미

함녕전 이슬 머금은 꽃이 새롭네(咸寧殿上露華新) / 모리 오오라이

일본과 조선이 무엇이 다르겠는가(扶桑槿域何論態) / 소네 아라스케

두 땅이 한 집을 이루어 천하에 봄이 왔네(兩地一家天下春) / 이완용” (함녕전 시첩)

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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