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작품에 쓰려면 약보다 질병이 특효
여인석 외 지음
역사공간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35세 정도이던 조선시대에 가장 오래 산 왕은 영조다. 병약했으나 건강관리를 잘해 장수했다. 영조의 장수 비결이 인삼이라고 전해지는데, 83세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보약으로 인삼을 애용했다고 한다.
질병이 발생하기 전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 보양하고, 보약을 널리 사용하기 시작한 건 18세기에 나타난 문화적 현상이다. 다만 보약은 사회의 상층계층에 한정됐고, 극소수만 이용할 수 있었다. 보약은 긍정적 이미지를 쌓기도 했지만 동시에 치료라고 하는 의학의 본질을 약화하는 결과도 가져왔다. 한의학은 보약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냈으며, 이런 프레임은 여전히 한의학의 특징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근대 이후 현재의 제약 업계가 자리 잡기 시작한 건 해방과 한국전쟁을 치른 이후다. 1953년 약사법 제정으로 한국의 제약 업계가 생산 기반을 갖추기 시작했고 약품 광고가 나오면서 항생제, 소화제, 진통제, 자양강장제, 비타민 등의 일반의약품 시장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문학작품에서 약이 등장하기도 하는데 질병보다는 낮은 지위를 차지했다. 질병은 문학적 서사의 매력적인 출발점이 될 수 있었던 반면, 약은 치료의 목적으로 등장한 과학의 영역이기에 질병만큼 비유나 상징의 의미를 담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 번 생각해보자. 코로나19라는 질병을 소재로 다양한 소설이나 시, 수필이 나올 수 있겠지만 코로나19치료약이 그런 역할을 하기는 쉽지 않은 노릇이다.
약은 인류의 출현과 함께 나타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늘 새로운 질병이 나오기 마련이고 이런 질병의 해결책은 약에 있다. 『약의 인문학』은 ‘약’이라는 의학적 대상을 문화, 역사, 철학 등 인문학적 접근으로 풀어냈다. 책은 인문학과 의학의 융합적인 시각에서 기획된 연세대 의학사연구소의 인문학 시리즈 중 한 권으로, 주제별로 7명의 저자가 쓴 글을 모았다. 약에 관한 다양한 접근 방식이 흥미롭다. 순차적으로 읽지 않고 분야별로 관심 있는 주제만 골라 읽어도 충분하겠다.
서지명 기자 seo.jim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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