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 찰 때처럼 미친듯 영업" 2년 만에 보험왕 된 '리틀 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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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오디세이] 축구선수 출신 세일즈맨 김명수씨
축구 국가대표팀 주전 공격수 황희찬(26·울버햄튼)과 초등학교 시절 함께 뛴 축구 소년이 있었다. 발이 빠르고 개인기도 좋았던 이 소년의 이름은 김명수. 축구에 미쳤다고 할 만큼 열심이었다. 그런데 프로팀 입단을 앞두고 큰 부상을 당했다. 재기를 노렸지만 희귀병이 그를 덮쳤다. 울면서 축구화를 벗어야 했다. 그가 초등학교 코치로 잠시 일할 때 나는 그를 본 적이 있다.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2년 뒤 그가 나를 찾아왔다. 단정히 빗어넘긴 머리에 말끔한 정장 차림. 양 손목에는 고급 시계와 팔찌가 번쩍이고 있었다. 그는 축구판을 떠나 보험 영업을 시작해 2년 만에 전국 보험왕에 올랐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9월 어센틱금융그룹(AFG)에 스카우트돼 곧 부지점장이 된다. 그가 일하고 있는 인천 구월동의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했다. ‘운동만 했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듣는 느낌이었다.
Q : 본인의 역할을 소개해 주시죠.
A : “저희 어센틱금융그룹은 여러 금융회사와 제휴해 보험·예적금·대출·펀드 등 금융상품을 비교하여 컨설팅 하는 회사입니다. 저는 예비 부지점장으로서 전국 지점 교육과 팀 관리를 중점으로 합니다. 물론 제 영업도 계속 하고 있죠.”
Q : 본인의 축구 커리어는?
A : “프로축구 FC 서울의 유스 팀이었던 동북고와 오산고에서 주전으로 뛰었어요. 강원 FC로 가기로 된 고3 때 인대가 파열되는 큰 부상을 당했고, 강원 구단에서 ‘부상 완치하고 오라’며 지방 전문대로 저를 보냈어요. 자존심이 상해 뛰쳐나온 뒤 필리핀-태국 등에서 뛰며 갖은 고생을 했습니다.”
Q : 국내 팀에서 뛴 적도 있나요?
A : “2019년 FA컵에서 K3(4부리그) 소속인 화성 FC가 4강에 올라 프로 팀 수원 삼성을 1차전에서 꺾는 파란을 일으켰어요. 당시 제가 그 팀 소속이었는데 이미 희귀병이 진행 중이어서 경기는 못 뛰었죠. 강직성 척추염이라고, 뼈가 점점 굳는 병인데요. 아직까지는 우리나라에서 완치법이 나오지 않았고, 평생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해요.”
Q : 이 병으로 인해 군 면제를 받았죠.
A : “태국에 있을 때부터 아팠고, 화성 FC 들어와서 더 악화됐어요. 허리 디스크 정도로 생각해 정형외과만 다녔는데 서울아산병원 정밀검사에서 정확한 병명을 알게 됐죠. 군 면제 판정을 받은 뒤 ‘2년을 벌었으니 다시 축구에 도전해보자’고 결심했지만 몸이 아픈 건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고요. 의사 선생님도 ‘과격하게 몸을 부딪치면 쉽게 골절상을 당한다’고 만류하셨죠.”
Q : 본인의 축구 스타일은?
A : “포지션은 최전방 바로 아래 공격형 미드필더였어요. 짧게 끊어가는 드리블과 전방으로 찔러주는 패스 플레이를 잘해 고교 때는 ‘동북 메시’라는 별명을 얻었어요. 왼발잡이라 측면 공격수로도 뛰었죠.”
A : “‘이렇게까지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으로 매일을 살았던 것 같아요. 중학교 때는 부천 집에서 모래주머니를 차고 나와 서울 학교(아현중)까지 가는 지하철 구석에서 종아리 강화 운동을 했어요. 책가방에 고무 밴드, 줄넘기, 축구공, 트레이닝복을 넣고 다녔죠. 쉬는 시간 10분이 아까워서 빈 교실에 들어가 줄넘기를 하고, 심지어 화장실 안에서 스쿼트(하체 강화 운동)를 한 적도 많아요. 오죽하면 코치님들이 ‘명수야 운동 좀 그만 해라. 그건 병이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Q : 보험 영업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A : “학교 공부도 짧고 금융에 대한 지식도 없었기에 동기들이 한두 번 들으면 이해하는 내용을 대여섯 번 들어도 모르겠더라고요.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내가 축구 할 때 미친듯이 몰입한 것처럼 이 일에 미쳐 봤나. 그 정도 노력을 해 보고 안 되면 깨끗이 접자’고 다짐했죠. 여의도 사무실에 간이침대를 갖다놓고 일주일에 사나흘은 밤새 공부하고, 새벽에 지하 사우나에서 씻고 영업을 뛰었습니다.”
Q : 2년 만에 업계 최고가 됐는데요.
A : “저는 말수는 적고 자존심은 센 사람인데 성격부터 시작해 1부터 10까지 다 바꿨습니다. 월 1만원짜리 상품부터 시작해 정말 개미처럼 열심히 고객을 만났죠. 한 달 최고 120건까지 계약을 성사시킨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1년 만에 첫 직장에서 전국 실적 1위를 달성했어요. 한 달에 1억원 수입을 올린 적도 있습니다.”
Q : 축구를 한 게 보험 영업에 어떤 도움이 됐나요.
A : “지인의 90%가 축구 쪽인데, 늘 부상 위험에 노출되다 보니 보험의 필요성을 절감하더라고요. 제가 잘못 살지는 않았는지, 본인 가족까지 소개해 주는 경우가 많았어요. 제가 공을 좀 차다 보니 조기축구팀에서 불러주는 곳이 꽤 있었어요. 일주일에 7~8군데 조기회를 뛰면서 자연스럽게 영업도 하고 건강도 지켰죠.”
임원 목표, 축구센터 설립 희망도
Q : 1년 수입을 황희찬 선수와 비교하면?
A : “아직은 제가 훨씬 적죠. 지금은 팀원들 관리하고 교육하면서 영업도 하고 있는데요. 수입은 개인 실적에 따라 달라지는데 월 2000만~4000만원 정도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단순히 돈만 버는 게 아니라 금융 지식이나 사업 마인드를 배우고 있어요. 돈을 버는 것보다 어떻게 불리고 쓸 줄 아느냐가 더 중요하잖아요. 희찬이가 은퇴하고 나면? 그 뒤엔 역전될 지도 모르죠. 하하.”
Q : 운동으로 성공한 사람은 극소수고, 중간에 그만두거나 탈락한 사람들이 많은데요.
A : “15년 동안 목숨을 바쳤던 축구를 그만뒀을 때 너무 막막했는데 세상에 나오니까 의외로 할 수 있는 게 많더라고요. 운동선수들은 운동밖에 할 줄 모른다고 하는데 틀린 말도 아니죠. 그런데 한 가지 일을 10년 이상 죽을 만큼 해 본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것도 저희 같은 20대에요. 그 속에서 얻는 게 굉장히 많습니다. 소위 정신력이라고 하는 멘탈이 강해지고요. 끈기와 성실함, 체력은 일하는 데 큰 무기가 됩니다. 운동했을 때만큼 꾸준히 성실하게 하면 어떤 일이든 잘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 초등학교 때 황희찬에게 달리기 진 뒤 축구의 길
명수가 프로 입단을 앞두고 부상에 발목이 잡혔을 때, 희찬이는 유럽으로 진출했다. 죽어라 운동을 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고, 한 달 100만원이 없어 힘들어 할 때 희찬이는 국가대표가 되고 세계 최고 리그에서 뛰었다.
김명수 부지점장은 “희찬이는 또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기 때문에 그를 보며 부러워하거나 제 신세를 한탄한 적은 없어요. 늘 희찬이 경기를 챙겨보고 주위에 자랑도 했죠”라고 회고한 뒤 “어쩌면 희찬이가 있었기에 무너지는 자신을 다잡고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라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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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UCN 대표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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