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영옥의 말과 글] [259] '싫어'의 심리학
두 돌이 지난 아기가 어떤 말에도 “싫어!”를 외치는 탓에 난감하다고 말하는 하소연을 들었다. 밥을 먹으라고 해도 ‘싫어’라고 말하고, ‘그럼 먹지 마!’라고 해도 ‘싫어!’를 외치니 난감하다는 것이다. 심리학적으로 보면 두세 살 아이들의 ‘싫어!’는 첫 번째 자아 표현이며 호불호가 생겼다는 뜻이다.
정신과 전문의 이즈미아 간지에 의하면 아이들의 ‘싫어!’에는 나에게 지시하지 말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자아를 표현하는 일은 그것이 양육자라고 해도 타인으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해야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는 저서 ‘일 따위를 삶의 보람으로 삼지 마라’에서 아이 입장에서 ‘싫어’는 자기 영토 확보를 위한 독립 전쟁이라고 정의한다. 자아 발달의 순서상 무엇을 하고 싶다거나, 좋아한다거나, 장래에 어떻게 되고 싶다는 의사 표현은 ‘싫어!’가 성립되고 나서야 가능해진다고 말한다.
문제는 부모가 이 시기에 “이게 좋은 거야! 이게 다 널 위한 거야!”라고 자기 가치를 앞세우며 아이에게 ‘아니요’를 허용하지 않을 때 생긴다. 부모에게 모든 걸 의존해야 하는 어린아이 입장에서 생존과 적응을 위해 점점 주체성을 포기하기 때문이다. 다소 방임적으로 키워져 선택할 자유가 많았던 이전 세대에 비해, 요즘 아이들의 고민이 ‘왜 사는지 모르겠고,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흐르는 것도 그런 맥락 안에 있다.
나를 사랑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는 사람에게 싫어하는 열 가지를 적어보라고 조언한다. 자기표현의 첫 발화가 ‘좋아!’가 아닌 ‘싫어!’인 이유가 있다. ‘좋아!’보다 ‘싫어!’가 더 명료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건강을 위해선 몸에 좋은 보약을 먹는 것보다 건강한 몸이 싫어하는 술과 담배를 끊는 게 더 중요하고, 좋은 인간 관계를 위해선 상대가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는 게 더 현명하다. 행복해지기 위해선 일단 내 행복을 방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싫어’는 ‘좋아’보다 온도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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