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 우위 미국 연방대법원, 이번엔 '탈탄소 역주행' 판결

김혜리 기자 2022. 7. 1. 21:52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환경보호청, 온실가스 배출 규제 권한 없다"..바이든 정책에 '찬물'
글로벌 탄소감축 목표 달성 지연 우려..국제사회서 미 리더십 타격

최근 임신중단권 등 첨예한 사회적 이슈들에서 보수 성향 판결을 내놓고 있는 미국 연방대법원이 6월30일(현지시간) 정부의 온실가스 배출규제권에 제동을 걸었다. 조 바이든 정부의 기후변화 정책은 물론 국제사회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연방대법원은 이날 연방정부 기관인 환경보호청(EPA)에 미 전역의 석탄화력발전소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할 권한이 없다고 판결했다. 웨스트버지니아 등 공화당 우세 주들이 EPA의 규제가 주정부 권한을 넘어선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6 대 3의 다수 의견으로 원고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의회가 EPA에 모든 발전소의 배출량을 제한할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하지 않았다”며 “EPA는 우선 입법부에서 그런 권한을 구체적으로 위임받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민주당 재집권으로 힘을 얻을 것으로 기대됐던 탈탄소 정책에 찬물을 끼얹었다. 앞서 버락 오바마 정부는 2015년 미국 내 발전소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32% 감축하겠다며 ‘청정전력계획’을 추진했다. 이에 따라 EPA는 각 주마다 탄소배출 목표를 설정하며 미 전역 석탄화력발전소의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해왔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각 주에 탄소배출 규제에 대한 광범위한 권한을 부여하는 ‘적정 청정에너지법(ACE법)’을 시행하면서 EPA 권한을 철회했다.

지난해 취임한 바이든 대통령은 당선 전부터 ‘기후변화 대응’을 주요 과제로 내세웠다. 기후정책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방기한 미국의 주도적 역할을 재개할 것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그는 취임 첫날 파리기후협약에 재가입한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지난 4월 기후 정상회의에서는 “2030년 말까지 전국 온실가스 배출을 2005년 대비 절반으로 줄이고, 2035년까지 탄소 무공해 전력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하며 국제 협력을 주도했다.

하지만 연방대법원이 EPA의 권한을 축소하면서 ‘바이든표’ 탈탄소 정책에 제동이 걸렸다. 현재 미국에서 발전소 가동으로 인한 탄소배출량은 전체의 30%다. EPA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19개 주의 배출량은 이 중 44%를 차지한다.

로이터통신은 대법원 판결이 미국 탄소배출량 감축을 지연시키고 국제무대에서 미국 리더십을 약화시켜 국제적 기후변화 대응 노력에 타격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테판 뒤자리크 유엔 대변인은 “미국이나 다른 주요 온실가스 배출국들의 이 같은 결정은 건강하고 살기 좋은 지구를 위한 파리 기후변화협약의 목표 충족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했다.

이날 판결로 바이든 정부의 기업에 대한 규제가 약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미국 사회는 그동안 연방정부 기관이 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를 통해 식품, 의약품, 자동차, 소비재, 공기와 물 등의 안전을 보장해왔는데, 연방대법원이 이 같은 연방정부 기관의 권한에 의문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EPA에서 근무했던 리사 하인젤링 조지타운대 법학과 교수는 “새로운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의회에서 법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이는 말도 안 되며 위험한 일”이라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연방대법원 판결은 자유지상주의 보수파들에게 커다란 승리”라고 지적했다.

보수 우위인 연방대법원은 이날 종료된 이번 회기에서 공공장소에서의 총기 휴대 허용과 임신중단권 폐지 등 보수적 판결로 미국 사회를 뒤흔들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연방대법원이 최근 판결들을 통해 20세기의 진보적 유산과 결정적으로 결별했다면서 “야심적인 보수주의의 시대가 열렸다”고 전했다.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