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사고 안 먹고 버틴다..빈곤층에 더 가혹한 '고물가'

허남설 기자 2022. 7. 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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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수급자 두 달 가계부 보니
막막한 하루하루 전기·가스 요금이 동시에 인상된 1일 쪽방 밀집지역인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사는 한 노인이 아픈 허리를 만지며 방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날 빈곤사회연대 등이 국회 토론회에서 발표한 ‘기초수급자 가계부조사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초수급가구의 절반가량이 수입보다 지출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출액이 가장 많은 건 식비와 주거비였다. 김창길 기자
조사가구 절반, 지출이 수입 넘어
안 사고 안 먹고 안 만나고 버텨

“오늘 2만원 넘게 썼다. 하루에 이렇게 많이 쓰다 보면 생계비가 남아나질 않을 것 같다.”

“자주 찾던 한식뷔페 집에 오랜만에 들렀다. 근데 6000원이던 식대가 7000원으로 올라 있었다. 부담돼서 꽈배기로 대충 해결하고 집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한다.”

“20일째 고기 없이 풀밭에서 밥 먹었다. 기운이 없다. 만사가 귀찮다.”

기초생활수급자들이 날마다 직접 쓴 일지 중 일부다. 빈곤사회연대·한국도시연구소 등 빈민·주거복지 단체 활동가들은 지난 2월18일~4월19일 공공·민간임대주택에 사는 기초생활보장 대상자 25가구를 조사했다. 가계부를 쓰게 하고 한 달에 한 번 이상 수급 가구를 찾아 점검했다. 서울·대구·부산·충북 거주자들로 1인 가구(22가구)가 대부분이고 2~4인 가구가 각각 1가구씩 포함됐다.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이 1일 국회에서 개최한 ‘기초생활수급자의 눈으로 보는 2022년 한국의 오늘’ 토론회에서 이들의 두 달치 가계부를 공개했다.

절반 가까운 가구에서 가계 수지가 맞지 않았다. 11가구가 한 달 평균 수입을 초과해 지출했다. 초과 지출액은 월 최소 3만2699원, 최대 244만7102원이었다. 1인 가구만 보면, 초과 지출이 가장 많은 가구를 제외하고 월평균 수입은 86만5858원, 평균 지출은 81만7844원이었다. 한 가구당 한 달 평균 4만8015원이 남았다.

지출액이 가장 많은 건 식비와 주거비였다. 10가구는 식비를, 다른 10가구는 주거비를 가장 많이 썼다. 전체적으로 식비와 주거비는 수입에서 평균 55.7%를 차지했다.

식료품비와 외식비를 포함한 하루 평균 식비는 8618원이었다. 식비 중 식료품비를 품목별로 나눠봤더니 11가구에서 ‘기타식품’ 지출액이 가장 컸다. 기타식품은 죽, 수프, 김치, 반찬 등 별다른 조리를 거치지 않고 즉석에서 먹을 수 있는 식품을 말한다.

그만큼 이들의 식단은 불균형했다. 조사 기간이 2개월인데 생선 등 수산물을 한 번도 사지 않은 가구가 14가구였다. 육류와 과일을 한 번도 사지 않은 가구는 각 9가구였다. 25가구 중 23가구가 당뇨, 혈압, 디스크 등 만성질환이 있었지만 식단은 고르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당뇨를 앓는 한 사례자는 식사를 거르고 우유만 마시는 경우가 많았다. 조사 기간 중 그가 식사를 거른 건 23번, 우유로 식사를 대신한 건 47번, 라면을 먹은 건 34번이었다. 식사를 거른 횟수가 90번에 달한 사례도 있었다. 조사 기간 60일 동안 ‘삼시 세끼’를 먹으면 식사 횟수가 180번이므로 절반은 걸렀다는 이야기다.

■주거급여로 임대료도 못 내…식비부터 줄였다

수지 안 맞는 기초수급자 가계부
수입 안에서 감당 안 되는 주거비
기초수급액 기준 되는 중위소득
치솟은 현실 물가에 뒤처져
가구소득에 걸맞게 현실화해야

임대료, 관리비, 수도·전기·난방비 등 주거비에 비해 주거급여는 팍팍했다. 25가구 모두 주거급여를 받고 있는데, 주거급여만으로 주거비를 감당한 가구는 3가구뿐이었다. 임대료만 해도 주거급여를 넘는 가구가 3가구였다. 주거급여에 더해 필요한 비용은 최소 8850원, 최대 35만5원이었다.

현재 주거급여는 소득이 중위소득 46%가 기준으로 1인 89만5000원, 2인 150만원, 4인 235만6000원 이하인 가구가 받을 수 있다.

서울을 기준으로 보면 받을 수 있는 최대 주거급여는 1인 32만7000원, 2인 36만7000원, 4인 50만6000원이다.

김준희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수급자들은 정해진 소득 안에서 생활하기 위해 가장 먼저 식비를 줄였고 사람을 만나지 않으며 생활비를 최소화하려고 노력했지만, 도어록(출입문 잠금장치)이 한 번 고장 나도 난감해하며 수입 안에서 처리하지 못했다”며 “대부분 건강상 이유로 일을 하지 못해 수급자가 되는데 생활비를 아끼려고 사회와 단절되면서 고립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기초수급자의 가계부가 수지가 맞지 않는 이유로는 중위소득이 식비·주거비 등 현실 물가에 비해 뒤처진다는 점이 꼽힌다. 중위소득은 생계, 의료, 주거, 교육 등 기초수급액의 기준이 된다. 하지만 현재 1인 가구 중위소득은 194만원으로, 가계금융복지조사의 가구소득 중앙값 254만원(2019년 기준)과 60만원이나 차이가 난다.

각각을 기준으로 생계급여 기준(중위소득의 30%)을 계산하면 각각 58만원, 76만원으로 18만원 차이가 있다. 중위소득을 현실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재산 기준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지난 4월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에서 사망한 지 한 달 만에 발견된 모자는 실제 소득은 없었지만 공시가 1억7000만원짜리 집이 있다는 이유로 필요한 사회보장 대상자가 되지 못했다.

일선 행정의 ‘문턱’에 걸리는 사람들도 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의 주인공처럼 자신의 빈곤 상황을 증명하려다 실패하는 것이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은 “초기 상담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안내가 부정확한 경우가 많다”며 “여러 가지 서류를 ‘일단 제출하고 보자’는 식의 상담이 수급자 진입 장벽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허남설 기자 nshe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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