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두 달간 고기·과일 못 샀다는 기초수급자들의 민생 현실

2022. 7. 1. 2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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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스 요금이 동시에 인상된 1일 쪽방 밀집지역인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사는 한 노인이 아픈 허리를 만지며 방으로 들어가고 있다. 김창길 기자

빈곤사회연대·한국도시연구소 등 시민사회단체가 지난 2월부터 4월까지 두 달간 작성된 전국 기초생활보상 대상자 25가구의 가계부를 심층 조사한 결과를 1일 발표했다. 1인 가구가 22가구로 대다수이고, 2인·3인·4인 가구가 각 1가구였다. 매일 수입·지출 내역과 식단 등을 상세히 기록한 가계부는 안 먹고 안 쓰고 안 만나며 버티는 그들의 일상과 밥상 문제를 그대로 드러냈다. 상당수가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 생활고에 허덕였고, 식비 지출 비중이 높은 탓에 살아가기 위해 끼니를 거르는 가구도 허다했다. 고물가에 움츠러드는 이들의 생계 위기를 지킬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25가구 중 절반 가까운 11가구가 한 달 평균 수입을 초과해 지출했다. 생계급여 등이 오르는 속도가 물가 상승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것이다. 지출액이 가장 많은 항목으로 식비가 자주 꼽혔지만, 수급 가구의 하루 평균 식비는 8618원에 불과했다. 한 끼당 채 3000원이 되지 않는다. 두 달 동안 육류·생선을 한 번도 사지 않은 가구가 각각 9가구·14가구나 됐다. 과일을 산 적이 없는 가구도 9가구였다. 두 달간 하루 세 끼씩 180끼니 중 23번을 거르고 우유로 47번, 라면으로 34번 때웠다는 응답자도 있었다. 몸이 불편하고 요리하기가 어려워 90번이나 식사를 거른 이도 나왔다. 배가 고픈데도 아프거나 밥값이 비싸다는 이유로 끼니를 포기하는 선택에 몰린 것이다. 영양가 있는 식사는 언감생심이다.

25가구 중 10가구는 주거비(임대료·관리비 등) 지출이 가장 많은데 주거급여 또한 충분하지 못했다. 주거급여만으로 주거비를 감당한 것은 3가구뿐이었다. 기초생활수급자들은 주거비 부담 때문에 에어컨·난방기는 물론이고 전등조차 켜지 않고 버티는 게 일상이다. 이런 와중에 이달부터 인상되는 전기·가스 요금은 빈곤층에 더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취약계층의 열악한 주거 환경은 건강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을 낳는다.

이들의 가계부는 그대로 빈곤 문제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다. 생활비를 아끼려고 끼니를 줄이고 집 안에 움츠러드는 이들은 갈수록 고립·단절될 수밖에 없다. 복지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기초생활수급자들의 실상을 정부가 세심히 살펴야 한다. 정부는 최근 발표한 경제정책방향에서 기초생활수급자 생계·주거급여를 확대하고, 취약계층을 두껍게 지원하기 위해 사회안전망을 보강한다고 밝혔다. 올바른 방향이나 관건은 속도다. 물가가 치솟을수록 취약계층의 일상에 큰 충격이 가해질 수 있음을 명심하고, 수급 기준을 현실화할 대책을 조속히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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