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을 즐기려면..먹고 웃고, 피아노를 쳐라[김민정의 도쿄 책갈피]
<노후와 피아노>
이나가키 에미코
만 18세의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압도적인 연주로 우승한 소식은 한국은 물론 일본에도 전해졌으며 해외 언론을 뜨겁게 달궜다.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봤을 것이다. 피아노 앞에 앉아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는 자신의 모습을, 하지만 모두가 임윤찬이 될 수 있는 건 당연히 아니다. 피아노 앞에 앉아본 사람이라면 모르지 않을 것이다.
아사히신문 기자로 일하다가 50세에 조기 퇴사하고 <퇴사했습니다>를 집필한 후, 프랑스 리옹에서 자취생활을 하고 돌아온 이나가키 에미코의 최신작은 <노후와 피아노>다. 조기 퇴사 후, 건강할 때 노후를 준비하자는 마음에서 저자는 피아노 앞에 앉는다. 어릴 적 배우긴 했지만, 피아노 앞에 앉으니 악보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손이 굳어 도저히 칠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한평생 작은 소원이 있으니 바로 피아노를 제대로 쳐보는 것이다. 목표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다. 그리하여 저명한 피아니스트 선생님을 찾아갔다. ‘반짝반짝 작은 별’을 한 달 연습해 오라는데, 시작하고 보니 ‘황야의 입구’에 서 있는 게 아닌가. 이 문을 열면 천국의 계단이 아니라 황야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며 그 길을 걷는 것 또한 쉽지 않을 것이다. 한 달 내내 연습해서 선생님을 찾아가지만 실력을 보여주기는커녕 실수만 연발하고 만다. 과연 1년 후 월광 소나타를 훌륭하게 연주할 수 있을까?
저자가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하루 2~3시간씩 연습을 하고 발표회에 나가기까지의 과정을 담았다. 기자이던 시절 사회는 ‘더 열심히 일하고 더 빠른 시간에 더 많은 성과를 내라’고 했고 그런 삶에 순응했다. 하지만 피아노는 그럴 수 있는 분야가 아니었다. 매일 꾸준히 연습을 해도 쉽게 발전하지 않았고, 조성진이나 임윤찬을 꿈꾼다 한들 그들은 범접할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 더 빨리 더 많은 성과를 요구하는 사회에서 피아노는 저자에게 어떤 의미에서 일탈이기도 하다.
피아노를 배워도 그저 취미에 지나지 않으며, 어쩌면 아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지만 아무렴 어떠랴. 퇴사를 한 덕에 시간은 충분했고, 뭐라도 배우고 싶었다.
피아노라는 일탈은 저자에게 다양한 만남을 제공했다. 음악 잡지 ‘쇼팽’을 발간하는 한나 출판사 나이토 회장과 우정을 쌓고, 잘생긴 피아니스트 요네즈 다다히로의 제자가 되는 엄청난 행운도 얻었다. 무엇보다도 인생에 음악이란 동반자가 생겼다. 용기를 낸 사람이 기회를 얻고 노력한 사람이 결실을 맺는다. 베토벤의 월광은 물론이요, 드뷔시의 달빛, 쇼팽의 마주르카, 그리그의 녹턴에도 도전하게 된다. 피아노 앞에 앉아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하는 나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피아노는 늙어가는 방식을 배우는 일이다. 몸과 마음이 쇠약해져도 지금 이 순간을 즐기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를 수 없는 나무인가, 오를 수 있는 나무인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저 눈앞에 있는 일들에 열심히 도전하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
우물쭈물할 겨를이 없다.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일에 하나라도 더 도전하기 위해 저자는 바삐 발걸음을 옮긴다. 저자에게 퇴사 후의 삶은 여유와 느긋함이 아니라 또 다른 도전일 뿐이다. 읽는 내내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고 폭소를 터뜨리지만 왜인지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책이다.
김민정 재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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