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예감] 실전 귀농 꿀팁, 핸드폰은 제2의 농기구 – 표성미 작가(『나는 시골에서 비즈니스한다』)

KBS 2022. 7. 1. 19:13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 인터뷰 자료의 저작권은 KBS라디오에 있습니다.
인용 보도 시 출처를 밝혀주시기를 바랍니다.
■ 프로그램명 : 성공예감 김방희입니다
■ 방송시간 : 7월 1일(금) 09:05-10:53 KBS1R FM 97.3 MHz
■ 진행 : 김방희 소장 (생활경제연구소)
■ 출연 : 표성미 작가 (『나는 시골에서 비즈니스한다』)

- 10년 전 인기 따라 시작한 굼벵이 사업, 무작정 시작했더니 실패... 오히려 작게 시작한 양계가 성공적
- AI 등 가축 질병 피해로 5~6년간 노력 물거품 되기도... 블로그에 모든 과정 공유하며 고객 모아
- 농촌 비즈니스 하려면 작목 선정 중요... 거래 및 저장 방식, 확장성 등 따져야
- 투자 금액 회수하는데 최소 1년 이상... 귀농 창업자금 상환까지 잘 생각해야
- 타깃은 최대한 구체적으로... 자녀 나이대, 경제력과 생활 수준까지
- 농업인 지원 받으려면 자격증 필요... 300평 정도 농지 경작, 1년에 90일 이상 농업 종사, 농업 소득 연 소득 120만 이상 등
- 귀농 창업자금, 보조 사업 등 다양하게 활용해 볼 만
- 지역에서 많이 키우는 작목 활용하는 방법도... 판로 걱정과 설비나 투자금 줄일 수 있어
- 핸드폰은 제2의 농기구... 소비자는 농산물뿐 아니라 스토리 중요시해, ‘찐팬’ 형성해야


◇김방희> 이번 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농업 분야 얘기를 꽤 많이 드리고 있습니다. 농산물 직거래 트렌드 또 농업과 기술을 합친 에그테크까지 알아봤는데 이 흐름을 이어서 이번 주 마감하는 오늘 귀농과 귀촌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해 귀농, 귀촌 인구가 약 4%가량 늘었습니다. 관련 통계 집계 이후에 가장 많은 수치고요. 여기서 흥미로운 건 사실은 은퇴 후에 귀농을 택한 베이비부머 세대만 있는 게 아니라 30대 이하의 청년농들도 귀농, 귀촌 인구의 절반 가까운 45%를 차지했습니다. 물론 어려움이 많죠. 귀농귀촌 한다는 게 그렇게 텔레비전에 영화에서 보는 듯한 여유로운 생활만 할 수 있는 건 아니겠죠. 철저하게 준비를 하셔서 실천에 옮겨야 되는데. 과거의 귀농 귀촌은 좀 지쳤다. 돌아가자 이런 움직임이었다면 지금은 오히려 그곳에서 더 재미있는 사업을 해보자 이런 움직임으로 한 단계 더 올라서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이런 움직임을 대표하는 분을 한 분 모시고 귀농, 귀촌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유정란 생산하는 꼬꼬맘 대표이신데요. 나는 시골에서 비즈니스 한다 이런 제목의 책도 쓰셨습니다. 표성미 작가와 함께 성공하는 귀농 귀촌 얘기 해보겠습니다. 표 작가님 어서 오십시오

◆표성미>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김방희> 반갑습니다. 유정란 생산하시는군요. 체험학습장도 운영하고 계신 거고 어디서 하고 계세요?

◆표성미> 천안에서 하고 있습니다.

◇김방희> 천안이 고향이세요?

◆표성미> 아니요. 저희는 두 부부 다 서울 아기들이에요. 서울에서 나고 자랐고.

◇김방희> 그런데 어떤 게 계기가 돼서 귀농, 귀촌해볼까 생각하셨어요?

◆표성미> 남편이 평소에 하던 일에 대해서 조금 지쳐 있었어요. 지쳐 있었고 새로운 일을 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TV를 보다가 유정란을 생산하는 어느 지리산의 농장이 나오는 거예요. 그러면서 여보 우리도 시골 가서 살까 이렇게 얘기를 했었어요. 그래서.

◇김방희> 그게 몇 년 전입니까, 죄송하지만.

◆표성미> 10년 전이에요. 그래서 그때는 뭐 퇴직하고 나이가 들면 내려가서 살 수도 있지 싶어서 그래라고 가볍게 얘기를 했는데. 저희 남편이 그다음 날 정말 인터넷을 검색을 하더니 닭을 키울 수 있는 농장을 알아보더라고요. 그 돈이 정말 며칠 있다가 짐 싸서 나 6개월 동안 가서 배우고 올게 그러고 내려가 버렸어요.

◇김방희> 진짜? 그 얘기는 배우자분이 굉장히 직장에서 힘들었나 보다 그러시죠.

◆표성미> 부동산업을 했었는데 사람 상대하는 일이다 보니까 스트레스가 되게 심해서 지쳤고 어차피 이제 시골에 내려가고 싶다는 로망이 계속 있던 차에 TV를 보고 좀 자극을 받았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때 저러다 말겠지, 6개월 뒤에 갔다 온 다음에 진짜 내려가자고 하겠어 하고 생각했는데 6개월 뒤에 정말 땅도 구해놨으니까 가자 이렇게 얘기를 해서 정말 깜짝 놀랐고 한동안은 전쟁이었어요. 절대 내려가기 싫다고.

◇김방희> 표 작가는 반대하셨어요. 그때?

◆표성미> 왜냐하면 저는 시골에 가서 살고 싶지 않아서 옛날에 남편 만나기 전에 연애하는 남자도 시골 출신 남자는 안 만났었거든요.

◇김방희> 아이들은 없으세요?

◆표성미> 두 아이들이 있었고요. 그때 초등학교 3학년 올라가는 아이와 5학년 올라가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김방희> 선뜻 동의하던가요, 아이들도?

◆표성미> 아이들은 뭐 별로 큰, 그냥 이제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된다는 게 조금 부담스러웠지 시골로 옮긴다는 거에 대해서 크게 그렇게 부담스러워하지는 않았어요.

◇김방희> 그때 어쨌든 결국은 남편의 설득에, 설득당하신 거 아니에요.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표성미> 그렇죠. 처음에는 좀 로망이... 반대했다가 남편 말에 설득당했던 것 중에 하나가 남편이 당신이 지금 하는 일로 성공하고 싶어하는 것도 알고 공부도 계속하고 싶어 하는 거 알아 하지만 그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겠어, 60이 넘으면 도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고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을 텐데 그리고 시골에 내려가면 내 몸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정년 없이 할 수 있는 일이고 남을 위해서 해 주는 일이 아니라 내 일을 하는 내 사업을 꾸릴 수 있잖아 그 얘기도 많은 자극이 됐던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하나는 시골에 가서 살면 왜 시골살이에 로망이 있잖아요. TV나 막 이런 데서 나오듯이 예쁜 집에 그림 같은 잔디밭에 아이들이 막 깔깔깔 웃으면서 뛰어다니고, 개 한 마리 뛰어다니고 이런 로망을 실현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결국은 설득돼서 내려가게 됐어요.

◇김방희> 그러면 한 10여 년 전의 계기 때문에 결심하게 됐고 실행에 옮겼는데 10여 년을 한번 쏙 돌아보시면 그 로망이 실현됐습니까? 후회하지 않으십니까?

◆표성미> 지금은 후회하지 않아요.

◇김방희> 그래요?

◆표성미> 네, 지금은 내려오기를 너무 잘했다. 생각하고 처음에는 저도 후회 됐었죠. 안정적인 삶을 포기하고 전혀 해보지 않은 일을.

◇김방희> 게다가 낯선 곳을 선택하셨잖아요.

◆표성미> 네, 저희는 지금 있는 천안에 연고도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후회도 하고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맞을까 이 길대로 가면 진짜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되게 많았고 주변에서 이제 귀농 어때라고 물어보면 말렸어요.

◇김방희> 초반에요?

◆표성미> 네, 그래서 힘들다 정말 대단한 각오 없이는 힘들다라고 이제 말리는 입장이었는데 지금은 오히려 이직이나 퇴직을 고민하고 있는 분들한테 시골에서 사업해봐라라고 오히려 권하는 사람이 됐어요.

◇김방희> 바로 그 점 때문에 우리 표 작가님을 모신 건데. 단순히 그냥 귀농 귀촌해서 그곳에 정착하는 게 아니라 거기서 새로운 비즈니스를 일군 건데. 이게 새로운 귀농, 귀촌 흐름 같아요. 움직임 같아요. 그걸 가능하게 한 IT 기반이라든가 이런 것들도 다 있는데 잠시 후에 계속 얘기를 나누도록 하고 먼저 질문들이 많아서 귀농, 귀촌 구분하시는데 어떻게 구분해야 되는 걸까요? 예를 들어서 우리 표 작가님은 귀농이에요? 귀촌이에요?

◆표성미> 저는 귀농이에요.

◇김방희> 그래요?

◆표성미> 네, 근데 처음에 내려갈 때는 귀촌인 줄 알고 내려간 거예요. 그러니까 귀촌과 귀농의 개념을 명확하게 구분 짓지 못하는 분들이 되게 많으세요. 그러니까 귀농은 제가 책에도 썼듯이 이걸 사업으로 키워서 거기서 수익을 만들어내고 먹고 살 거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귀농이 맞는 거고요. 단순히 거주지를 도시에서 시골로 옮겨서 거기에서 전원생활을 즐기겠다. 수입에 구애받지 않고 나는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라고 생각을 하시면 그건 귀촌이다. 저는 이렇게 얘기하고 싶습니다.

◇김방희> 표 작가님 정의가 확 와닿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지금 귀촌인 줄 알고 갔는데 귀농했다. 거기서 이제 사업을 하신다 그런 얘기인데 이게 이제 최근에 새로운 흐름 같거든요. 그냥 내려가서 전원생활 즐기겠다는 게 아니라 지쳤으니까. 그게 아니라 거기서 비즈니스를 한다는 건데 지금 하고 계신 비즈니스는 정확히 어떤 겁니까, 그러면?

◆표성미> 지금은 저희는 논지에 유정란을 생산하는 농장을 운영하는 게 주업이고요. 그걸로 파생해서 체험 농장을 운영을 하고 있고 제가 블로그로 직거래 고객을 100% 창출을 하다 보니 그 성과를 인정받아서 상도 좀 받고 그러다 보니까 여기저기서 강의 요청이 있어서 강사로도 조금 활동을 하고 있고요. 그 다음에 학교에 체험학습 선생님으로 또 출강을 나가기도 합니다.

◇김방희> 대단하시군요. 일을 하나하나씩 이제 벌여 나가신 건데 핵심적인 비즈니스는 어쨌든 유정란. 유전자 변형이 없는 유정란을 생산해서 친환경적인 유정란을 주로 온라인으로 파시는 거죠?

◆표성미> 네.

◇김방희> 그러면 처음에 온라인으로 판다는 게 엄두가 안 났을 텐데 어떻게 시작하시게 됐어요. 그걸?

◆표성미> 제가 시골에 내려가기 전에 도시에 있을 때 아이들 키울 때 블로그를 일기 형태로, 저희 아이들 성장 기록을 위해서 일기 형태로 쓸 때 다른 블로그를 보니 어떤 블로거가 블로그를 통해서 물건을 잘 팔더라고요. 공동구매 형태라는 형태로. 그래서 나도 시골에 내려가서 유정란을 판매하게 되면 블로그로 내 농장을 소개하고 알리면서 거기에서 고객을 창출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을 하고 블로그를 진짜 열심히 해야겠다. 생각을 했어요.

◇김방희> 그게 기반이 됐군요. 그래서 이제 온라인 판매를 하시는 건데 사실 블로그라든가 온라인 판매라는 게 가능해졌기 때문에 농촌에서도 예전과 달리 이제 본격적인 비즈니스를 할 수 있게 된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새로운 형태의 귀농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처음에 남편 분께서 이 유정란 생산 아이디어를 텔레비전을 보면서 얻으셨으니까 처음부터 이걸 하신 거예요. 아니면 다른 걸 좀 하시다가 시행착오도 겪으신 거예요.

◆표성미> 저희가 처음에 귀농할 때 선택한 작목은 닭을 키워서 유정란을 생산하는 게 아니었었어요. 이거는 그냥 저희가 먹을 거. 좀 생산하고 조금 더 남으면 도시 지인들한테 조금 판매할 목적이었고 저희의 주력 사업은 굼벵이였었어요. 저희가 이제 10년 전에 귀농할 때만 해도 식용곤충 산업이 엄청 이슈가 되면서 막 떠오르고 있던 추세었고. 시설 투자비도 그렇게 많이 들지도 않고 면적도 적은 면적이 필요하고 그다음에 일단 곤충은 알을 낳으면 엄청 많이 낳잖아요. 그러니까 종자 굼벵이 몇 마리만 있어도 그게 이제 몇 배수로 불어나니까 수익성이 괜찮다라고 각종 방송에서도 엄청 많이 유행을 탔었거든요.

◇김방희> 일종의 유행 같았어요. 그렇죠? 그 당시에,

◆표성미> 그래서 저희도 이제 그 사업을 선택을 했었죠. 왜냐하면 굼벵이 키우는 건 농업보다 좀 덜 힘들 거라고 생각을 했던 거예요. 왜냐하면 밭에 나가서 일을 안 해도 되니까. 그랬는데 굼벵이 사업이 처음 시작됐던 거라서 표준사육기술도 없고 그다음에 그쪽의 선두 주자도 딱히 많이 없던 시절이어서 그리고 저희가 곤충에 관심이 많아서 옛날부터 곤충을 키워봤던 그런 사람들도 아니었기 때문에 여러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계속 실패를 했었어요.

◇김방희> 사업이라는 게 참 묘해요. 처음에 생각했던 게 아니라 그 과정에서 얻게 된 아이디어나 기술로 전혀 다른 사업을 해서 성공하는 분들 꽤 계시거든요. 그런 예라고 볼 수 있는데 그거 말고도 당장 떠오르는 게 8784번님이 그런 지적을 해주셨는데 가축질병 인력난 어떻게 대처하시는지요, 해 주셨는데 AI 같은 거 할 때 어려움 겪지 않으셨어요?

◆표성미> 저희 AI겪었어요. 두 번이나. 저희 같은 경우는 자연양계농법으로 닭을 키우기 때문에.

◇김방희> 풀어놓고 키우는 거죠.

◆표성미> 네, 그리고 이제 스스로, 그러니까 미생물 농법을 이용해서 닭장 바닥에 미생물도 뿌려주고 사료도 저희가 직접 만드는데 발효해서 사료를 닭에게 먹이거든요. 그러면 이제 닭이 스스로 면역력을 갖춰서 질병을 이겨낼 수 있어요. 그래서 AI가 전국적으로 창궐을 했을 때도 저희 농장 닭은 되게 건강했었거든요. 그런데 이제 저희 농장에서 500m 벗어난 곳에 오리 농장이 하나 있었는데 그 오리 농장은 AI가 올 때마다 AI에 걸리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가 귀농하고 이제 막 유정란 첫 해에, 귀농 첫 해에도 AI가 터져서 그 농장의 오리를 살처분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저희 농장도 예방적 살처분이라는 이름으로 살처분을 해야 된다고 통보가 왔는데 제가 그때 막 핏대 세우면서 엄청 대들면서 싸우고 못 하겠다라고 이제 얘기를 했는데 그때는 방역법이 그렇게 강화된 때가 아니어서 다행히도 살처분은 면하고 대신에 이제 생산된 달걀을 판매하지 못하는 선에서 끝났는데 문제는 이제 2016년 말이었어요. 그때도 역시 그 오리 농장이 AI에 걸렸고 그때는 이제 전국적으로 AI가 너무 많이 퍼져서 이거를 수습하기 위해서 정부에서는 거의 대부분 3km 안에 있는 농장들은 전부 다 살처분 명령이 떨어졌었거든요.

◇김방희> 강제 살처분했죠.

◆표성미> 네, 그래서 저희 농장도 그때 강제 살처분 명령을 받았고 그걸 막기 위해서 백방으로 노력했었는데 결국은 막지를 못했고 저희 농장의 닭들도 그때 살처분을 받았었어요.

◇김방희> 그때 심정이 말이 아니었겠군요.

◆표성미> 그럼요. 그때, 그러니까 생명을 죽여야 된다는 것도 되게 마음이 아팠었고요. 그때 이제 막 병아리 티를 벗어서 중간 닭, 그러니까 한 3개월 정도 큰 애들도 있었거든요. 그 닭들한테도 너무 미안했고요. 그리고 가슴 아팠던 건 저희가 이제 귀농 5년 차, 6년 차 접어들면서 고객을 꾸준히 확보를 해놨었었는데 그 고객을 한순간에 다 잃어버리면 다시 밑바닥부터 저 0부터 시작을 해야 되잖아요. 그래서 너무너무 그때 막막하고 앞이 보이지 않고 되게 힘들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김방희> 그걸 이겨내셨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건데 인력난 같은 건 어떻게 하세요? 지금 또 워낙 바빠지셔서 직접 다 예전처럼 하실 수도 없으니까 외국인 노동자들을 쓰기도 하는 곳도 있고 그렇던데 거기서는 어떻게 하세요?

◆표성미> 저희는 소량 생산을 원칙으로 하고 있어요. 그래야 달걀의 품질도 유지하고 고객 관리도 원만히 할 수 있기 때문에 저희는 지금 두 부부가 하고 있고 인력이 달리기는 해요. 그래서 저희 아들이 지금은 도와주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 아들은 지금 농고를 다니고 있고 농고를 졸업하면 후계농업인으로 해서 저희 일을 같이 할 계획에 있습니다.

◇김방희> 어쨌든 AI나 이런 게 닥치면 수입도 확 주는데 그 어려운 시기들을 겪으면서 귀농의 어려움을 안 느끼셨나 모르겠어요. 그때는 직장생활과 달리 어쨌든 수입이 끊기는 건데.

◆표성미> 그렇죠.

◇김방희> 어떻게 버티셨어요?

◆표성미> 저희 진짜 1년 동안 거의 수입이 없었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내용들을 이제 블로그에... 아, 보상금이 나오기는 해요. 보상금이 나오기는 하는데 문제는 그 보상금이 일반 케이지에서 공장식으로 키워지는 닭과 똑같은 비용으로 보상이 된다는 게 문제고.

◇김방희> 훨씬 더 많이 들였는데, 돈을.

◆표성미> 그렇죠. 그래서 달걀값도 한 10배 가까이 차이가 나는데도 불구하고. 그래서 힘들었었는데 고객들이 저희의 그 딱한 사정을 듣고 미리 막 선금을 보내주셨어요. 그리고 심지어 회원이 아니었던 분들이 제가 이제 블로그에 그때의 기록을 한 일주일간의 그 마음 아팠던 기록들을 남겼더니 그것들을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공유해 주시면서 엄청나게 많은 신규 회원들이 오히려 늘었고. 그분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선금을 보내주기도 하고. 회원이 아니더라도 얼마나 힘들겠냐고 그러면서 휴가도 그동안 잘 못 다니셨을 텐데 휴가 다녀오시라고 그러면서 돈도 보내주시고 뭐 먹을 것도 보내주시고 이렇게 위로를 많이 주셔서 그 힘으로 좀 버틸 수 있지 않았었나.

◇김방희>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었겠네요. 신규 고객들도 생기고 그러면서. 지금부터는 귀농 귀촌 준비를 어떻게 해야 되고 어떻게 상황에 대처해야 될지에 대해서 아주 실질적인 질문들을 좀 드리겠습니다. 심지어 너무 질문이 많아서 몇 가지만 제가 대신해서 좀 여쭤보죠. 어제 질문 중에는 양계장 아마 이제 케이지에서 키우는 보통의 양계장을 뜻하는 거겠죠. 이런 데서 자동화할 수 없느냐, 기술들을 활용해서. 이런 질문도 있었는데. 이건 뭐 자연에 풀어놓고 키우는 거니까 그것과는 관련이 없습니다마는 양계장 기술은 잘 아실 테니까. 자동화되는 추세입니까? 최근에.

◆표성미> 그렇죠. 지금은 현대화라고 해서 축사들이 전부 다 자동화 사료도 전부 다 이렇게 기계가 내려와서 부어주고. 시간에 맞게끔. 그렇게 물도 조절해서 급여해 주고 이런 식으로 자동화 많이 되고 있죠.

◇김방희> 되고 있어요. 일손 자체는 그럼 조금 줄었겠군요.

◆표성미> 그렇죠. 몇 십만 수를 키우는 데 한두 사람만 있어도 충분히 유지가 될 만큼 자동화 라인이 이제 되고 있는데 그렇게 생산되는 달걀은 기본적으로 약간 스트레스도 많고. 저희는 약간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김방희> 양계 농가도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은 어쨌든 각자가 판단하는 거니까, 소비자 입장에서는. 맨 먼저 내려간다. 남편분이 땅까지 마련했으니까 설득하고 나서 결심을 굳히고 나서 뭘 준비해야 되는 겁니까? 제일 먼저 준비해야 되는 건 어떤 것들입니까? 귀농 귀촌할 때.

◆표성미> 작목을 어떤 걸 선택하실지가 중요하다고 저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작목을 선택할 때 그 작목이 저장이 가능한 작목인지 혹은 사업의 확장성이 있는 작목인지 이런 것들도 좀 생각을 해보셔야 되는 게 한 번에 수확해서 한 번에 다 팔아야 되는 작목 같은 경우는 판매에 대한 부담이 있잖아요.

◇김방희> 그렇겠네요. 판매처를 뭐 새로 확보하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

◆표성미> 네, 그래서 직거래를 다 판매하지 못할 경우에는 결국은 도매가로 보내야 되는데. 도매가로 보내면 결국은 원가도 건지기 어려운 경우가 많기 때문에. 내가 어떤 작목을 선택했을 때 가장 잘 팔 수 있을까, 그 부분을 많이 고민을 해보셔야 되고. 저장이 가능한지도 살펴보셔야 되고. 또 하나 또 말씀드리고 싶은 건 그 작목을 활용해서 내가 사업을 어떻게 확장할 수 있는지. 예를 들면 체험을 할 수 있는지, 가공을 할 수 있는지. 이런 것들까지 같이 곁들여서 생각을 하고 작목을 선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김방희> 농촌으로 간다고 막상 생각하고 나서 할 게 아니라. 그 전부터 어떤 비즈니스를 구상하고 계셔야 되는 거군요.

◆표성미> 그렇죠. 비즈니스를 구상하지 않고 작목 선택도 하지 않고 막연하게. 저희가 그랬었으니까. 그렇게 내려가면 굉장히 시행착오를 많이 겪고 좌충우돌하실 수 있어요.

◇김방희> 서류 같은 건 많이 필요 없습니까? 뭐 사업자 등록도 해야 되고 도시와 달리 서류 작업이 더 힘들 수도 있는데, 여기저기 오가야 되면. 서류는 많이 필요하지 않았어요?

◆표성미> 서류는 도시에서 어차피 통신 판매로 팔면 비슷해요. 그래서 사업자 등록이나 통신판매업 신고 이 정도만 하셔도 됩니다.

◇김방희> 박상훈 님은 닭은 몇 마리 사육까지 영세농으로 구분이 됩니까, 해주셨는데. 이건 제가 잘 모르겠군요. 몇 수 정도 기르면 이건 대형이다, 혹은 영세하다. 이렇게 얘기하나요?

◆표성미> 보통 5000수 미만이면 영세하다라고 얘기를 합니다.

◇김방희> 또 K3779번 님은 귀농 귀촌하면서 대출의 늪에 빠진 분들을 많이 만났다고 그러시는데 맞습니까?

◆표성미> 그거 저 오늘 꼭 말씀드리고 싶었었어요. 왜냐하면 귀농 창업자금으로 3억까지 지원되는 게 있어요. 그래서 처음에 왜냐하면 이제 연리 2% 정도의 낮은, 상당히 낮은 좋은 조건인 거죠. 그리고 5년 거치 10년 상환, 분할 상환 조건인데. 처음에 충분한 자본이 없을 때는 그 귀농 자금이 굉장히 유용해요. 그래서 이제 3억의 대출을 받아서 농지를 구입하거나 시설을 짓게 되는데. 문제는 농업을 지어서 수익이 생각만큼 빨리 오르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리고 도시 같은 경우는 투자를 하면 투자금을 회수하는데 상대적으로 기간이 좀 짧은 반면에 농촌은 투자한 금액이 회수되는 데 최소 1년 이상이 걸리거든요. 회수할 때도 100% 회수되는 게 아니라 10%, 20% 이런 식으로 연도가 늘어날수록 점차 점차 늘어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5년 뒤에 원금을 상환하는 시점이 생각보다 빨리 오게 되고 원금을 상환하지 못하게 되면 결국은 이제 빚이 부담이 돼서 힘들어지는 상황을 맞게 되죠.

◇김방희> 그렇겠군요. 그래서 철저하게 비즈니스 마인드가 필요하다. 귀농은 단순히 지쳐서 가는 게 아니라 비즈니스를 구상하고 가야 된다고 표 작가께서 늘 주장을 하시는데. 비즈니스로 돌아오면 굉장히 성실하게 하셨던 블로그라는 밑천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 이게 가능했는데. 당장 보통 사람이라면 그런 게 없는 거라면 고객을 누구로 할까, 어떤 방식으로 팔까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잖아요. 어떻게 접근해야 됩니까? 그 부분은.

◆표성미> 저도 유정란을 생산하면서 단순히 아기 키우는 엄마들이 나의 고객이 될 것이다. 이렇게만 타깃을 정했었어요. 이제 교육을 갔더니 거기 강사님이 타깃을 구체화해 보세요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근데 타깃을 구체화 아기 키우는 엄마, 더 이상 어떻게 구체화하지? 이렇게 얘기를 했는데. 그분께서 아기는 몇 살부터 몇 살까지일지 엄마의 연령은 어떨지 엄마의 교육 수준은 어떨지 그 다음에 경제 수준은 어떤지 도시에 사는지 지방에 사는지 그리고 엄마의 관심사가 어느 쪽에 있을지. 뭐 이런 것까지 모두 다 정하고 고민을 해봐야 된다. 그렇게 해야 내가 생각하는 타깃이 생기고 그 타깃에 맞는 홍보 마케팅을 진행할 수 있다라고 얘기를 해줬었어요. 그래서 그걸 듣고 그때부터 이제 내 고객은 어디에 있을까. 어떤 사람이 진짜 내 고객일까를 고민했던 것 같아요.

◇김방희> 그때로 돌아가서 처음으로 생산한 유정란을 어떤 고객이 블로그를 봤든 뭐가 됐든 샀어요. 그때 심정은 어땠어요?

◆표성미> 이루 말할 수가 없죠. 그러니까 제 블로그에 그때 하루에 10명도 오지 않는 시점이었었어요. 지금은 꽤 많이 오지만. 그리고 그때 이제 달걀을 판매하겠다. 첫 정기 배송 회원제를 운영하니까 배송 회원에 가입해 주시면 감사하겠다. 이런 내용들을 썼었는데 아무도 없을 거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하루에 10명도 채 안 오는 블로그를 누가 보며, 선뜻 보증금을 내고 달걀을 누가 회원으로 구입을 할까. 단발성도 아니고, 그랬는데. 회원이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기뻐서 그때 저희 남편한테 될 것 같아. 이제 블로그로도 내가 물건 잘 팔 수 있을 것 같다고 막 얘기했어요.

◇김방희> 그렇죠. 사실 그게 비즈니스의 출발점인데, 첫 고객을 만나는 시점이. 굉장히 아마 성실한 게 보상받은 거겠죠. 그걸 계속 블로그에 올리니까 또 그걸 보고 진정성을 느꼈고 그런 것 같은데. 농업인이라는 자격을 얻으면 혜택이 많으니까, 이것들도 해봐야 된다. 그러니까 제도적 지원, 대출 말고 아까 말씀해 주신 거 이런 걸 받으려면 뭘 어떻게 해야 됩니까?

◆표성미> 농업인 지원을 받으려면 일단 농업인 자격을 취득을 하셔야 돼요.

◇김방희> 어떤 자격 조건이죠?

◆표성미> 농업인 자격을 받으려면 1000제곱미터 이상의 농지를 경작해야 되고. 그러니까 약 300평 정도 되죠.

◇김방희> 300평 조금 넘는 거죠.

◆표성미> 네, 1년에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하고 농업 소득이 연 120만 원 이상을 내야 돼요. 그리고 일정 규모 이상의 가축을 키우거나 혹은 비닐하우스나 버섯 재배사를 설치해서 정착하는 경우는 100평 이상이어야 합니다.

◇김방희> 그런 조건들이 있죠. 그런데 조건 받으시고서 지원받은 것 중에 인상적인 게 있습니까? 실질적인 지원이 됩니까?

◆표성미> 저희가 사업이 망하기도 했었어요. 그래서 시골에 내려갈 때 자본이 충분하지 않았었거든요. 그런데 그래서 이제 땅을 살 돈이 없었던 거죠. 처음에 저희 임대로 시작을 했었었는데 땅을 살 때 큰 자본이 들 때 귀농 창업자금 3억이 꽤 도움이 많이 됐었어요. 그래서 귀농 창업자금도 도움이 됐었고 그다음에 보조 사업이라는 게 있는데 저희가 체험 농장을 운영한다고 했었잖아요. 체험농장 운영할 때 내부 시설이나 이런 것들을 저희가 부족한 자본으로 하다 보니 좀 부족한 게 많았었거든요. 그때 자부담 30%에 국가 지원이 70% 정도 되는 농촌 교육농장 사업을 2500만 원짜리를 받아서 시설을 정비하고 보수하는 데 도움이 좀 됐었습니다.

◇김방희>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그런 지원들도 꽤 있군요. 그러니까 만약에 상황이 굉장히 어려우신 분인데 내가 농촌에서 이 일 저 일을 해보겠다. 이렇게 결심할 경우에는 그런 지원의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거잖아요. 그런데 다만 지원을 받고 생각처럼 안 돼서 오히려 대출의 늪에 빠지거나 이런 분들도 있을 수 있다는 건데 주변에 그런 분들도 계세요?

◆표성미> 그렇죠. 빚이 계속 늘어나시는 분들. 그러니까 생활을 하기는 하지만 빚이 계속 늘면 결국은 그거는 내 사업이 성장하는 게 아니라 사업이 어떻게 보면 도태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으니까.

◇김방희> 어쨌든 농업 기반의 비즈니스를 하시는 건데 이걸 내가 계속 좀 키워도 되겠다. 싶은 욕심이 생기잖아요. 기업인이기도 하니까. 그런 건 어떤 때 찾아왔어요? 내 사업 첫 고객 만나고 나서 괜찮은데 이거. 그냥 단순한 아이디어가 아니라 이거 계속 밀어붙여도 되겠다 하는 생각은 언제 하셨어요?

◆표성미> 저희가 처음에는 달걀을 생산해서 정기 고객한테 배송하는 형태로만 운영을 했었었는데 모든 농산물은 전부 다 비품이 있어요. 그러니까 비품이라고 해서 못 먹는 음식은 아니고.

◇김방희> 조금 떨어지는.

◆표성미> 네, 그래서 그것들을 이용해서 그거를 빵을 만들거나 이런 쪽으로 확대를 해보면 어떨까 라고 해서 제가 한 때 그 에그타르트를 만들어서 온라인으로 판매한 적이 있었어요.

◇김방희> 되게 인기 있었던 계란빵이잖아요.

◆표성미> 네, 그래서 호두파이나 계란이 많이 들어가는 품목 위주로 만들어서 판매를 했었는데 그때 인기가 되게 좋았었어요. 되게 인기가 좋았고 제가 건강이 좀 나빠져서 지금 잠시 쉬고 있는데 그래서 우리 농장에서 나오는 유정란을 이용해서 이렇게 베이킹 쪽으로도 활용을 하고 이걸 카페나 이런 쪽으로 성장을 시키면 이것도 또 하나의 큰 사업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데 마침 저희 큰아들이 요리에 관심이 있어서 식품 쪽을 전공했어요. 그래서 그 친구가 지금 군대에 가 있는데 제대하면 저랑 다시 같이 시작해 볼 생각이고 저희 작은 아이 같은 경우는 농고 쪽에서 지금 조경 쪽을 공부했어요. 그래서 조경 쪽으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카페를 꾸밀 때 정원이라든가 이런 걸 좀 예쁘게 꾸며서 저희가 앞으로는 가족 사업으로 이것을 좀 더 키워서 발돋움해 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방희> 책에도 그렇게 쓰셨던데 그 가족이 함께하는 귀농, 귀촌이 훨씬 시너지가 생긴다. 지금 말씀하신 게 그런 예네요?

◆표성미> 네, 맞습니다.

◇김방희> 가족들이 뜻이 맞아서 같이 할 수 있다면 가장 효과적이 되는 거죠. 조금 생각이 다르면 귀농, 귀촌에도 좀 골치 아플 수도 있고.

◆표성미> 그렇죠. 사업을 확장시키기가 좀 어려울 수 있죠.

◇김방희> 또 하나 실제 귀농, 귀촌하신 분들 이전 세대들도 만나보면 가장 어려운 게 텃세라는 얘기도 하고 이미 가축 사육장을 어쨌든 지어야 되는 건데 조건이 까다롭고 지역민들 반발 같은 것도 있을 수 있는데 없나요. 해 주셨는데 텃세나 이런 반발 융합 문제는 어떻습니까?

◆표성미> 왜 없었겠어요. 저희도 엄청 어려웠었고 지금 있는 땅을 세 번째 산 땅이에요. 지역 주민들이 반대도 심했고 용도에 맞지 않는 땅을 사서 저희도 좀 고생하기도 했었고 그리고 지금 세 번째 산 땅도 마찬가지로 지역민들의 일부가 반대를 많이 해서 민원을 계속 넣고 있어요. 그래서 저희 농장에 혹시 불법 사항이 있는지 계속 민원을 넣어서 있으면 좋은 거고 없으면 많은 거고 이런 식으로 그냥 찔러보는 형태로 민원을 넣는다든가 이런 텃세가 있는데 그거는 어떤 걸 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다른 작목들도.

◇김방희> 8009번 님은 작목 얘기를 해 주셨는데요. 30년 농업인입니다. 그 지역에서 많이 하는 거 작목반 단체 참여를 하세요. 해 주셨고 특별한 가치가 있는 특용작물은 없다고 봅니다. 이렇게 해주셨거든요. 뭐 하나가 잘 된다. 싶으면 소문이 확 나서 다들 해버리니까 차라리 그냥 그 지역에서 가장 많이 생산한 무난한 걸 하라는데 맞는 조언일까요?

◆표성미> 저는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을 해요. 왜냐하면 특별한 걸 만들어내면 특별한 걸 사줄 만한 고객을 찾아내야 되거든요.

◇김방희> 자기가 찾아내야 하는 거죠.

◆표성미> 네, 그런데 그 찾는 과정이 또 되게 힘들고 어려워요. 그런데 그 지역에서 대부분 생산하는 작목을 생산하게 되면 판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고. 그리고 일단 공동 쪽으로 모여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시설비나 투자금 같은 것도 좀 많이 아낄 수 있고 이런 장점이 있어요. 그래서 어떤 걸 선택할까는 본인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방희> 특별한 걸 생산할 경우에는 그 특별한 고객을 찾아야 되는 어려움이 있는데 지금 천안 지역도 그런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젊은 농업인들이 많이 귀농 귀촌해서 거기서 온라인 판매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는데 그쪽 분위기도 느껴지세요? 어떻게 보면 표 작가께서 선구자신 셈인데 젊은 분들이 그쪽에서도 많이 해요?

◆표성미> 네, 젊은 친구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어요. 30대인 친구들도 많이 들어오고 제가 알고 있는 친구는 아쿠아포닉스라고 그 밑에는 물고기. 수경 재배인데 물고기 키우면서 위에서 유럽산 채소를 키우는 그런 친구도 만났었거든요. 최근에. 그래서 결혼했냐 그랬더니 이제 곧 결혼한다고 그래서 아직 결혼도 안 하고 결혼할 여자친구가 이렇게 농사 짓는 거 반대 안 하냐니까 좋다고 같이 하겠다고 해서 같이 지금 하고 있대요. 그래서 추세가 많이 바뀌었구나. 그렇게 느끼고 있습니다.

◇김방희> 많은 분들이 K3869번 님을 포함해서 초대 손님 이름하고 블로그 주소 좀 알려주세요. 해 주셨는데 표성미 작가시고요. 블로그 명은 알려주셔야 되겠는데.

◆표성미> 꼬꼬맘의 귀농 이야기라고 네이버에서 검색하시면 찾으실 수 있습니다.

◇김방희> 그 회사 이름은 아빠 사랑팜 꼬꼬란이고요. 남편분이 대표로 돼 있고 블로그 운영하시고 직접 그렇죠. 직접 판매하시고 농사를 아예 안 지어본 분들이 아까 청년들 얘기를 했습니다마는 귀농, 귀촌해서 농사를 한번 지어보겠다. 이런 도전도 괜찮을까요?

◆표성미> 저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런데 대신에 농사만 지어서 농산물만 팔면 조금 어려울 수 있지만 그것에서 확장해서 체험이라던가 가공이라든가 이런 기타 비즈니스 영역으로 좀 더 확장해서 시야를 넓히면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방희> 그러니까 어떤 작물을 재배하고 그것으로만 수익을 올리려고 하면 아무래도 새로 시작하니까 시행착오도 많을 테고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는데 거기서 새로운 사업들을 추가해 나가라 그런 말씀이시군요. 당장 해보고 싶다. 이런 분들 문자가 지금 쇄도하고 있는데 4222번 님도 부모님이 농사 지으면서 많이 힘들어하셔서 저는 서울을 고집했는데 제가 나이가 들다 보니까 귀농, 귀촌하고 싶습니다. 해 주셨는데 이런 분들이 준비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가져야 될 마음가짐이랄까요. 이것만큼은 알고 해라 이런 얘기들을 많이 해주시잖아요. 표 작가는 뭘 얘기해 주시고 싶으세요?

◆표성미> SNS 활용은 필수다.

◇김방희> 이제 농촌에서 농업에서 SNS를 반드시 해야 된다.

◆표성미> 네, 핸드폰은 제2의 농기구예요.

◇김방희> 멋진 말이군요.

◆표성미> 그래서 핸드폰을 끼고 사셔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준비가 다 되고 난 다음에 이걸 팔기 위해서 SNS를 시작해야지 하면 늦어요. 왜냐하면 소비자는 그 이면에 담긴 스토리를 더 좋아하거든요. 스토리로 그 농장의 가치나 철학이 담겨 있으면 그 가격의 비쌈을 따지지 않고 소비자들은 구매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이 농장을 이렇게 키우기까지 이 농산물을 생산하기까지 어떠한 노력들을 기울이고 나는 어떠한 생산 철학을 가지고 움직이는 사람인지를 SNS에 꾸준히 기록하시면 그것을 보고 내 찐팬이 생기고 그 찐팬이 결국은 나의 농장을 유지하는 팬덤이 될 겁니다.

◇김방희> 표 작가 스스로가 경험한 일이기 때문에 그런 진심어린 조언을 하고 계신 건데요. 9310번 님도 귀촌 준비 단계라시네요. 50대 후반인데요. 관심이 있어서 준비 단계로 텃밭을 가꾸고 있습니다. 물론 토종닭도 몇 마리 키우고 있죠. 하고 용기를 내서 참여해 주신다고 그랬는데 텃밭만 갖고 올 게 아니라 SNS를 해라. 나이가 좀 있는 분들은 부담스러워하는데 그래도 해야 되겠죠?

◆표성미> 네, 하셔야 해요.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를 가장 잘 알릴 수 있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인데 나를 잘 알릴 수 있는 SNS는 나의 브랜드를 알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마케팅 수단입니다.

◇김방희> 휴대폰은 제2의 농기계다. 이 말까지 기억하면서 귀농 귀촌에 대한 얘기를 매듭 지을 텐데 귀농, 귀촌에 대한 관심들이 많아가지고요. 종종 모셔서 얘기를 좀 들어야 되겠습니다. 오늘 하실 얘기 다 못하신 것 같아요. 귀농, 귀촌이라는 게 어렵고 까다로운 절차니까 입문만 오늘 했다고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귀농, 귀촌 스승님으로 저희가 모신 표성미 작가였습니다. 고맙습니다.

◆표성미> 감사합니다.

KBS

Copyright © KB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