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대 독살 사건 주범..라듐에 맞선 고스트 걸스

한겨레 2022. 7. 1.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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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친구가 하나 있다.

<라듐 걸스> 는 형광이 반짝이는 표지에 확 끌려서 책을 펼쳤는데, 읽고 나니 깊은 슬픔으로 굴러떨어진다.

커피 한잔으로 간단히 때우는 아침 시간, 라디오 광고는 "매일 아침 '라디터' 한잔, 라듐이 풍부한 음료로 건강과 활력을 되찾으세요!" 출근길, 앞자리 승객이 보는 신문엔 라듐과 황화아연으로 만든 페인트 '언다크' 광고가 실려 있고, 회사 앞 옹벽엔 라듐을 함유한 실로 짠 니트 광고가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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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S] 주일우의 뒹굴뒹굴
라듐 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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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글라데시 친구가 하나 있다. 엉뚱한 일을 잘하는 괴짜였는데 요즘은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짐짓 근엄한 척한다나. 늘 유쾌한 웃음을 안겨주던 그 친구가 했던 공부는 무거웠다. 고향 사람들이 마시는 물에 대해서 연구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강물이 오염되어 마시지 못하게 되자, 우물을 파서 마시기 시작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아프고 죽어 갔다. 친구는, 이 사건을 ‘인류 최대의 독살 사건’이라고 과학저널 <네이처>에 보고했다. 지하수에 자연적으로 녹아든 비소가 있었다. 옛 기록에 비소는 지배 계급들이 서로를 살해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던 물질이다. ‘왕의 독’이라고 불렸다.

알지 못해서, 혹은 알고도 욕심 때문에 비슷한 비극이 반복된다. <라듐 걸스>는 형광이 반짝이는 표지에 확 끌려서 책을 펼쳤는데, 읽고 나니 깊은 슬픔으로 굴러떨어진다. 출근 준비를 하는 그레이스. 커피 한잔으로 간단히 때우는 아침 시간, 라디오 광고는 “매일 아침 ‘라디터’ 한잔, 라듐이 풍부한 음료로 건강과 활력을 되찾으세요!” 출근길, 앞자리 승객이 보는 신문엔 라듐과 황화아연으로 만든 페인트 ‘언다크’ 광고가 실려 있고, 회사 앞 옹벽엔 라듐을 함유한 실로 짠 니트 광고가 걸려 있다. 그레이스는 첫 출근을 한 에드나에게 일하는 방법을 가르친다. ‘입술’로 붓끝을 모아서 페인트를 살짝 ‘묻히고’ 숫자판에 ‘색칠’을 하면 된다. 공장에서 쓰는 페인트는 언다크. 어두운 곳에서도 손목시계의 숫자가 환하게 빛난다. 하루에 250개를 칠하면 된다.

사람들은 그레이스와 직장 동료들을 ‘고스트 걸스’라고 불렀다. 원자번호 88번, 라듐은 방사선을 내놓고 붕괴한다. 라듐의 방사선은 우라늄의 300만배, 강한 빛을 낸다. 언다크로 작업을 하면, 라듐이 여기저기 묻기 마련. 어두운 곳에서도 손과 옷에서 빛이 나니 유령이라 부를 만했다. 파티에선 신기한 놀잇감이 되기도 했지만 영화관에선 관람에 방해가 된다고 쫓겨나기도 했다. 라듐의 방사선은 빛만 내지 않는다. 입을 통해 삼킨 라듐은 조금씩 뼈에 쌓인다. 그리고 적혈구를 파괴해서 급성 빈혈을 일으킨다. 이가 빠지고 발과 관절에 통증이 생긴다. 결국은 유전자를 망가뜨려 암을 유발한다. 명랑한 소녀들이 하나씩 죽어 갔다. 1920년대 미국 뉴저지에서 일어난 일이다.

피해자들은 처음에 매독으로 죽었다는 오명을 뒤집어썼다. 하지만 용감하게 싸움을 시작했고 그것이 노동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그때부터 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노동자가 회사를 상대로 소송할 권리가 법적으로 보장되었다. 그런데 100년 전 이야기는, 아직도 반복되고 있다. 1990년대 중반 사용하기 시작해 2011년에야 유해성이 입증된 가습기살균제의 경우도 우리나라에 엄청난 수의 피해자들이 있는데, 아직 보상에 대한 합의조차 이루어지지 않았다.

라듐은 퀴리 부부가 10톤의 역청우라늄에서 4년을 노력해서 0.1그램을 얻을 정도로 희귀한 물질. 가습기살균제에 포함된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 인산염은 새로운 물질. 희귀한 것을 농축하거나 새롭게 만든 것들은 ‘오랜 시간’의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신기하고 편리해 보인다고 곁을 쉬이 내주다간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릴지니.  만화애호가

종이나 디지털로 출판되어 지금도 볼 수 있는 국내외 만화를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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