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Q경제] 러시아 디폴트, 정작 러시아엔 '타격감 제로'라는데.. 왜?

권순완 기자 2022. 7. 1.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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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갚을 능력은 있지만 서방 제재로 디폴트
에너지로 외화 버는 러시아에 큰 충격 없어
글로벌 채권 시장에 악영향.."다른 신흥국 디폴트 올수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6월 27일(현지시간) 모스크바 크렘린궁에서 유리 치한친 연방 재무감독국 국장을 면담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는 이날 외화 표시 국채에 대한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졌지만 "근거가 없다"며 디폴트 선언을 거부했다. /크렘린궁 제공/AFP 연합뉴스

지난달 27일 블룸버그 등 주요 외신은 러시아가 1998년 금융 위기 이후 처음으로 디폴트(채무 상환 불이행)에 빠졌다고 보도했습니다. 디폴트란 국가가 빚을 갚지 못하는 상황에 빠진 것을 말합니다. 특히 외화(달러)로 표시된 러시아 국채에 대한 디폴트는 볼셰비키 혁명 다음해인 1918년 이후 104년 만에 처음이었습니다. 각국의 매체들은 이 소식을 즉각 속보로 타전했습니다.

개인이 빚을 갚지 못해 파산하면 그 삶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하물며 국가가 채무를 갚지 못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분명 중대한 위기 상황이겠죠. 그런데 많은 경제 전문가들은 이번 디폴트 때문에 러시아 경제가 더 휘청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왜 그런걸까요? 다섯 개의 질문과 그에 대한 답으로 요약해 봤습니다.

◇Q1. 러시아는 왜 디폴트에 빠졌나요?

한마디로 말해서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서방의 제재 때문’ 입니다. 러시아가 이번에 돈이 없어 이자를 못낸 것이 아니라는 얘깁니다. 러시아가 이번에 채무 불이행에 빠진 금액은 국채에 대한 이자 약 1억달러(약 1300억원)였습니다. 그런데 현재 러시아의 외환 보유액은 약 5800억달러입니다. 세계에서 다섯번째로 많습니다. 자 그렇다면, 서방이 어떤 제재를 했길래 돈을 못냈다는 것일까요.

27일(현지시간)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을 받은 우크라이나 중부 폴타바주(州) 크레멘추크의 한 쇼핑센터 위로 거대한 연기구름이 치솟고 있다. 이 공격으로 최소 13명이 사망했으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텔레그램을 통해 "미사일이 떨어질 당시 쇼핑센터에 1천 명이 넘는 사람이 있었다"고 밝혔다. 2022.6.28/AFP 연합뉴스

앞서 지난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미국은 러시아 재무부, 중앙은행 등과의 거래를 전면 금지했습니다. 지난달 26일까지는 투자자가 러시아에서 국채 원리금이나 주식 배당금은 받을 수 있게 했지만 이마저도 유예 기간을 연장하지 않았습니다. 러시아는 국제 예탁 결제 회사인 유로클리어에 이자 대금을 달러와 유로화로 보냈지만, 유로클리어가 이 돈을 가져갈 방법이 없어진 겁니다.

이 때문에 러시아 측은 “서방이 러시아에 ‘디폴트’라는 꼬리표를 붙이려고 인위적인 장벽을 만들었다”고 반발했습니다. 정치적으로 일부러 디폴트를 만들었다는 주장이죠.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러시아가 다른 방법으로 우회해서 이자를 납부하는 방법도 쓸 수 있었다고 지적합니다. 즉 러시아가 돈을 내려면 낼 수 있었으니, 채무 불이행에 러시아 책임도 있다는 것이죠.

◇Q2. 디폴트에 빠지면 어떤 일이 일어나나요?

일반적으로 말하면 디폴트는 한 국가에게 큰 타격이 됩니다. 국가가 “자금 사정이 어려워 빚을 갚을 수 없다”고 선언하는 것이니까요. 당장 국가 신용도가 추락하고, 그 국가가 발행한 채권은 ‘휴지 조각’ 수준으로 가격이 떨어집니다. 국가 이미지도 추락하죠. 2015년 그리스 경제 위기가 기억나시나요? 그리스는 디폴트 위기에 빠지자 거의 모든 외교적 수단을 동원해 주변국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고, 가까스로 모면했습니다.

6월 17일(현지시간)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의 한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기위해 삼륜차들이 길게 늘어서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디폴트가 가져오는 부정적 여파는 최근 스리랑카의 사례에서 여실히 보입니다. 스리랑카는 지난달 18일부터 공식적인 디폴트 상태가 됐습니다. 최근 주력 산업인 관광 부문이 코로나 확산 등의 영향으로 붕괴하고, 대외 부채가 급증했기 때문이죠. 디폴트로 외화 수급이 더 어려워지자 스리랑카 정부는 지난달 28일 필수 서비스를 제외하고 향후 2주간 모든 연료 판매를 중단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외에도 의약품, 식품 등의 수입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입니다. 국가의 중추가 마비되는 지경에 이른 것이죠. 디폴트는 위기의 결과이기도 하지만, 위기를 가중시키는 촉매제이기도 합니다.

◇Q3. 디폴트는 러시아 경제에도 타격을 줄까요?

그런데 이번 러시아의 경우엔 사정이 다르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입니다. 왜일까요? 우선 위에서 설명드린대로 러시아가 ‘능력’이 없어 빚을 못 갚은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실제로 외환고가 텅텅 비어 디폴트에 빠진 경우와, 외환고는 충분한데 별도의 제재 때문에 못 낸 경우는 국제 금융 시장이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겠죠.

또 대표적 ‘에너지 국가’인 러시아 특성상 앞으로도 외환 수급이 충분하게 이뤄질 것이라는 예상 때문입니다. 러시아는 세계 1위 천연가스 수출국이고, 원유 수출액은 사우디아라비아에 이어 세계 2위입니다. 금융정보 서비스 업체인 CEIC 통계에 따르면, 최근 각종 서방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지난 2~5월 에너지 수출에 힘입어 900억달러(약 116조원)를 순수출로 벌어들였습니다. 러시아는 오히려 지난달 16일엔 유럽으로 가는 가스 공급량을 40~60% 줄이는 대(對)서방 압박책을 쓸 만큼 여유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역별 연간 원유·천연가스 에너지 생산량

게다가 러시아의 국가 부채 수준은 현재 비교적 낮은 편입니다. 국가 부채 수준은 통상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로 측정하는데요, 러시아는 2020년 기준 약 19%로 알려졌습니다. 이 비율은 한국이 약 47%이고요, 미국이 133%. 일본이 254% 정도입니다. 비슷한 규모의 신흥국인 인도네시아(약 37%)와 비교해 봐도 낮은 편이죠. 나라가 진 빚이 그리 많지 않으니 향후 갚아야할 돈의 부담도 크지 않겠죠. 이 때문에 미국의 유력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도 “국가 디폴트에 통상 적용되는 이론이 러시아에 적용되긴 어렵다”고 분석했습니다.

◇Q4. 러시아는 ‘타격감 제로’라지만, 세계 경제에 타격은 없을까요?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것은, 그렇다면 러시아 디폴트는 아무런 의미가 없냐는 것인데요. 그렇진 않습니다. 다만 그 외부적인 효과가 클 것이라고 경제 전문가들은 전망합니다. 즉, 러시아보다도 다른 나라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인데요.

글로벌 채권에 투자하고 있는 투자자들에게 경계심을 심어준다는 것이죠. 러시아 정도의 규모의 나라가 디폴트에 빠졌으니, 다른 비슷한 신흥국도 위험하지 않겠냐는 인상을 투자자들에게 심어준다는 겁니다. 컨설팅 업체인 매크로어드바이저리의 러시아 전문가 크리스 위퍼는 AP 통신에 “(러시아 디폴트 때문에) 다른 신흥국이 디폴트에 빠질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보면 러시아는 괜찮지만 다른 나라엔 ‘민폐’를 끼치게 되겠네요.

사실 러시아는 디폴트 이전에 지난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이미 세계 경제를 뒤흔들었습니다. 당장 유가가 치솟았고 세계의 곡창이라는 우크라이나의 농경 산업이 흔들리면서 식료품을 비롯해 거의 모든 물가가 치솟았습니다. 이후 미국이 물가를 잡기 위해 지난달 기준금리를 크게 인상하자, 미국을 비롯한 각국 증시가 곤두박질 치고 있죠. 한국에선 어제(1일) 1년 8개월 만에 코스피가 장중 2300선 밑으로 내려갔습니다. 모두 우크라이나 전쟁 탓이라고 할 순 없지만, 그 여파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Q5. 그렇다면 러시아 경제는 이제 어떻게 되나요?

디폴트의 여파는 크지 않더라도,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의 대가를 경제적으로 치르고 있습니다. 당장 올해 러시아 경제 규모는 8.5% 감소할 것이라고 국제통화기금 (IMF)은 예측하고 있습니다. 미국을 필두로 한 서방의 각종 제재 때문입니다. 또 러시아는 의약품 등 국가 운영에 필수적인 제품들을 비축해 놓고 있지만, 전쟁이 장기화되면 그 재고가 바닥날 가능성도 있죠.

지난 5월 23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의 힘키 지구에 있는 맥도날드 점포의 로고 사이니지가 철거된 모습. 미국 맥도날드는 러시아 시장 철수를 결정한 데 이어 현지 기업인에게 러시아 내 매장 850개를 매각한다고 19일 밝혔다. /로이터 연합뉴스

러시아 국민들도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미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러시아의 물가는 올해에만 18~23% 상승할 것이라고 합니다. 경제가 침체되는데 물가가 오른다면 당장 일반 소비자들의 삶이 팍팍해질 수밖에 없죠. 또 맥도날드를 비롯한 수많은 외국계 기업들이 러시아에서 철수했습니다. 이제 러시아 국민들은 국산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을 중단한다는 뉴스는 아직 들려오지 않습니다. 무엇이 진정한 러시아의 ‘국익’인지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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