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객열전] 당구계 '쪼꼬미' 김민영

김동찬 기자 2022. 7. 1.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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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턴 무한 반복 '연습 벌레'
"난 매일 한 뼘씩 성장한다"
프로당구 선수 김민영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스트로크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152cm의 작은 키와 달리 특유의 카리스마를 뽐내며 '작은 고추가 맵다'를 증명하고 있는 선수가 있다. 바로 당구계 '쪼꼬미'로 불리는 김민영(27·블루원엔젤스) 선수다. 김민영은 아카데미나 개인 레슨을 통한 체계적인 코스를 밟고 선수로 활동하는 추세와 달리 고등학교 2학년 때 자립을 위해 시작한 당구장 아르바이트가 인연이 되면서 선수가 된 케이스다. LPBA 출범과 함께 프로선수 길을 걷고 있는 그녀는 매년 실력을 향상시키며 당구계에 눈도장을 찍고 있다. 프로 데뷔 후 1차 목표로 삼았던 팀리그에도 올해 지명되며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김민영 선수를 서울 강남구 브라보캐롬클럽 PBA스퀘어점에서 만났다.

알바로 시작한 당구, 이상대 선수 만나 선수 생활 시작

인터뷰를 위해 첫 인사를 나눈 후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그녀의 스마트폰이었다. 스마트폰 케이스엔 '블루원엔젤스' 로고가 붙어 있었다. 그만큼 소속팀에 대한 그녀의 자부심과 애정을 엿볼 수 있었던 장면이다.

"올해 개막전에서 프로 선수로 전향한 뒤 첫 팀원으로 출전을 했어요. 지난해까지 제 목표가 '팀리그에 들어가자'였는데 그 꿈을 이룬 거죠. 그래서 첫 경기 출전 때 사용한 로고 패치를 버리기 싫었습니다. 뭐랄까 '이건 아무나 받을 수 없어', '내 꿈을 이룬 상징이야'라는 등의 여러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프로당구 선수 김민영이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김민영은 고등학생 시절 친구들과 포켓볼을 치러 우연히 당구장에 들렀다가 아르바이트 공고문을 보고 문득 자립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다. 그래서 덜컥 당구장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는 일이 한가할 때는 사장님한테 직접 당구를 배우기도 했다. 그 당구장의 사장이 현재 PBA 3부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는 서양수 선수였다.

"그때 아르바이트하면서 카운터 옆 당구대가 비어 있으면 혼자 공을 놓고 쳐보기도 하고, 때때로 사장님이 치는 법을 알려주시기도 했어요. 사장님이 선수다 보니 제가 연습하고 배운 곳도 국제식 대대였죠. 전 처음부터 국제식 대대에서 배웠기 때문에 다른 선수와 달리 중대를 쳐본 경험이 없어요."

3쿠션에 대한 기본기를 배우면서 당구의 매력에 빠진 김민영은 그곳에서 운명의 선수를 만나게 된다. 바로 그녀의 스승인 이상대(PBA) 선수다. 그녀를 지금 선수생활로 이끌어준 장본인이 이상대 선수이기 때문이다.

"당시 제가 일했던 당구장이 큰 곳이다 보니 많은 선수들이 방문했었어요. 이상대 프로님도 그곳에서 알게 됐고요. 마침 학교 옆에 당구장이 있었는데 그곳에 이 프로님이 계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그곳으로 찾아가 당구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저에게는 지금도 스승 같은 존재입니다."

본격적인 선수 생활 위해 전주에서 인천으로 터전 옮겨

당구의 재미에 빠진 김민영은 당구장 아르바이트와 배움을 이어갔다. 21살 무렵 당구장을 잠깐 쉬고 다른 일을 했는데 지인의 배려로 편하게 당구장에서 연습을 하라고 배려해 준 덕이 컸다. 일을 마치고 꾸준히 연습에 몰두한 결과 동호인 대회에서 두 차례 입상하는 결과를 낳았다.

김민영의 재능을 눈여겨본 이상대는 정식으로 선수 생활을 권유했다. 그는 스승의 격려에 힘입어 22살에 전주당구연맹에 가입해 선수의 길을 걷게 됐다.

"당시 선생님이 '잘 친다고 선수가 돼서 바로 입상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경험이 쌓여야지 실력도 쌓이고 네가 입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실력이 모자라더라도 경험을 쌓아 놓고 실력을 같이 쌓아라'라고 해준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프로당구 선수 김민영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김민영은 최근 생활 터전을 전주에서 인천으로 옮겼다. 친오빠가 마침 인천에 거주했고수도권인 인천에서 더 다양한 선수들과 교류할 수 있는 환경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제가 당구 선수를 한다고 처음 말했을 때 오빠가 그냥 웃기만 했어요. '잘해 봐라'라며 격려도 해주긴 했지만 아마도 '설마 당구를 언제까지 치겠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지난해 제가 8강까지 올라가면서 TV에도 얼굴이 나오니까 그때서야 진짜 실감을 한 거 같아요. 지금은 경기가 있을 때마다 응원과 격려를 많이 해줍니다."

인천 생활을 시작한지 2개월이 넘은 그에게 최근 고민이 하나 생겼다. 바로 스승인 이상대와 지리적으로 멀어져 자주 만날 기회가 적어졌기 때문이다.

직접 대면을 못하는 아쉬움을 그는 사진을 찍어 보내거나, 전화를 걸어 직접 물어보면서 사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비대면의 한계가 있다는 점을 절감해 조만간 날을 잡고 내려가서 집중적인 레슨을 받기 위해 벼르고 있는 상황이다.

꿈에 그리던 팀리그 합류 "팀원 모두가 스승이어서 기대 커"

김민영의 연습 스타일은 여느 당구선수와 조금 차이가 있다. 일단 그는 다른 선수의 영상을 찾아보지 않는다. 본인의 영상도 최대한 보지 않으려고 한다. 오로지 습관처럼 같은 형태의 배치를 정복할 때까지 며칠이 걸리더라도 반복하는 연습에 몰두한다. 어떤 형태의 공이 오면 몸이 습관처럼 알아서 반응하는 수준을 바라고 있어서다.

"약간 미련할 수 있지만 저는 똑같은 배열을 놓고 매일 치고 있어요. 이게 몸에 좀 습관처럼 될 때까지 치면 비슷한 공이 나올 때 자동으로 큐가 잡힐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그렇게 하나의 배열을 습득하면 포인트를 하나씩 옮겨가면서 또 반복을 해요. 이 배열을 옮겨가면서 응용할 수 있을 때까지 무한 반복한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김민영 선수는 올해 처음으로 팀리그에 합류했다. 블루원엔젤스에는 '엄상궁' 엄상필 선수를 필두로 강민구, 다비드 사파타, 스롱 피아비, 서한솔, 잔 차팍, 그리고 김민영까지 7명의 선수가 포진하고 있다.

블루원엔젤스에 합류한 것 자체가 김민영에게는 엄청난 동기부여가 됐다. 꿈에 그리던 팀리그에 합류하자 가장 달라진 점은 그동안 혼자 외롭게 당구를 접했다면 이제는 팀원들이 뒤를 받쳐주고 있다는 것이다. 팀 선수들이 경기 때마다 응원해 주고, 본인도 응원해줄 대상이 생겼다는 상황이 아직도 신기하고 든든한 느낌이 든다고 한다.

팀리그에 합류하면서 그에겐 또 다른 변화가 생겼다. 스승인 이상대 선수를 자주 못 만나는 아쉬움을 팀원 선배들을 통해 채울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팀에 합류하고 엄상필 선수를 찾아갔는데 당구를 정말 잘 알려 주시더라고요. 자주 가서 배우면 좋지만 '제가 붙잡고 알려달라고 해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선뜻 말이 안나와요. 제 성격이 내성적이라 그런 것도 있고요. 그리고 이번 시합 때 강민구 선수가 원포인트 레슨을 해주셨는데 이것도 엄청 도움이 됐어요. 조금만 친해지고 기회가 되면 팀에서 많이 배울 수 있을 것 같아 너무 기대됩니다."

프로당구 선수 김민영이 스포츠한국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팀원이자 롤모델인 스롱 피아비를 넘는 것이 목표"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친한 당구선수가 거의 없는 김민영은 팀에 합류하면서 롤모델인 스롱 피아비와 한솥밥을 먹게 됐다. 팀 동료로 개막전 때 피아비와 같이 다니다 보니 둘은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제 롤모델이 피아비 선수인데요. 마침 같은 팀이 되면서 시합 때 처음으로 직관을 할 수 있었습니다. 결승까지 흐트러지지 않는 집중력을 보면서 왜 1등을 하는지 느낌을 확 받았어요. 특히 저와는 다르게 언니가 엄청 활발한 편이라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아서 좋습니다. 앞으로 같이 다니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물론 김민영에게 피아비는 롤모델이자 경쟁자이다. 같은 팀원이지만 프로 선수로서의 숙명이다. 그래도 그는 우상을 라이벌로 삼아 넘고 싶은 의지를 키우려고 한다. 현재 최강인 피아비를 넘어서야만 LPBA에서 최고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라이벌이라고 말하기엔 아직 너무 높은 곳에 머무는 저의 롤모델이죠. 만약 제가 언니를 잡는 날이 온다면 그건 우승이나 마찬가지라는 소리잖아요. 목표는 높게 잡아야 하니 당연히 우승이 목표가 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최고 자리에 있는 피아비 언니를 이기고 싶습니다."

김민영은 2021-2022 시즌부터 실력이 올라오며 당구팬 사이에서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LPBA 강자 중 한 명인 강지은 선수와의 경기에서도 좋은 모습을 선보이는 등 TV에도 자주 모습을 드러내면서 인지도를 높이고 있는 것이다. 인지도와 함께 실력도 높인 김민영은 올해 개막전에서 8강까지 올라섰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지난 시즌 파이널 경기에서 강지은 선수와 벌인 시합입니다. 제가 잘 치기도 했고, 그날 운도 따라주면서 좋은 경기를 펼칠 수 있었죠. 특히 방송할 때 이겨본 것도 처음이었고요. 반대로 파이널 16강에서 윤경남 선수한테 마지막 점수를 놓쳐 졌던 경기가 가장 아쉬웠어요. 올해 개막전까지 좋은 흐름을 유지하고 있는데 제 생각에는 실력에 비해 성적이 잘 나오고 있는 편이에요. 100% 실력은 절대 아니고 운이 많이 따라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할까. 김민영에게도 마음고생이 뒤따랐다. 김민영이 8강전에서 이미래 선수와의 경기 때 웃는 모습이 TV 화면에 잡혔는데 웃는 장면이 하필이면 이미래 선수가 득점을 실패한 장면과 겹치면서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마치 이미래 선수가 공을 치지 못해 웃었다고 생각하시는데 진짜 오해입니다. 성격이 내성적인데 그때 관중석에서 제 이름을 부르며 응원하는 소리가 들리는 거예요. 뭐랄까 그런 경험이 처음이기도 하고 그 응원 소리가 저도 모르게 쑥쓰러워 웃음이 나왔거든요. 진짜 이 자리를 통해 당시 오해가 풀렸으면 좋겠습니다."

프로당구 선수 김민영이 스포츠한국과의 인터뷰에서 스트로크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혜영 기자 lhy@hankooki.com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장난감 중 '얌체공'이라 불리는 작은 공이 있다. 이 공은 여타 다른 공과 다르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고 마치 사람을 놀리듯 얌체같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 오른다. 분명 사람을 화나게 할 만한데 얌체공의 매력에 빠지면 나도 모르게 계속 가지고 놀게 된다. 김민영은 당구의 매력 역시 얌체공과 같다고 말한다.

"당구는 매일 매일 연습하고 똑같이 하는 데도 오늘은 되고, 내일을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게 가끔은 약이 오르기도 하지만 원하는 방향으로 맞으면 그 쾌감은 배가 돼요. 아무리 같은 공을 연습해도 안 되면 좀 실증이 날 것 같기도 한데 또 연습을 죽어라 하면 돼요. 약이 오르면서도 찾아오는 쾌감 때문에 당구를 놓을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김민영은 지난 시즌 자신이 프로로 데뷔하고 목표로 삼았던 팀 합류를 해냈다. 그러다 보니 그녀에겐 올해 시즌이 또다시 새로운 목표로 향해 나아가는 원년이다.

"당장의 계획이라면 팀리그에 오래오래 있는 것이 1차 목표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올해 꼭 결승까지 가는 게 목표예요. 물론 우승을 하면 좋겠지만 결승에 올라가는 것만으로도 새롭게 달성하는 성적이죠.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하체 운동과 체력 운동도 시작했어요. 체력이 뒷받침돼야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으니까요. 이번 시즌 더 높게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스포츠한국 김동찬 기자 dc007@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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