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3인의 의기투합이 현금 종말시대 열어

김유태 2022. 7. 1.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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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10개의 딜 / 자크 페레티 지음 / 김현정 옮김 / 문학동네 펴냄 / 1만7500원
중국 선전시에 위치한 호텔 식당에서 한 고객이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 탑재된 디지털 화폐로 결제하고 있다. [매경DB]
중국에 가보면 알게 된다. 현금이 종말을 고했다는 것을. 한국돈으로 몇백 원에 불과한 물건을 파는 좌판 상인조차도 위챗 QR코드를 손가락으로 가리킨다. 서양이라고 다른가. 스웨덴에선 길거리 공연자도 언택트 기기를 활용한다. 네덜란드에선 노숙자 겉옷 소매에 카드를 갖다 대면 적선이 가능하다. 잡상인도 부랑자도 현금을 버리고 온라인 결제를 선호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기원전 6세기 이후 인류 최고의 발명품이었던 실물화폐가 2600년 만에 소리도 소문도 없이 '암살'당했다. 주화의 종말이 인류의 자연스러운 변화가 아니라 소수의 의도와 계획이라면?

BBC 다큐멘터리 제작자 겸 탐사보도 전문기자인 자크 페레티의 '세상을 바꾼 10개의 딜'은 현금 암살교사범이 2002년 한 장소에 모였던 3인의 남성이라고 '폭로'한다.

1998년 맥스 레브친과 피터 틸은 스탠퍼드대의 텅 빈 강당에서 만났다. 틸이 통화시장에 대해 무료 강연을 하고 있었지만 청중은 6명뿐이었다. 레브친은 그중 하나였다. 두 사람은 혁신을 이해하고 싶었다. 두 사람은 은행을 통하지 않고 인터넷상에서 돈이 오가게 만드는 방법에 골몰했다. 두 사람 사무실 근처에는 약 20년 뒤 화성의 얼음을 녹여 대기를 만든 뒤 지구의 식민지로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을 추동할 유명 기업인이 있었다. 일론 머스크였다.

머스크도 당시 새 지불 방법을 찾아내면 돈이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인간은 현금을 낼 때 고통을 느낀다. 셋의 목적은 이랬다. '소비자에게 고통 없는 결제 수단을 가능케 하라.'

세 사람은 회사를 합병했고 훗날 이 회사의 이름은 그 유명한 페이팔이 된다. 2002년 8월 12일 월요일, 미국 캘리포니아 새너제이에서 이들이 만나지 않았다면 여전히 우리 지갑엔 현금이 가득할지도 모를 일이다. 저자는 쓴다. "마침내 현금이 영원히 사라지면, 지불의 고통을 없애고자 했던 두 남자 틸과 레브친이 20년 전에 텅 빈 강의실에서 만남을 가진 결과일 것이다."

비즈니스 아이디어가 어떻게 인류의 삶의 방식을 바꿨는지를 책은 추적한다. 1932년 스위스 레만호수에서 이뤄진 기업인들의 만남도 그중 하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40마일을 달리면 리버모어라는 마을이 나온다고 한다. 리버모어 소방서의 전구는 처음 설치된 뒤 117년간 쉬지 않고 지금까지도 빛을 내고 있다. 탄소 필라멘트 전구는 빛의 밝기는 좀 줄었어도 100년간 쉬지 않고 제 역할을 해내고 있다고 한다. 100년짜리 전구도 이러할진대 왜 요즘 만들어진 전구는 6개월, 1년만 지나도 수명이 다할까.

비밀은 1932년 스위스 레만호수에서 벌어진 하나의 '딜' 때문이라고 저자는 쓴다. 제너럴일렉트릭, 필립스, 오스람 등 당시 글로벌 전구 제조업체는 '전구 수명 제한'이라는 기막힌 합의를 이끌어낸다. 시간이 지나면 제품이 저절로 고장 나도록 설계한다는 것.

이 개념은 '설계된 불만족'이란 개념으로 재탄생했다. 소비자들은 업그레이드된 신제품을 보면서 자기 소유의 제품이 고장 나지 않아도 노후됐다고 믿게 됐다. 손에 든 휴대전화만 해도 그렇다. 1년 주기로 넘버링이 달라지는 휴대전화를 보면서 멀쩡한 휴대전화를 2년 주기로 바꿔야 직성이 풀린다.

책에는 비틀스 멤버 존 레넌에게 세금을 줄여주겠다는 회계사의 제안이 조세 회피 담합의 시작이었다거나,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한 금융위기가 실은 에이즈 환자를 위한 대출 상품에서 파생됐다는 등의 흥미로운 '딜'이 가득하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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