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기' 다큐 보며 키운 우주엔지니어 꿈..'2단로켓' 임무 완수, 다음 미션은 달착륙

문광민 2022. 7. 1.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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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end Interview] 우주 강국 쏘아올린 누리호..2단엔진 조립 맡은 손종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엔지니어
[사진 제공 = 과학기술정보통신부]
"3, 2, 1, 발사!" 지난달 21일 오후 4시 정각.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II)' 2호기 1단부에 장착된 75t급 엔진 4기가 거대한 불꽃을 내뿜으며 도합 300t의 추력으로 우주를 향해 솟아올랐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소속 엔지니어들은 환호성을 내면서도 남몰래 마음을 졸였다. 이륙 127초 만에 고도 59㎞ 상공에서 누리호 1단이 분리되고, 2단부에 장착된 75t급 엔진 1기가 작동했다. 2단 엔진은 147초 동안 화염을 뿜으며 199㎞ 이동해 발사체를 258㎞ 고도로 올려놓은 뒤 3단부 7t급 엔진 1기에 바통을 넘겼다. 이후 700㎞ 고도에서 성능검증위성이 분리되고 궤도 안착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에야 엔지니어들은 안도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추진기관생산부 생산기술팀 소속 손종운 과장(32)은 누리호 2단 엔진 조립을 담당했다. 액체로켓 조립 엔지니어로 경력을 시작한 2014년부터 올해까지 9년째 누리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그에게 누리호 2차 발사 성공을 지켜본 소감을 묻고, '147초'의 영광을 위해 재점검을 거듭한 2단 엔진 담당 엔지니어의 속마음을 들었다.
―2차 발사를 앞두고 엔지니어들은 이번 발사가 성공하겠다고 확신했는지.

▷1차 발사 때 가장 어렵다고 생각했던 부분들이 원활하게 작동했다. 액체로켓은 공중에서 각 단이 분리되고, 엔진이 점화하는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 폭탄 같은 압력으로 산화제와 연료를 쏟아부어 엔진을 점화시키되, 빠른 속도로 움직이면서 정확한 타이밍에 오차 없이 작동해야 한다. 2차 발사용 엔진은 1차 발사에 사용한 엔진과 동일하지만, 완벽한 성공을 위해 모든 작업에 재점검을 거듭했다. 엔지니어 모두 2차 발사를 성공시키겠다는 일념이었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무슨 생각이 들었나.

▷막상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자 걱정됐다. 많은 사람이 노력해 제작했는데 혹시라도 조그만 실수가 있어 실패하진 않을까 해서다. 그래도 전날 잠을 못 잤던 1차 발사 때와 비교하면 이번에는 조금 더 편안한 마음이었다.

―엔진이 날아오르는 순간에는.

▷가슴이 설렜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기뻤다. 우리 모두가 만든 엔진이 뿜어내는 불꽃을 보며 감탄했다. 2단 엔진 담당자인 나는 1단이 분리되는 순간까지 마음을 졸였다. 2단 엔진이 성공적으로 점화하는 장면을 보고서야 마음이 놓였다. 그제야 주위를 돌아볼 수 있었다. 3단 엔진 담당 엔지니어가 긴장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누리호에는 참 많은 엔지니어의 노력과 걱정이 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오랫동안 하늘을 올려다봤겠다.

▷누리호가 육안으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봤다. 실시간 상황은 방송 중계로 들었다. 누리호가 각 시퀀스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때마다 모든 이가 환호했다. 축제 같은 분위기였다.

―이번 발사 성공의 의미는.

▷한국의 뉴스페이스 시대를 여는 출발점이다. 누리호 개발로 많은 기술과 경험이 축적됐다. 이번 발사 성공으로 한국은 우주 7대 강국에 올랐다. 함께 개발에 참여한 엔지니어들과 성공을 축하하며 우리가 만들어낸 엔진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다가올 뉴스페이스 시대에도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제작에 오랜 공이 들어가지만 각 엔진에 주어진 기회는 한 번뿐이다.

▷엔진 구성품 제작을 완료하고 나면 본조립을 3개월간 진행한다. 연소시험 이후 점검하다 보면 약 6개월간 한 엔진과 지내게 된다. 납품 시점이 되면 꼭 친구를 떠나보내는 느낌이 든다. 긴 시간을 함께한 엔진이 몇 분 만에 연소를 끝내고 분리되는 것을 보면 아쉬울 때도 있다. 짧은 순간이지만 멋지게 연소하며 자기 역할을 수행하는 엔진을 보면 자부심이 크다. 액체로켓 엔지니어라는 직업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뿌듯함이 있다.

―엔진을 발사체에 장착하지 않은 상태에선 어떻게 성능을 검증하나.

▷엔진에는 연소기·터보펌프·밸브 등 주요 부품과 그 사이를 연결해주는 수많은 배관·센서·하니스 등이 복잡하게 구성돼 있다. 엔진이 완벽하게 작동하기 위해서는 조립 위치에서 부품들이 제 역할을 수행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조립이 완료되고 나면 조립이 제대로 됐는지 검사한다. 전체 엔진에 대한 기밀점검, 밸브 작동시험, 하니스 점검, 센서 점검 등 수십 개 항목을 놓고 조립 적절성을 평가한다. 점검을 마친 엔진은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2회 정도 연소시험을 거친 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사업장 엔진조립장으로 돌아온다. 유지·보수 작업 후 성능을 완벽하게 확인한 뒤 고흥 나로우주센터로 보낸다.

―엔진이 발사체에 장착되는 시점은.

▷발사체에 엔진을 장착하는 일은 발사 7~8개월 전에 이뤄진다. 누리호 2차 발사를 위한 엔진 장착은 지난해 11월 나로우주센터에서 진행됐다.

―발사체에 장착한 뒤 엔진이 제 성능을 내는지 확인할 방법이 있나.

▷장착 이후에는 엔진 연소시험이 불가하다. 기밀점검, 밸브 작동시험, 하니스 점검, 센서 점검 등 시험을 발사체 조립 상태에서 동일하게 수행해 엔진의 품질 신뢰성을 확보한다.

―엔진을 구성하는 부품 중 핵심은.

▷터보펌프와 연소기다. 연소기는 금속을 녹일 정도인 3500도의 화염을 견뎌내야 한다. 그러다 보니 기술력이 집중돼 있다. 화염이 뿜어져 나오는 주변을 연료로 식혀주는 재생 냉각(regenerative cooling) 채널이 일례다. 터보펌프는 저압 상태의 산화제·연료를 고압으로 승압해 연소기로 넣어주는 역할을 한다. 추진제 압력이 높을수록 연소기 효율은 높아진다. 우주발사체 터보펌프에는 ―183도의 극저온 산화제도 지나가야 하고, 상온의 연료도 지나야 한다. 아래쪽에선 고온의 온도로 터빈을 돌린다.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폭발할 우려가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추진기관생산부 생산기술팀 소속 손종운 과장이 누리호 75t급 엔진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 엔진은 한국이 독자 기술로 개발하고, 비행시험을 통해 성능 검증까지 마친 최초의 한국형 우주발사체 엔진이다. [사진 제공 = 한화에어로스페이스]
―75t급 엔진 제작 과정에서 가장 까다로웠던 문제는.

▷액체로켓 엔진 개발 초기 단계에서 가장 까다로웠던 문제는 설계와 실제 조립 간 불일치다. 처음 개발하는 엔진이었기에 한국항공우주연구원에서도 설계 시 조립성을 고려하기 어려웠다. 조립하고 수정하고, 조립하고 수정하는 일을 수없이 반복했다. 엔진 조립을 규격화한 뒤에는 실제로 발사에 사용할 엔진을 만들어야 했기에 품질 보증 부분이 까다로웠다. 조립과정마다 공정검사를 반복하고, 주요 공정마다 성능검사를 수행했다.

―75t급 엔진과 비교해 7t급 엔진은 제작이 쉽나.

▷실제로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 75t급 엔진과 7t급 엔진은 각각 특징이 있다. 75t급 엔진은 무게만 1t에 육박하는 만큼 더 많은 인원이 제작에 참여한다. 시간이 많이 들어간다. 다만 인터페이스가 크다 보니 조립이 상대적으로 용이하고, 문제가 생겨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반면 7t급 엔진은 각 인터페이스가 오밀조밀하게 모여 있어 섬세한 작업이 필요하다. 공구를 사용해 조립하기가 까다롭고, 문제 원인을 찾기도 어렵다. 7t급 엔진은 배관이 짧고 단단해 조금만 어긋나도 조립이 안 된다.

―암묵적인 '금기어'가 있나.

▷금기어는 아니지만 다들 힘들어하는 말이 있다. 바로 '한 번 더'다. 완벽한 품질 보증을 위해 조금이라도 의심되는 사항이 있다면 다시 점검한다.

―가장 많이 '한 번 더' 점검한 것은.

▷탱크와 연결된 부위의 미세 누설부를 찾기 위해 동일한 시험을 수십 차례 반복했다. 누설부로 의심되는 지점에 거품이 일도록 하는 스누프(snoop)라는 장비로 1차 점검을 하고, 헬륨 검출기로 공기 중 헬륨 농도를 측정해 누설부 위치를 찾아야 했다. 헬륨 검출량이 초당 0.0001㎖보다 적어야 기밀시험 기준을 충족한다. 최고 품질을 갖추기 위해 작업자들 모두 미세 누설부를 찾고 또 찾았다. 혹시 모를 안전사고에 대비해 현장 작업자들은 방탄복을 입는데, 지난여름 땀을 뻘뻘 흘렸다.

―직업적 습관이 있다면.

▷조립 시 외부물질이 엔진 내부로 들어가면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조립 시 항상 주의를 기울이는 대목이다. 조립 중 엔진 인터페이스가 열려 있으면 외부물질이 들어갈 우려가 있으니 인터페이스를 닫았는지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집에서도 어떤 뚜껑이든 열려 있기만 하면 자꾸 닫으려고 해서 아내에게 타박을 받는다. 또 엔진 튜브라인 조립 시 내시경으로 내부 이물질을 확인하고 질소가스로 불어낸 뒤 조립한다. 그러다 보니 일상에서 정수기나 샤워 호스 같은 배관만 보이면 '저기는 깨끗할까. 이물질은 없을까' 생각한다.

―로켓 엔지니어의 꿈은 언제 키웠나.

▷고등학생 때 내셔널지오그래픽 채널에서 제작한 차세대 전투기 개발 다큐멘터리(Battle of the X―Planes)를 보면서 항공우주 엔지니어가 되겠다는 꿈이 생겼다. 대학도 항공우주공학과에 입학했다. 대학에서 비행체 제작 활동 등을 통해 항공우주 엔지니어의 꿈을 더 키웠다.

―누리호 프로젝트에는 어떻게 참여했나.

▷현재 몸담은 추진기관생산부에서 2013년 7~8월 인턴으로 근무했다. 한국형 발사체 개발 사업이 곧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엔진 조립 업무만 시켜준다면 어떤 일이든 열심히 하겠다고 이야기하고 다녔다. 입사자 최종 선발 시 인사담당자가 "넌 이미 갈 곳이 정해져 있잖아. 패스!" 하며 웃었던 모습이 기억난다. 덕분에 누리호 첫 엔진 조립부터 참여할 수 있었다. 어려서부터 하고 싶던 일을 하고 있다는 게 기쁘고, 자부심을 느낀다.

―누리호 프로젝트 완료 후 목표는.

▷현재 정부에선 뉴스페이스 시대를 대비해 '한국형 발사체 고도화 사업' '차세대 발사체 개발 사업' 같은 우주 산업 육성을 위한 많은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한화그룹에서도 이에 발맞춰 우주 산업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앞으로 펼쳐질 많은 우주 미션과 액체로켓 엔진 개발에 참여해 한화가 한국 우주 산업을 이끄는 데 일조하고 싶다. 액체로켓 설계부터 제작까지 전 주기에 걸친 전문가가 되고 싶다.

▶▶ 손종운 엔지니어는…

1989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부산대에서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했다. 고교 때 우주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항공우주 엔지니어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2013년 여름 인턴 근무 중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KSLV-II) 개발 사업이 시작된다는 소식을 운명처럼 받아들였다. 2014년 6월부터 한화에어로스페이스에서 액체로켓 조립 엔지니어로 근무 중이다. 누리호 2단 엔진 조립을 담당했다.

[문광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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