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문재인의 신(新)매카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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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일어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이 뜨겁다.
김정은은 '계몽군주'(유시민)라는 말이 나왔고, 청와대는 보름 전 대통령 문재인이 김정은에게 보낸 친서에서 "생명존중에 대한 강력한 의지에 경의를 표한다"고 한 찬사까지 공개했다.
당시 종전선언에 집착하고 있던 문재인은 9월28일 "김정은 위원장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한 것을 각별한 의미로 받아들인다"면서 "사상 처음 있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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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명예교수)
2년 전 일어난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이 뜨겁다. 아직 밝혀져야 할 게 많지만, 현시점에서도 싸우는 양쪽 모두 합의할 수 있는 기본 사실만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 이야기를 좀 해보련다.
2020년 9월22일 공무원 이대준이 북한군에 의해 피살되었을 때 국방부는 '만행'으로 규정했지만 25일 북한의 사과 통지문을 받은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갑자기 김정은 찬양 분위기가 조성됐다. 김정은은 '계몽군주'(유시민)라는 말이 나왔고, 청와대는 보름 전 대통령 문재인이 김정은에게 보낸 친서에서 "생명존중에 대한 강력한 의지에 경의를 표한다"고 한 찬사까지 공개했다.
당시 종전선언에 집착하고 있던 문재인은 9월28일 "김정은 위원장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을 전한 것을 각별한 의미로 받아들인다"면서 "사상 처음 있는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이후 문 정권은 이대준을 월북자로 몰았다. 정황에 의한 추정이었다. 월북으로 보기 어려운 증거들은 무시되었다.
한국 현대사에서 '월북'이라는 딱지는 공포 그 자체였다. 월북자 가족은 인간 대접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거야 옛날이야기 아니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당시 어느 여당 의원은 "월북을 감행하면 사살하기도 한다"며 분위기를 조성했다. 언론과 전 시민사회는 사실상 월북의 가공할 효과에 굴복하고 말았다. 이대준과 그 가족의 인권 문제를 적극 제기하는 단체나 운동은 없었으니 말이다.
이는 '신(新)매카시즘'이라고 부를 만한 비극이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인권변호사였던 문재인이 그런 '신매카시즘'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지도자였다는 건 비극이라기보다는 희극이었다. 인간에 대한 예의, 문재인 식으로 말하자면, "사람이 먼저다"라는 원칙은 철저히 유린되었으니, 이는 놀랍다 못해 참혹한 일이었다.
문재인은 한맺힌 억울함을 호소한 이대준의 아들이 보낸 편지에 대한 답장에서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며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진행하고 진실을 밝혀낼 수 있도록 내가 직접 챙기겠다고 약속드린다"고 썼다. 그러나 문재인은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진상 규명에 역행하는 일련의 조치를 통해 이대준의 가족이 느껴온 고통을 가중시켰다.
이대준의 아들은 새 대통령 윤석열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간 겪어야 했던 고통을 털어놓았다. 그는 "아버지를 월북자로 만들어 죽음의 책임이 정부에 있지 않다는 말로 무참히 짓밟았고, '직접 챙기겠다' '늘 함께하겠다'는 거짓 편지 한 장 손에 쥐여주고 남겨진 가족까지 벼랑 끝으로 내몬 것이 전 정부였다"며 "아버지의 월북 낙인을 주변에서 알게 될까 봐 아무 일 없는 평범한 가정인 척 그렇게 살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젠 야당이 된 민주당의 반응은 냉혹했다. 공세를 퍼붓는 국민의힘과는 어떤 이전투구를 벌이더라도 이대준 가족의 고통을 외면한 것에 대해선 사과부터 하는 게 인간의 도리였건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오히려 운동권 출신 의원들이 나서서 '먹고사는 문제'의 시급성을 강조하면서 이게 현안이 되는 것에 대해 강한 적개심마저 드러냈다.
해괴하거니와 무서운 일이었다. 매카시즘의 피해자였던 사람들이 권력을 갖자 권력의 영광을 위해 "대(大)를 위해 소(小)는 희생해도 된다"는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을 실천함으로써 매카시즘을 부활시키다니, 이건 니체가 경고한 비극이 아니었던가.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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