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청소년 돕는 마중물이지만.. '학교전담경찰관' 1명이 5000명 살펴야

최효정 기자 2022. 7. 1.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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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마약·사이버 폭력까지 다루지만 인력은 태부족
윤석열 대통령, SPO 1명이 학교 2곳 관리하게 증원 공약

“박카스 ㄱㄱ?”

지난 3월 서울 금천경찰서 소속 이백형 SPO(학교전담경찰관)팀장은 요즘 명품을 소지한 중고등학생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담당 학교 10대들의 소셜미디어(SNS)를 염탐하던 중 이상한 낌새를 감지했다. A군이 SNS에 명품 지갑 등을 잔뜩 자랑하면서 또래들과 ‘박카스 마시자’는 표현을 빈번히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를 수상하게 여긴 이 팀장은 박카스가 온라인 도박 ‘바카라’ 게임을 뜻하는 은어라는 사실을 알아냈고, 수사에 나섰다.

상황은 이 팀장의 예상보다 더 심각했다. 이미 온라인 도박에 깊게 빠진 학생들은 빚도 지고 있었다. ‘10초만에 두 배를 딸 수 있다’는 자극성에 처음엔 3명이었던 ‘도박서클’은 17명까지 늘어나 있었다. 도박 자금 마련을 위해 다른 학생들에게 휴대폰이나 금품을 갈취하고, 무인점포에 침입해 절도극까지 벌이는 상황이었다. 모텔에서 혼숙을 할 정도로 도박에 빠져있어, 연루된 학생들 중 상당수가 가출 신고도 접수된 상태였다.

'도박서클' 멤버였던 청소년이 소년원에서 이백형SPO에게 보낸 편지(왼쪽)와 이백형 SPO(오른쪽)./김민소 기자

이 팀장을 필두로 한 SPO들은 금천구의 한 모텔에서 이들의 혼숙 현장을 적발하고 계도에 나섰다. 소년원에 송치된 학생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편지를 보내거나 접견을 가서 도박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움을 줬다. A군 등 학생들이 도박을 끊게 하기 위해 매일 30분씩 전화 통화를 하고, 매주 두 차례씩 직접 만나 진로 탐색을 도왔다. A군은 현재 도박을 끊고 내년 4월에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 2012년 학교폭력 예방대책 일환으로 도입된 SPO가 10년을 맞았다. SPO는 1인당 10개교 내외를 담당하는데 학교폭력 가해학생이나 문제학생 등을 선도하고 피해학생을 보호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단순 처벌이 아닌 보호와 지원에 방점이 찍혔다. SPO들이 학생들과 직접 소통하며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어 학생들을 선도하는 데 매우 효과가 있다는 것이 경찰 내부와 교육계의 평가다.

이 팀장은 “SPO의 역할은 학생들을 선도하고 보호하는 것”이라며 “부모, 선생님과는 소통하지 못해 비행에 빠지는 경우가 많은데, SPO들은 그들에게 ‘SNS 친구 맺기’처럼 작은 정성이라도 들여 지속적으로 소통하고자 한다”고 했다. 이어 “문제 청소년을 한 번 훈계하는데 그치지 않고, 성인기까지 지속적으로 보호와 지원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학생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기존에는 문제 행동에 대한 학교 측 대응이 일회적인 처벌이나 응징의 형식을 띠고 있어 이를 피하기 위해 문제 사실을 지속해서 은폐하거나 가출 등의 더 큰 반항으로 이어졌다면, 어른들이 지속적인 관심과 소통으로 자신을 이해하려고 시도한 것은 처음이라는 것이다.

A군은 “형사(이 팀장)님과 매일 카톡과 연락을 나누면서 도박 생각을 떨칠 수 있게 됐다”며 “카페 다니는 걸 좋아해서 바리스타 자격증을 준비해볼까 생각 중”이라고 했다. A군은 내년 4월에 있을 검정고시를 치를 예정이라며, 이 팀장과는 그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지난해 아동복지시설에서 나와 자살 시도를 한 B군도 서울 영등포경찰서 양병윤 SPO의 도움으로 자립 준비를 시작했다. 보호자가 없는 B군은 지난해 인천에 있는 한 복지센터에 입소했지만, 적응을 하지 못하고 시설을 빠져나왔고, 사기 혐의로 경찰서를 드나들었다. 삶의 의지를 잃은 B군은 투신 자살을 하기 위해 반포대교까지 찾았지만, 양 경사가 SNS로 B군을 설득하면서 새로운 삶의 희망을 꾸고 있다. 양 경사는 그날 이후 B군과 지속적인 만남과 연락을 하며 자립을 돕고 있다.

양 경사는 “물을 끌어올릴 때도 마중물이 필요하듯이, 위기청소년들도 본인의 장점을 끌어올리려면 마중물 같은 최소한의 보호가 필요하다”며 “SPO들이 위기청소년에게 마중물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SPO의 청소년 보호·지원 활동은 학교 안팎을 가리지 않는다. 범죄가 일어나는 장소가 ‘학교 안’으로 국한되지 않기 때문이다. 관련 통계에 따르면 작년 학교폭력이 가장 많이 발생한 공간은 온라인 공간(19.8%) 이었다. 폭력뿐 아니라 마약, 도박이나 조건만남, 자살시도 등 문제의 양상도 다양하다. SPO가 청소년 보호를 위해 가야 할 방향도 문제 양상에 맞춰 다양하다. 경찰은 추후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나 도박문제관리센터 등 기관과의 연계를 통한 보호 활동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학교와 경찰 등 현장에서는 청소년 보호를 위한 SPO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인원에 비해 너무 많은 학교를 맡아야 해 세심한 보호나 지원이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지난해 기준 서울시내 SPO는 총 131명으로, 서울시내 1407개의 초중고교를 한 명당 10.7개교씩 맡고 있는 셈이다. 학생 수로 따지면, SPO 한 명당 학생 5000명에서 5500명을 담당하고 있다. 학생 1명을 계도하기 위해서는 최소 20회의 면담이 필요한데,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구조다.

하동진 서울시경찰청 아동청소년 계장은 “현재 SPO 1인당 담당하는 학교가 열 개가 넘고 학생들도 몇 천 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위기청소년들을 보호하고 맞춤형 SPO를 배치하려면 SPO 증원이 필요한 상황”이라면서 “우리 사회 안전을 위해선 청소년을 한 명이라도 성인 범죄자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선 위기청소년을 한 명이라도 더 보호하고 도울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SPO(학교전담경찰관) 1명이 학교 2곳을 관리할 수 있는 수준으로 증원한다는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경찰은 향후 5년간 관련 경찰 인력을 6000명으로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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