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삼이'는 서식지 탐색 중.."제 삶 사는 곰, 너무 미워 말아요"

김지숙 2022. 7. 1.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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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방랑 반달곰 '오삼이' 추적기
4번째 탐방에 나선 반달곰 KM-53 보은까지 진출
"서식지 확대 반갑지만 야생성 잃을까 조마조마"
‘오삼이’라는 별명으로 많이 알려진 반달곰 KM-53은 특유의 개척 성향으로 유명하다. 오삼이는 서식지를 탐색하며 농작물에 피해를 입히거나 사고를 당하기도 했지만, 반달곰 복원사업의 전환점을 만들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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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곰이 살만한 곳이었다. 충북 영동읍에서도 35㎞를 더 달려 영동군 상촌면 물한계곡에 이르러서야 국립공원공단 차량이 멈춰섰다. 더 이상 도로가 없는 계곡 끝 주차장에 다다르자 ‘반달곰 현장대응팀’ 직원들이 살만 남은 우산처럼 생긴 전파 수신기를 민주지산 방향으로 조정하고 위치를 확인했다. “오삼이는 지금 5㎞ 반경 안에 있네요.”

지리산을 벗어난 ‘콜롬버스 곰’

지난 28일 오후2시 지난달 초부터 지리산 반달곰 케이엠(KM)-53을 쫓고 있는 국립공원연구원 현장대응팀을 충북 영동군에서 만났다. 직원 4명은 물한계곡 주차장에 이르자 각기 수신기를 들고, 곰의 위치를 확인했다. “한낮엔 곰이 쉬고 있을 거예요.” 국립공원연구원 남부보전센터 양두하 센터장의 말처럼 케이엠-53의 좌표엔 큰 변화가 없었다.

지난28일 충북 영동군 상촌면 물한계곡에서 국립공원연구원 현장대응팀 직원이 KM-53의 위치를 측정하기 위해 수신기를 조작하고 있다. 김지숙 기자

케이엠-53, 이 곰은 흔히 오삼이라고 불린다. 환경부의 지리산 반달곰 복원사업을 통해 태어난 쉰세 번째 한국(Korean) 수컷(Male) 곰이라 정식 이름은 케이엠-53이지만 특유의 방랑가 기질로 여러 별명을 얻었다. 오삼이는 두 번째 ‘고향’이 된 경북 김천에서 지어준 별명이다. 서식지를 개척하는 그를 언론에서는 ‘콜롬버스 곰’이라고도 부른다.

2015년 태어난 오삼이는 3살이 되던 2017년 6월 지리산에서 100㎞나 떨어진 경북 김천 수도산에서 발견됐다. 국립공원공단은 서식지 안정과 주민 안전 등을 고려해 오삼이를 포획해 지리산으로 옮겼으나, 곰은 교통사고를 당하면서까지 두 차례나 수도산으로 돌아갔다.

2019년 세 번째 방사때부터 공단은 아예 오삼이를 수도산으로 돌려보냈다. 그 후 몇 년간 오삼이는 수도산과 가야산, 덕유산, 민주지산 등을 중심으로 활동해왔다. 그러던 중 지난 5월 말 오삼이가 기존 활동영역보다 북쪽인 충북 보은에서 발견됐다. 보은으로 가는 길에 경북 상주 백화산에서도 목격됐는데, 이곳에서 발견됐다는 것은 곰이 경부고속도로도 지났다는 뜻이어서 또 한 번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인간도 곰따라 24시간 추적 근무

곰이 백두대간을 타고 백여 킬로를 이동하는 동안 공단 현장대응팀에는 비상이 걸렸다. 오삼이가 보은에서 발견된 5월 말부터 직원들은 곰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며 24시간 교대 근무에 들어갔다. 곰의 이동시간인 해뜰 무렵과 질 무렵, 밤에는 곰을 쫓고 낮에는 지역 주민과 지자체 공존협의회체를 만나 주의사항을 전달하고 대응 방안 등을 논의했다.

반달곰 KM-53의 이동 경로. KM-53은 지난 5월27일 평소 활동권역인 수도산, 가야산, 덕유산에서 벗어나 충북 보은에서 발견됐다. 이후 6월27일부터는 다시 충북 영동 민주지산 인근에서 활동하고 있다. 환경부 제공

오삼이에게는 귀와 목에 발신기가 부착되어 있다. 귀 발신기는 초단파(VHF)로 곰의 위치를 전송한다. 현장대응팀은 이 신호의 각도와 방향을 기록한 뒤, 다시 근처로 이동해 더 정확한 곰의 위치를 파악한다. 수신기가 신호를 받기는 하지만, 정확한 좌표를 보내는 것은 아니어서 일일이 삼각 측정으로 위치를 기록해야 한다. “영화에서 보는 것 같이 실시간 이동을 화면으로 확인하는 시스템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양 센터장 설명이다.

“곰이 야간에 이동할 때는 별 수없이 계속 따라가야 되거든요. 그러다 보니 의도치 않게 한 번은 한밤 중에 사유지에 들어갔었나 봐요. 주인이 경찰에 신고를 해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죠.” 정우진 광역대응팀장이 멋쩍게 웃으면서 “오삼이가 애물단지”라고 했다. 다행히 3-4주간 보은에 머물던 곰은 6월23일 옥천으로 이동했고, 그 주 주말 오삼이도 현장대응팀도 익숙한 지역인 영동 민주지산으로 자리를 옮겼다.

6월28일 충북 영동군 물한계곡에서 국립공원연구원 남부보전센터 양두하 센터장이 KM-53의 활동영역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지숙 기자

이날은 이틀째 이동이 없는 오삼이를 따라 현장대응팀도 물한계곡으로 출근한 것이다. 곰의 위치를 확인한 양 센터장과 직원들이 마을 주민들을 만나러 동네로 들어섰다. 정 팀장이 전날 밭 가장자리에 전기 울타리를 설치해줬다는 마을 주민의 집으로 안내했다.

계곡 바로 곁에서 펜션을 운영하는 주민 홍석도(68살)씨는 익숙한 듯 공단 직원들을 맞았다. ‘곰 취재’를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자 홍씨는 오삼이 목격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지난 4월에도 왔었어. 우리 동네서 벌통 6개를 건드렸다고 하더라고. 어느 날 저기 보니까 한 50m쯤 떨어진 데 곰이 있는 거야. 벌통을 옆구리에 끼고서 두 발로 도망가더라고.”

반달곰 사업을 진척시킨 ‘벌통 도둑’

오삼이의 ‘말썽 에피소드’가 나오자 양 센터장의 얼굴에 긴장감이 스쳤다. 국립공원공단은 반달곰이 농가에 입히는 피해를 보상하고는 있지만, 최근 반달곰의 서식지가 넓어지고 새 영역을 개척하면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간 오삼이가 친 사고는 초코파이를 훔쳐먹거나 벌통을 헤집는 것, 도로를 건너다 차에 치인 것 정도다. 사람을 공격하거나 농가에 심각한 피해를 준 것은 없다.

경북 김천의 대표 캐릭터인 반달곰 ‘오삼이’가 2018년 야생으로 풀려나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제공

양 센터장은 오삼이가 자꾸 사람 눈에 띄는 것이 걱정이라고 했다. 그는 “가장 염려되는 게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잃는 거다. 곰들 입장에서는 정상적인 먹이 활동을 하는 거지만 자꾸 사람과 접촉하고 익숙해지면 야생성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전날 공단 직원들이 밭 테두리에 친 전기 울타리는 그런 불상사를 방지하는 하나의 장치였다. 양 센터장 설명에 따르면, 전기 울타리는 벌통을 노리고 들어온 오삼이의 콧잔등에 야구 망방이로 뒤통수를 가격하는 정도의 충격을 선사할 수 있다. “기억력은 좋아서 한 번 혼난 곳은 또 잘 안와요.”

자잘한 사고가 있긴 하지만 이러한 오삼이의 개척 성향은 반달곰 복원사업을 한 단계 진척시키는 전환을 불러왔다. 최근 환경부는 제2차 반달가슴곰 복원 로드맵(2021~2030)을 기존에 개체를 불리는 ‘종 중심 야생 복원’에서 반달곰이 주변 생태계에서 번성하도록 돕는 ‘서식지 관리’ 방식으로 재설정했다. 현재 야생에 사는 반달곰이 79마리에 이르고 지리산을 벗어나 활동하는 곰이 4마리에 이르는 걸 감안하면 자연스러운 방향이다.

‘오삼이’라는 별명으로 많이 알려진 반달곰 KM-53은 특유의 개척 성향으로 유명하다. 2014년 지리산에 방사된 뒤 오삼이는 2017년 경북 김천 수도산에서 발견됐고, 지리산으로 옮겨놓아도 다시 수도산으로 돌아갔다. 오삼이는 지난 5월말 다시 충북 보은까지 영역을 넓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사진은 2017년 KM-53 모습. 국립공원공단 제공

“곰은 원래 백두대간 주민이었다”

문제는 지역 주민과의 마찰이나 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다. “고라니도 멧돼지도 곰도 모두 야생동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멧돼지를 봤다고 해서 ‘왜 멧돼지가 저기 있지’ 하진 않잖아요.” 양 센터장은 곰이 받는 오해를 안타까워했다. 흔히 없던 곰을 정부가 지리산에 방사했다는 오해도 해명했다. “복원사업 전인 1990년대 말에도 지리산에 4~5마리의 곰이 살았어요. 가만 두면 멸종할 수 있으니 개체를 강화해준 거죠.”

그리고 복원사업 18년 만에 반달곰은 최소 존속 개체군인 50마리를 넘어 해외에서도 인정하는 우수한 종 복원 사례가 됐다. 그럼 이제 반달곰 복원사업은 끝난 걸까? 양 센터장은 이제 번성한 개체가 제대로 살 수 있도록 서식지를 다양하게 조성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그는 ‘주민과의 공존’을 꼽았다.

“곰은 원래 디엠지(DMZ)부터 지리산까지 백두대간 전역에 살았습니다. 일제와 6·25전쟁, 인간의 개발로 사라진 거죠. 어쩌면 우리가 곰들의 영역을 조금씩 빼앗은 걸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어디선가 곰을 만나더라도 조금만 미워해주시면 안 될까요?”

영동/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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