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대법, 이번엔 '온실가스 규제' 제동
석탄화력발전소 규제 권한 제한
백악관 "퇴행·파괴적 결정" 반발
기후변화 대응노력 타격 불가피
유엔도 인류 공동목표 훼손 우려
보수 절대우위의 대법관 구성 탓
대법원장 '균형추 역할'도 흔들
‘보수 절대 우위’로 재편된 후 낙태 권리 공식 폐기 등 보수적인 판결을 잇따라 내놓고 있는 미국의 최고 사법기관 연방 대법원이 이번에는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포괄적인 온실가스 규제에 제동을 걸며 기후 변화 대응에도 어깃장을 놨다.
노골적인 ‘우(右)클릭’ 행보가 이어지면서 사회적 ‘균형추’로서 역할을 하던 대법원이 사회적 갈등을 키우는 원인이 되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 연방 대법원은 30일(현지시간) 6대 3으로 미국 환경청이 대기오염방지법을 토대로 석탄 화력발전소의 온실가스 방출을 광범위하게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 것은 아니라고 판결했다.
존 로버츠 대법관은 판결문에서 “전국적으로 전기 생산에 석탄이 사용되지 않을 정도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제한하는 것은 현재 (기후 변화) 위기에 대한 현명한 해결책일 수는 있다”면서도 “그 정도의 규모와 파급력이 있는 결정은 (행정부가 아니라) 의회가 하거나 의회의 명확인 임무를 받은 기관이 해야 한다”고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탄소 배출량 규제 자체가 아니라 행정기관의 과잉 행정이 문제라는 점을 명시한 것이다. 이에 따라 2030년까지 전국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절반으로 줄이는 바이든 대통령의 목표도 큰 타격을 받게 됐다. 전체 이산화탄소 발생량의 30%는 발전소에서 나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대법원의 판결에 즉각 반발했다. 그는 “대법원의 오늘 결정은 깨끗한 공기를 마실 권리를 박탈하려는 이해관계자들을 지지하는 것”이라며 “기후 위기가 내포하고 있는 공중 보건과 생존에 대한 실존적 위협을 무시할 수 없는 만큼 서둘러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악관도 대변인 성명을 통해 “우리나라를 퇴행시키려는 파괴적인 결정”이라면서 “이번 결정은 공기를 깨끗하게 유지하고 기후 변화에 대응하려는 정부의 노력을 훼손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낸시 펠로시 미 하원의장도 “이번 결정은 공화당이 임명한 (보수 성향의) 대법관들이 미국 국민의 건강과 자유, 안보를 파괴하려는 노력의 결과”라며 “불과 2주 만에 대법원은 (낙태권 금지를 통해) 보건의 자유를 지웠고 공공장소에 더 치명적인 무기가 넘쳐나게 했으며, 이제 지구를 불태우는 조치까지 취했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글로벌 기후 변화 대응을 주도하고 있는 유엔 역시 대법원의 결정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았다.
스테판 두자릭 유엔 사무총장 대변인은 “기후 변화와 같은 전 세계적 대응을 필요로 하는 사안에 대해 단일 국가의 행동이 공동의 목표를 훼손해선 안된다”며 “파리기후협정에 근간을 둔 기후 변화 대응에 있어 엄청난 후퇴”라고 평가했다.
바이든 행정부의 환경 정책에 반대해 온 보수 진영에선 환영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연방 정부와 행정 기관들의 과잉 규제에 대항한 ‘큰 승리’라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최근 잇따라 보수적 판결을 내놓고 있는 대법원의 일련의 움직임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지난달 24일 대법원은 임신 6개월 이전까지 여성의 낙태를 합법화한 이른바 ‘로 대(對) 웨이드’ 판결을 공식 폐기했다.
또 27일에는 고등학교 스포츠 경기 뒤에 공개적으로 기도하는 것은 종교의 자유에 속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앞서 22일 종교색을 띤 학교를 수업료 지원 프로그램에서 배제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밝혔다. 기존 미국의 기존 정교분리 관행을 벗어난 두 판결 모두 ‘6 대 3’으로 결정됐다.
이 같은 결과가 나온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진보의 아이콘이었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전 대법관의 후임으로 퇴임을 4개월 앞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보수 성향의 에이미 코니 배럿을 앉힌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고 평가한다.
이에 따라 로버츠 대법관의 이른바 ‘캐스팅 보트’ 역할도 사실상 어렵게 됐다. 로버츠 대법관은 보수 성향이지만 그동안 민감한 이슈에 대해서는 나름 균형추 역할을 하려고 노력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보수 6 대 진보 3으로 보수가 절대 우위가 되면서 그 공간이 사라진 것이다. 신동윤 기자
realbighead@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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