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어망, 곳곳에 무덤처럼..마대 터지고 일반 쓰레기와 뒤엉켜 [2022 연중기획 지구 무죄 인간 유죄 ⑦바닷가 도살자, 이대론 안된다]

입력 2022. 7. 1.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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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된 골칫거리' 어촌 가보니..
물량장 20~30m 간격 '초록색 무덤'
구청 보내주는 5t 트럭 한달 한번뿐
제때 수거하기엔 예산 부족 감당안돼
어민들 배출 부담..여름엔 벌레 날려
일부 바다로..어선 프로펠러 감기기도
지난달 29일 오전 부산 사하구 다대포항 물량장에 바다에서 인양된 각종 해양 쓰레기가 널브러져 있다.(위쪽) 한 어민이 지난달 29일 오전 부산 사하구 다대포항 물량장에서 폐그물의 로프와 납을 분리하고 있다. 폐어망을 재활용하려면 로프와 납을 분리한 뒤 어망만 따로 모아야 하는데, 이 작업이 번거로워 선주들은 따로 인력을 고용해 작업을 맡기고 있는 실정이다. 시너지영상팀

“따로 모아두긴 하는데 빨리빨리 수거가 안 되니까.... 자루 밖으로 폐어망이 터져 나와 바다로 줄줄 흘러들 정도예요.”(선대숙 부산 다대어촌계 간사)

지난달 29일 오전 부산 사하구 다대포항. 어판장 뒤편 물량장엔 무릎 높이의 ‘초록색 무덤’이 20~30m 간격마다 자리 잡고 있었다. 고기잡이에 사용된 뒤 버려진 그물, 바로 폐어망이다.

다대포항은 수산업협동조합(수협)의 어촌계원으로 등록된 인원만 210여명에 달하는 부산의 대표 어항이다. 어업이 활발한 만큼 폐어구도 많이 배출된다. 실제 현장엔 재활용을 위해 폐어망만 따로 배출하는 장소가 3곳 지정돼 있었다. 이곳에 쌓인 마대자루는 족히 200개 가량 돼 보였다.

문제는 수거다. 이렇게 쌓아둬도 수거가 제때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어민들은 입을 모았다. 중국, 동남아시아 등으로 폐기물을 수출하던 과거엔 지역 폐기물 업체들이 폐어망을 수거해 가기도 했다. 하지만, 폐기물 불법 수출 단속이 심해지면서 근래엔 자취를 감췄다. 구청이 폐기물 업체와 계약해 5t 트럭을 보내주지만, 한 달에 한 번 수준에 그치고 있다. 최철이 전국연안어업인연합회 부산본부장은 “요즘엔 쓰레기를 가져가는 게 구청 뿐인데, 그마저도 예산이 없어 못 치워주겠다고 한다”며 “어민들도 직접 수거 비용을 내야 한다는데, 그렇게 되면 요새 기름값 부담도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서 누가 어망을 육지까지 가지고 나오겠느냐”고 토로했다.

쓰레기가 제때 수거되지 않다보니 점차 폐어망 외에 일반 생활 쓰레기까지 더해진다. 그럼 또 추가로 관리 인력이 필요한데 이는 더 많은 예산을 요한다. 결국 폐어망만 모였던 곳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쓰레기 더미로 변한다. 공유지의 비극이다.

선대숙 다대어촌계 간사는 “각종 쓰레기가 쌓이니 생선 비린내는 물론 벌레까지 꼬인다. 해결이 안 되니 집하장 인근의 한 식당은 어쩔 수 없이 직접 해충제를 사다 뿌릴 정도”라며 “여름에만이라도 자주 치워졌으면 하는 게 주민, 어민들의 바람”이라고 전했다.

그래도 이곳은 분리배출 장소라도 확보된 어항이다. 국내 어항 중에선 그나마 이곳이 체계라도 갖춘 편이라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상당수 어항은 폐어망만 따로 모을 시도조차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폐어망은 재활용할 수 있는 소재다. 하지만, 분리배출 작업이 번거롭다. 어망은 플라스틱 소재로 만들어진 그물 뿐만 아니라 이를 지지하는 로프, 납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를 재활용하려면 칼과 가위로 해체해 그물만 따로 배출해야 한다. 시간도 많이 소요되니 선주들은 별도로 인력을 고용해 비용을 지불하며 작업을 맡기곤 한다.

선 간사는 “로프와 납이 비싸기 때문에 이를 재활용하려면 어망을 따로 분리하게 된다. 폐어망이 모일 수 있는 이유”라고 전했다. 물론 그마저도 어업 형태에 따라 온도 차가 있다. 그나마 육지와 가까운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소형 어선들은 폐어망을 육지까지 갖고 나오기 쉽다. 하지만 길게는 한 달 이상 바다에 나가는 근해 어업인들은 배 위에서 쓰레기를 해체하고 보관하는 게 쉽지 않다. 그대로 바다에 버리기 일쑤다. 어망을 비롯한 폐어구는 한 해에만 4만t 가까이 바다에 버려진다. 한국해양환경공단이 제3차 해양쓰레기 관리 기본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지난 2018년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당해 폐어구 유실량은 3만8105t에 달했다. 당해 전국 해양 쓰레기(초목류 제외)의 45.3%에 이른다.

다대어촌계 계원인 박학일(64)씨는 “그물들이 바다에 버려져 돌에 끼어있다 보니 프로펠러가 걸려 사고도 자주 난다”고 했다.

정부 차원의 노력이 없는 건 아니다. 해안에 밀려온 쓰레기는 각 지방자치단체가 맡고, 바다 위에 떠다니거나 가라앉은 쓰레기는 해양환경공단 및 어촌어항공단이 담당한다. 정부 및 관계기관이 해양 쓰레기 수거에 투입한 예산은 2020년 기준 917억원에 달했다. 지난 2018년 762억원에서 2년 새 150억원 이상 늘었다.

민간 차원에서도 관심이 커지고 있다. 수협은 지자체와 별개로 조업중 인양 쓰레기 수매 사업을 추진하고, 주요 어항에 해양 쓰레기 집하장 설치를 지원 중이다. 대기업도 폐어망 재활용 소재를 제조 과정에 활용하고 있으며, 일부 재활용업체는 직접 어항에 마대를 배포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일선 현장에선 어려움이 많다. 예산이나 제도 개선, 인식 전환 등 하루아침에 해결될 수 없는 과제들이기 때문이다. 선 간사는 “해양쓰레기 수매 사업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현장에선 사업이 중단될 정도로 예산이 부족하다”며 “재활용이 잘 되게끔 분리배출하려면 오히려 어민들이 비용을 들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상수·최준선 기자

hum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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