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몽룡이 춘향 보려 넘어간 남태령..옛이야기 닮은 고갯길을 걷다

한겨레 2022. 7. 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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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53)
옛 고갯길의 숲 : 버티고개, 남태령, 사당이고개의 숲

버티고개, 남태령, 사당이고개…. 옛이야기 전해지는 서울의 고갯길을 다녀왔다. 숲속 고개는 지금은 차들이 질주하는 도로가 됐지만 옛 고갯길에 전해지는 이야기를 품은 숲이 고개마다 남아 있어서 다행이었다. 고개 하나에 이야기 하나, 옛날얘기 닮은 숲길을 걸으며….

매봉산 정상에 있는 정자.

매봉산과 남산을 잇던 버티고개

421번 시내버스 노선 옥수동 종점 정류장은 매봉산 정상 팔각정으로 올라가는 출발 지점이다. 매봉산공원 이정표를 따른다. 동네 뒷동산이라도 여름 숲은 깊다. 지난봄 화사한 꽃을 피웠을 산벚나무, 살구나무도 초록이 진하다. 운동기구가 설치된 작은 마당에서 남산이 빼꼼 보인다. 지금 걷는 매봉산과 남산은 한 줄기였다. 도로가 생기면서 숲이 끊어졌다.

매봉산 숲속 황톳길이 붉다. 맨발로 황토를 밟으며 걸으라고 일부러 만든 것이다. 부드러운 황톳길처럼 낮은 산은 오르막 계단길도 유순하다. 가을이면 단풍 물들 단풍나무 잎과 복자기나무 잎도 푸르다. 어느새 꼭대기 팔각정이다.

매봉산은 옛날에 매사냥하던 곳이다. 해발 175m 산꼭대기에 세운 정자에 오르면 경기도 예봉산, 검단산, 남한산, 청계산까지 보인다. 서울숲, 압구정 아파트 단지, 동호대교를 아우르는, 옛날부터 동호라고 불리던 한강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자에서 내려와 남산 방향 이정표를 따라간다. 2000년대 초반에 63명의 시민이 추억을 담아 심은 나무 93그루가 자라고 있는 숲길을 지난다. 누군가 커다란 돌무지를 만들었다. 옛날에 이 길을 걷던 사람들도 그랬을 것 같았다. 숲길에서 남산이 보인다. 숲속 정자를 지나 서울숲·남산길 남산 방향 이정표를 따른다. 남산에 다가갈수록 숲에 소나무가 많아진다.

다산로 때문에 끊어진 매봉산 숲을 잇는 버티고개 생태통로.

도로가 생기면서 끊어진 남산과 매봉산 줄기를 잇는 버티고개 생태통로를 지나 숲 밖으로 나오면 다산로, 장충단로, 한남대로가 만나는 넓은 교차로가 나온다. 옛날에도 이곳은 세 개의 고갯길이 만나는 숲속 교차로였다. 지금의 중구 약수동과 신당동, 장충동, 용산구 한남동으로 넘나들던 세 개의 고갯길이 남산과 매봉산을 잇는 산줄기 고갯마루에서 만났다. 그 일대 고갯길을 아울러 버티고개라고 했다.

버티고개의 ‘버티’는 조선시대 순찰을 돌던 순라군들이 ‘번도’라고 외치며 도둑을 쫓았던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번도’가 ‘번티’ ‘버티’로 변했다고 전해진다.

옛 버티고개 고갯마루에서 장충동으로 넘어가는 길을 지금은 장충단로라고 부른다. 그 길은 남산 국립극장 앞으로 이어진다.

그 길 고갯마루 부근에 조선시대 한양도성 남소문 터 푯돌이 있다. 세조 임금 때 남소문을 세웠지만 예종 원년인 1469년에 풍수지리적으로 좋지 않다고 해서 건물을 철거했다. 주춧돌은 일제강점기 때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춘양전의 이몽룡이 넘었다던 남태령, 남태령 옛길을 서성이다

서울시 서초구 방배동과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의 경계 중 한 곳이 남태령 고갯마루다. 남태령은 관악산과 우면산 사이에 난 고갯길로 옛날에 한양과 충청, 전라, 경상도를 잇던 큰 고개였다.

남쪽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과천을 통과하며 남태령을 넘어서 지금의 사당동, 동작동, 흑석동을 지났다. 한강을 만나면 동재기나루 또는 노들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양으로 향했다고 한다.

지금 남태령고개는 차들이 질주하는 넓은 도로다. 그 한쪽에 남태령 옛길을 알리는 푯돌이 있고 푯돌 주변에 옛 남태령고개를 재현한 200m 조금 넘는 짧은 숲길이 있다.(남태령 옛길은 경기도 과천시 과천동이다. 남태령 옛길을 재현한 숲길 북쪽 끝에서 이어지는 남태령고개의 차도 고갯마루가 서울시와 경기도의 경계다.)

남태령 옛길 푯돌. 이 부근에 옛 남태령길을 재현한 짧은 숲길이 있다.

남태령 옛길 푯돌 부근 계단으로 내려서면서 그 길은 시작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숲길은 도로와 만난다. 그곳에서 다시 왔던 길을 되짚어 옛 남태령 고갯길을 올라가듯 걷는다. 길 왼쪽에 마른 계곡이 있다. 한 그루 단풍나무에도 햇볕 드는 양지가 있고 그렇지 않은 곳이 있다. 햇볕에 반짝이는 단풍나무 잎 아래 개망초꽃이 피었다. 오래전 옛날에도 한양을 오가는 이 길에 꽃은 피어 있었을 것이다.

남태령에 얽힌 옛이야기 중 하나. 서초구 자료에 따르면 조선시대 정조 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능을 오갈 때 남태령에서 쉰 적이 있었다. 정조 임금은 고개 이름을 물었고, 인근 마을 사람은 원래 이름인 여우고개라고 대답하지 않고 한양의 남쪽에 있는 큰 고개라는 생각에 남태령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고개 하나 넘으면 얘기 하나 쫓아온다
순라군 순찰 소리에서 나온 버티고개
몽룡이가 춘향 보려 서둘렀을 남태령
가만 보면, 숲길은 모두 옛얘기 닮았다

작가와 연대를 알 수 없는 춘향전에도 남태령이 나온다. 한양에서 남원으로 내려가던 이몽룡이 동재기나루(지금의 동작역 부근으로 추정)를 건너 남태령을 넘었다고 한다.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가는 정조 임금과 춘향이를 만날 생각에 들뜬 이몽룡의 마음을 생각하며 짧은 숲길을 다시 서성거렸다.

옛 사당이고개에 올라 서달산 서편 피톤치드 숲길을 걷다

현재 동작구 상도동 숭실대와 사당동 총신대를 넘나드는 고개를 옛날에는 사당이고개라 했다. 고갯마루 부근에 큰 사당이 있다고 붙은 이름이다.

숭실대 레지던스홀 부근에 미륵암이 있다. 미륵암과 숭실대 일대에 옛날에는 나무시장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먹고살 것 없는 사람들이 새벽 댓바람에 나무를 팔러 모이면서 나무시장이 생긴 것으로 보고 있다. 주로 장작과 소나무의 잔가지인 솔가리 등을 팔았다고 한다. 나무를 다 판 사람들은 다시 나무하러 가곤 했다. 매일 그렇게 일해야 했던 그들이 넘던 고개가 사당이고개였다.

미륵암 느티나무 고목.

사당이 고개에 있었다던 큰 사당, 사당이 고개를 넘어 장작을 팔러 다녔던 나무꾼들을 다 보았을 260년 넘은 느티나무 고목 한 그루가 미륵암 담장 안에 있다.

서달산 남서쪽 사당로에 놓인 생태통로는 도로가 생기면서 끊어진 서달산과 서달산 남쪽 까치산을 연결하는 다리이기도 하다. 서달산과 까치산 사이 사당로가 옛 사당이고개였고, 생태통로는 그 길 위에 놓인 것이다.

미륵암 느티나무 고목을 보고 사당로를 건너 성현중학교 옹벽 아래 도로를 따라 오르막길로 가다보면 생태통로가 나온다. 생태통로를 건너면서 사당이고개를 바라본다. 멀리 관악산 줄기가 보인다.

서달산 피톤치드 숲길.

생태통로를 건너면 서달산 남서쪽 산책로를 만난다. 가파른 나무 계단에 다 올라서서 현충원 상도출입문, 동작역 등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따른다. 이내 숲길은 또 갈라진다. 그곳 이정표에서 노들나루공원, 동작대를 가리키는 쪽으로 걷는다.

내리막 계단을 다 내려서서 돌무지 두 개가 지키고 있는 곳을 지난다. 서달산 정상 동작대로 가는 이정표를 무시하고 가던 방향으로 가다보면 데크길을 만난다. 서달산 서편 숲길을 걷는 것이다. 데크길 옆에 데크로 만든 쉼터도 있다. 소나무 등 침엽수가 군락을 이룬 산림욕장이다. 이정표에는 피톤치드숲이라고 적혀 있다. 짧은 피톤치드숲을 지나면 상도동과 흑석동을 잇는 서달로가 나온다. 서달로가 끊어놓은 서달산 숲을 잇는 생태통로에서 걸음을 멈췄다. 숲은 생태통로를 지나 북쪽으로 뻗어 옛 노들나루가 있었던 노들나루공원으로 이어진다. 노들나루공원 동쪽에 있는 용양봉저정공원은 지난해 한가위 보름달을 보던 곳이다. 해가 진 뒤 그곳에 올라 밤의 숲길을 거닐었다. 한강 북쪽 풍경이 보이는 전망대 야경은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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