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억 썼는데 재공모하라니".. 대장동방지법 시행에 개발업계 '당혹'

최온정 기자 2022. 7. 1.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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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도시개발사업의 절차적 투명성을 확보하고 민간참여자의 이익을 제한하는 것을 골자로 한 시행령 개정안을 시행했다. 대장동 사업에서 처럼 민간이 너무 큰 이익을 가져가는 것을 방지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일명 ‘대장동 방지법’이다.

그러나 이미 민간사업자를 선정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경우에도 조건에 맞지 않으면 공모를 다시 하게 하는 등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는 바람에 부동산 개발 업계에서는 불만이 속출하고 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달 22일 도시개발법 개정안을 시행했다. 지난해 9월 성남시 대장동 로비·특혜 의혹 사건이 발생한 직후 민·관 공동 도시개발사업에 참여한 민간참여자의 이익에 대한 별도 규정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 지 9개월 만이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대장동 아파트 단지의 모습. /뉴스1

개정안은 ▲민간의 개발이익 환수 강화 ▲민·관 공동 도시개발사업 전반의 공공성 강화 ▲도시개발사업 관리·감독 및 지원 강화 등을 골자로 한다. 개정안은 민간의 개발이윤율을 총사업비의 10% 이내로 낮추도록 했다. 민·관 공동 도시개발사업의 절차 및 방법도 세부적으로 규정했다. 관리 강화 차원에서 필요시 검사를 의뢰할 수 있는 전문기관도 마련했다.

개발 업계에서는 법 시행 전부터 반발이 나왔다. 개정법 부칙 제2조에서 개정법과 시행령 규정을 적용하는 기준을 ‘개정안 시행 이후 도시개발구역을 지정하는 경우’로 정한 것이 문제가 됐다.

이 부칙에 따르면 법이 마련되기 전에 이미 민간참여자 공모를 마쳤거나 우선협상 대상자를 선정한 민관 개발사업도 법 시행일까지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았다면 개정법 규정에 따라 민간 참여자 공모부터 단계를 다시 밟아야 한다.

민·관 도시개발사업은 민간사업자 선정 이후부터 도시개발구역지정 전까지 시간과 자금이 투입되는 절차를 여럿 거쳐야 한다. 민관은 사업을 진행할 특수목적법인(SPC)을 설립하고 출자금을 내야하며, 출자타당성 용역과 시·도 도시계획위원회 보고, 인구·토지이용계획 등 사업계획 수립 과정에 운영자금도 투입해야 한다. 토지소유자 동의서를 제출하고 도시계획위원회 심의를 거쳐 도시개발사업 구역으로 최종 지정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이 과정에 상당한 자금이 투입되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김포도시관리공사가 지난 2018년부터 오는 2026년까지 진행하는 ‘김포고촌지구 복합개발사업’은 민간사업자 선정 후 SPC를 설립해 도시개발사업구역 지정 전 단계인 개발제한구역(GB) 해제 신청 단계까지 사업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 약 40억원의 비용이 소요됐다고 한다. 광명도시공사가 오는 2027년 준공 목표로 추진 중인 광명문화복합단지 도시개발사업도 SPC 설립 및 사업 운영비용으로 약 89억원이 소요됐다.

그러나 개정법에서는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고 도시개발구역으로 지정되지 않았으면 재공모에 들어가도록 했다. 이로 인해 그간 투입된 비용을 고스란히 날리게 된 사업장이 등장했다.

경기도에서 개발사업을 진행하는 도시공사 8곳이 취합해 지난달 22일 국토부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비용 손실을 떠안게 된 사업은 10여건에 달한다. 이런 문제가 있음에도 별다른 조치 없이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사업이 진행되던 일부 민·관 도시개발사업은 재공모 절차를 거치게 됐다.

국토부에서는 이미 법 개정이 끝났기 때문에 법을 다시 고치지 않고서는 해결 방법이 없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우선협상자를 지정했다고 하더라도 사적인 계약관계일 뿐 공법상 지위가 부여됐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지출된 비용에 대한 보상 등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 “부칙에 관한 내용은 법에 명시된 것이므로 법을 개정하지 않고는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한 개발업계 관계자는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돼 사업을 진행하고 있던 민간사업자들은 난감한 상황이 됐다”면서 “공모절차를 또 밟을 경우 다시 선정된다는 보장도 없어 그간 투입한 돈과 시간이 모두 날릴 수도 있는 상황이 됐다”고 했다.

또 다른 개발업계 관계자는 “새로 절차를 밟아야 하는 지자체나 지방공사에서도 곤혹스러운 상황일 것”이라면서 “이미 들어간 비용에 대해서 따로 정부가 보전해주거나 하는 조치도 별도로 없어서 더욱 난감할 것”이라고 했다.

업계에서는 이미 공모 공고가 나갔거나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된 사업, 또는 사업협약을 체결한 사업에 대해서는 기존의 법을 따르도록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택협회 관계자는 “도시개발구역 지정 전이어도 우선협상대상자가 지정되면 민·관은 SPC를 세우고 이를 통해 설계용역비나 인건비를 지출한다”면서 “적어도 공모공고를 이미 냈거나,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된 곳에서는 개정안을 따르지 않아도 되도록 법을 수정해 사업자들의 피해를 줄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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