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혼돈의 야근버스

이승준 기자 2022. 7. 1.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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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 국내에 개봉한 마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는 '멀티버스'(다중우주)를 주된 소재로 삼는다.

멀티버스는 광활한 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평행세계'를 일컫는 용어다.

멀티버스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영화 속 주인공을 따라 '저녁 있는 삶'이 있는 우주 어딘가의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꿈을 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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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노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2022년 6월23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노동시간 제도 개편 방향을 설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2년 5월 국내에 개봉한 마블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는 ‘멀티버스’(다중우주)를 주된 소재로 삼는다. 멀티버스는 광활한 우주에 존재하는 수많은 ‘평행세계’를 일컫는 용어다.

예를 들면 서울 마포구에 있는 <한겨레21> 사무실이 우주에 수천, 수만 개가 각각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각각의 사무실에는 ‘A기자’ ‘A-1기자’ ‘A-2기자’ 등이 각각 자리에 앉아 오늘도 기사 마감을 하는 것이다. 영화에서 주인공 닥터 스트레인지는 멀티버스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10대 청소년과 함께 수십 개의 멀티버스를 이동하며 혼란스러워한다. 영화 속에서나 가능한 일 같지만, 최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을 둘러싼 논란을 보면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수많은 평행세계를 이동하는 듯한 혼란에 빠진다.

갑자기 ‘주 92시간의 세계’가 찾아왔다. 6월23일 노동부가 공개한 ‘노동시장 구조개혁 방안’ 자료를 보면, 노동부는 현재 1주 12시간으로 규정된 연장근로시간 한도를 ‘주’ 단위가 아닌 ‘월’ 단위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한 달이 평균 4.345주이므로, 월 연장근로시간을 한 주에 모두 몰아 쓴다고 가정하면 주 92시간(기본 40시간+연장근로 52시간) 근무도 가능한 셈이다. 노동부는 11시간 연속휴식권 등을 보장하면 주 92시간은 불가능하다고 반박하지만, 이를 반영해도 주 80.5시간이 된다. 과로사를 막고 노동자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주 최대 52시간제’를 만들어온 사회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갑자기 ‘주 92시간의 세계’에 떨어져 어리둥절한데, 노동부 발표 다음날 대통령의 발언은 또다시 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6월24일 윤석열 대통령은 출근길에 기자들에게 노동시간 개편 방안에 대해 “어제 보고를 받지 못했다.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발표된 건 아니다”라는 취지로 답했다. 이정식 노동부 장관이 발표하고, 추경호 경제부총리 및 기획재정부 장관도 추진하겠다고 한 사안을 대통령만 모르는 초현실적인 세계가 펼쳐진 것이다.(대통령실은 “최종보고를 못 받았다는 뜻”이라는 취지로 해명했다.)

몇 시간을 일해야 하는지 종잡을 수 없어 혼돈에 빠진 이들에게 6월28일 노동부는 결정타를 날린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칼퇴를 잊은 사람들에게 야근송’이라는 제목으로 “어차피 해야 할 야근이라면 미뤄봤자 시간만 늦출 뿐! 에너지 부스터 같은 야근송 들으며 얼른얼른 처리하자고요”라며 야근과 관련한 노래를 추천했다. 야근송은 장시간 노동에 가뜩이나 심란한 직장인의 마음을 제대로 저격했다. 과로를 막아야 할 노동부가 야근을 권장하며 직장인을 조롱한다는 분노와 비판이 터져나왔다. 해당 게시물은 결국 삭제됐다.

멀티버스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영화 속 주인공을 따라 ‘저녁 있는 삶’이 있는 우주 어딘가의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꿈을 꿔본다. 그곳에는 야근송 대신 이런 노래가 흘러나올 것이다. “이제 집에 가자/ 오늘 할 일은 다 했으니까/ 집에 가자/ 이제 슬슬 피곤하니까/ …/ 집에 가자/ 나는 정말 지쳤으니까”(장기하와 얼굴들, <사람의 마음>)

이승준 <한겨레> 이슈팀장 gamja@hani.co.kr

*뉴노멀: 이주의 주요 뉴스 맥락을 주관적으로 들여다보는 코너로 <한겨레> 김규남, 이승준, 장수경 기자가 돌아가면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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