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파일] 정권에 홀대 당한 군·경..군은 침묵, 경찰은 반발

김태훈 국방전문기자 2022. 7. 1.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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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에 반대하며 시위를 벌이는 현직 경찰관들


요즘 경찰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경찰이 갈망했던 경찰청장 장관급 격상 공약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고, 행정안전부에 경찰국 신설로 예상치 못한 시어머니를 맞을 판입니다. 지휘부 인사 번복 사태로 윤석열 대통령으로부터 '국기 문란' 질책을 받았습니다. 울고 싶은데 뺨 맞은 격이라 경찰의 집단 반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경찰과 조직의 성격이 유사한 군도 새 정부의 홀대를 톡톡히 받았습니다. 하루아침에 국방부 청사를 대통령실에 내줘 국방부를 비롯해 10여 개 부대가 연쇄 이전했습니다. 현재 국방부와 합참은 한 건물에서 어깨 부딪히며 불편하게 동거하고 있습니다. 해병대 독립과 4성 장군 공약도 사라졌고, 육군 참모총장과 해병대 사령관의 공관도 대통령실에 넘어갔습니다. 하지만 군은 경찰과 달리 입을 다물었습니다.

군과 경찰은 둘 다 정치 중립을 지켜야 하는 제복들입니다. 똑같이 인수위 또는 대통령실로부터 냉대를 당했습니다. 반응은 판이합니다. 군은 침묵했고, 경찰은 불쾌감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원통하기로 치면 군이 더 한 것 같은데 입을 열지 않습니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요?

반군 정서의 무게에 닫힌 군의 입

대통령실 청사 마련을 위해 이삿짐을 옮기는 국방부 직원들

김영삼 정부 이전까지 우리 군은 군사정변으로 정권을 탈취했고, 민주화 요구를 총칼로 짓밟았습니다. 대통령, 국무총리, 국무위원, 국회의원 등 요직을 차지해서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군사독재의 역사입니다.

선배 장교들의 과거는 후배 현역 장교들에게 이유 불문하고 부정하고 싶은 대상인데 업보처럼 따라다닙니다. 군의 권력 강탈은 상상할 수도 없는 시대가 됐지만 대중의 반군(反軍) 정서는 여전히 견고합니다. 그래서 단체 행동은 물론이고 정부의 부조리에도 제 목소리 내는 일은 군에서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한 영관급 장교는 "국방부 청사 이전 사태를 겪으며 군심이 많이 흔들렸어도 군의 침묵을 이상하게 여기는 장교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다른 영관급 장교는 "군도 부당한 지시에 반발할 수 있겠지만 군에 대한 신뢰도가 많이 높아졌을 때에나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습니다.

경찰에도 흑역사라고 부를 만한 과거가 있습니다. 경찰은 고문과 폭력으로 민주화 운동을 탄압했던 장본인입니다. 민주화 이후에도 정권 입맛에 맞춰 수사를 벌임으로써 권력에 빌붙었습니다. 군과 차이가 있다면 군은 독재 권력 자체였고, 경찰은 독재 권력의 수하였습니다. 죄의 무게가 다르니까 반군 정서에 비해 반경(反警) 정서는 심한 편이 아닙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경찰은 종종 목소리를 내고 단체 행동을 합니다.

예비역 안보 캠프의 폐단


대선 때면 어김없이 예비역 장군들로 구성된 안보 캠프가 등장합니다. 캠프에 발 들이지 않은 예비역들을 별종으로 여길 정도로 예비역들은 너나없이 캠프로 향합니다. 여야의 안보 공약을 정비하고, 각 군을 돌며 바람을 일으키는 역할을 합니다. 안보를 위한 열정의 발로일 테지만 정치적 욕망이나 자리 욕심도 있을 것입니다. 정권을 잡은 쪽 캠프의 예비역들은 논공행상 차원에서 5년 동안 정부의 요직이나 공공기관의 높은 자리를 차지합니다.

반면 경찰 출신들은 대선 때 치안 캠프를 별도로 구성하지 않습니다. 개별적으로 각 당 대선 조직에 참여하기는 해도 예비역 장교들처럼 떠들썩하게 무리지어 다니지 않습니다. 현역 군인과 경찰들이 자기 주장을 펼칠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생기는 원인 중 하나입니다. 한 예비역 중장은 "국방부 청사 이전, 총장·사령관 공관 전용, 병사 2백만 원 공약 철회 등 군심을 뒤흔든 사안들 모두 캠프 출신의 정치적 예비역들이 주도했다", "그들이 군을 장악해 현역들의 생사 여탈권을 쥐고 흔들기 때문에 군은 입도 뻥끗 못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성숙한 민주주의 문민통제는 민군의 갈등, 군의 반발을 허용합니다. 군은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되 문민이 최종적으로 정책 결정을 하고 이에 군은 복종하는 구도가 안보를 강화하는 바람직한 문민통제입니다. 우리 현실은 '말을 잃은 군'입니다. 군의 어두운 과거도 군의 입을 막고 있지만 정치 좋아하는 예비역들도 무거운 재갈입니다.

김태훈 국방전문기자onewa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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