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DP서 신발까지.. '21세기 디자인' 을 신세계로 이끌다

기자 입력 2022. 7. 1. 09:35 수정 2022. 7. 1.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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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바 디자인 2008년 作
아쿠아 테이블, 2005년 作
회오리 샹들리에, 2005년 作
라코스테 슈즈, 2008년 作

■ 최경원의 지식카페- (18)자하 하디드

‘이라크 출신 여성’ 이라는 불리한 여건에도 숱한 명작 남기며 현대 디자인의 이정표

규칙없이 혼란스러워 보이지만 곡면의 어울림과 유기적 조형미 뽐내… 인간의 계산에 의지하지 않고 ‘자연과 하나되기’

아쉽게도 지금 우리와 같은 행성에 살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에게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를 디자인한 건축가로 유명한 자하 하디드는 반드시 한 번은 살피고 넘어가야 할 디자이너다. 그녀가 없었다면 21세기의 디자인은 에너지를 얻기 어려웠을 것이고, 세계는 아직도 20세기적 디자인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여성이고, 이라크 출신이라는 불리한 여건에서 건축을 출발했지만, 그녀가 내놓았던 건축은 자신의 위대한 명작을 넘어서서 세계의 모든 디자인을 새로운 세계로 밀어붙여 버리는 21세기 디자인의 엔진이 되고 있다.

건축가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건축 외의 분야에서도 많은 디자인을 했던 스펙트럼이 넓은 디자이너였다. 건축을 하지 않았더라도 대단한 디자이너로 추앙받았을 것이다.

그녀가 디자인한 큰 건물의 바를 보면 건축에서의 조형언어가 그대로 실내 디자인에 반영돼 있어서 하나의 작은 건축물 같다. 바를 벽에 붙여서 만들지 않고, 건물 한가운데에다 조각 같은 오브제 형태로 디자인한 것이 특이한데, 마치 우주에서 막 날아온 외계 우주선처럼 보이기도 한다. 직선이 하나도 없고, 모든 부분이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듯한 모양이다. 어떤 점에서는 규칙 없이 혼란스러워 보이기도 하는데, 곡면들의 어울림과 유기적인 형태가 자아내는 조형적 힘이 대단하다.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내뿜는데, 자하 하디드의 디자인 경향을 압축해서 잘 보여주는 디자인이다.

유기적인 모양의 소파도 충격적이다. 정상적인 형태의 소파는 전혀 아니다. 규칙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비대칭적인 형태에, 소파이기보다는 조각 작품처럼 보인다. 하나의 조각으로 봐도 손색이 없다. 물론 어느 벽에도 맞춰질 수 없는 형태라 실내에 어떻게 두고 써야 할지 난감한 면도 있다. 아마 엄청나게 넓고 큰 저택에서나 쓸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이 소파가 화려하거나 귀족적인 것은 아니다. 어떤 질서 없이 자유분방한 모양은 거대한 바위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그래서 소파에 앉으면 계곡물도 보이고, 나무숲도 보일 것 같다. 불규칙한 자하 하디드의 디자인이 전혀 혼란스럽지 않고,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녀의 디자인은 건축을 넘어서, 작품을 넘어서, 자연에 닿는다.

아쿠아 테이블은 실내에서 사용하는 테이블임에도 불구하고 전혀 테이블처럼 보이지 않는다. 일단 윗면에서부터 몸체 전체가 직선이 하나도 없는 유기적인 형태다. 구조적으로는 바닥 쪽 3개의 지느러미 같은 구조도 인상적이고, 푸른색이 감도는 윗면의 흐르는 듯한 모양도 인상적이다. 이 테이블의 이름을 생각하면 테이블 윗부분을 왜 이렇게 만들어 놓았는지 이해가 된다.

반투명 재질로 비정형적으로 만들어진 모양은 흐르는 강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하다. 하류쯤일까. 느리게, 하지만 힘을 깊게 머금고 흐르는 듯한 곡률은 완만한 땅의 기울기에 따라 천천히, 우아하게 흐르는, 곧 바다를 만날 것 같은 강의 모습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해 보인다. 테이블 아래쪽 3개의 받침대가 붙어있는 부분은 마치 물이 깊은 것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 보다 더 이 테이블이 우아하게 흐르는 강처럼 느껴진다. 아랫부분의 구조를 보면 마치 물방울이 흘러내리는 것 같은 느낌으로 만들어져 있다. 흐르는 곡면의 아름다움이 매우 인상적이다. 실내에서 사용하는 테이블을 강 같은 자연으로, 조각 작품 같은 아름다운 형태로 해석한 자하 하디드의 디자인 철학이 참으로 신선하고 강렬하게 다가온다.

제네시 램프는 자하 하디드의 조형성이 다소 심플한 구조로 표현돼 있다. 그냥 보면 무척 복잡해 보인다. 그런데 전체 구조를 보면 마치 코브라가 머리를 쳐들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단순하게 만들어져 있다. 그러면서도 구조 안에 여러 부분이 복잡하게 만들어져 있어서 단순함 속의 복잡함, 그것이 이 디자인의 중요한 묘미인 것 같다. 세련된 곡선들의 어울림이 매우 역동적이면서도 힘이 넘쳐 보여서 동아시아적 미학용어로 아주 ‘기운생동’해 보인다. 바닥과 머리 부분이 대칭적인 구조로 돼 있어서 복잡하고 화려해 보이는 형태에 안정감을 불러일으킨다.

자하 하디드가 디자인한 조명 중에서는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회오리(vortex) 샹들리에다. 어디에도 직선적이거나 규칙적인 부분 없이 전체가 동굴의 종유석처럼 하나의 유기적인 흐름을 가진 덩어리로 디자인됐다. 형태의 흐름이 가진 에너지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조명에 대해 가지고 있는 모든 선입견을 붕괴시키는 디자인이다. 작은 조명등일 뿐이지만 시각적인 충격과 인지적 충격의 정도는 웬만한 크기의 건축물에 비할 바가 아니다. 기존의 디자인이나 상품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것도 깨는 것이지만, 그런 것들이 이전의 믿음체계, 특히 기능적인 디자인이나 입방체 모양으로 만들어졌던 모던 건축에 대한 근본적 비판을 저변에 깔고 있기 때문에 더 깊게 다가온다.

막연히 부수고, 놀라게 하는 디자인이 아니라 역사적 당위성을 외치며 기존의 선입견을 새로운 원리로 붕괴시키기 때문에 의미가 크다. 자하 하디드는 이런 디자인을 통해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문명을 발전시킨다.

자하 하디드가 라코스테를 위해 디자인한 부츠가 송아지 가죽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믿을 수 없다. 1000개 한정생산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신을 신으면 스프링처럼 만들어져 있는 신발의 몸체가 발을 인체공학적으로 감으며 멋진 모습으로 나타난다. 일상적인 부츠인데도 이렇게 획기적인 모양으로 디자인한 솜씨는 건축가를 넘어서서 해탈의 경지에 오른 도인의 면모를 보여준다. 어떤 프로젝트를 맡겨도 상상을 넘어서는 결과를 만들어 낼 것 같은 기대를 하게 하는 디자이너다. 실험적인 디자인이지만 가죽의 표면을 악어의 가죽처럼 요철을 줘서 세련되면서도 고급스럽게 마무리한 격조도 높이 살 만하다.

자하 하디드는 브라질의 신발 브랜드 멜리사를 위한 젤리슈즈를 디자인했다. 신발이라고 하기에는 우주선 같기도 하고, 조각품 같기도 해서 역시 신발에 대한 선입견을 거장의 감각으로 붕괴시키는 모습을 보게 된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신발에 대한 경험, 새로운 아름다움에 대한 체험을 할 수 있어서 21세기적 디자인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이 신발에서 얻을 수 있는 큰 가치다. 자신의 건축세계를 압축해 놓은 것 같은 신발 모양은 유기적인 형태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잘 보여준다.

그리고 이런 형태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기도 한다. 바로 자연이다. 기하학적인 형태만 옳은 길이라고 주장했던 20세기 디자인에 대해 단호히 거부하며, 심미성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21세기의 디자인은 인간의 계산에만 의지하지 않고 자연과 하나가 돼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그녀의 디자인이나 건축은 독특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형태가 먼저 눈에 띄지만, 그 안에는 자연을 향해 있는 그녀의 시선이 깔려있다. 불규칙하고 강렬한 에너지로 가득 찬 그녀의 디자인은 모두 자연의 속성을 잔뜩 머금고 있다. 그녀의 이런 디자인을 통해 세계 디자인은 자연의 가능성을 강렬하게 느끼게 됐고, 그녀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비록 그녀는 지금 이 세상에 없지만 여전히 그녀의 디자인들은 현대 디자인의 이정표가 돼 디자인이 가야 할 길을 가리키고 있다.

현디자인연구소 대표

■ 자하 하디드

- 1950년 10월 31일생

- 1972년 : Architectural Association School of Architecture 입학

- 1977년 :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있는 Metropolitan Architecture 사무실에서 일함

- 1989년 : 런던에 Zaha Hadid Architects 오픈

- 1988년 : 뉴욕현대미술관의 “건축의 해체주의” 전시회 참가

- 1991∼1993년 : Vitra 소방서

- 2001∼2005년 : 라이프치히 BMW 공장 관리동

- 1998∼2010년 : MAXXI 로마현대미술관

- 2003∼2010년 : 광저우 오페라 하우스

- 2007∼2013년 : 동대문디자인플라자

- 2016년 3월 31일 : 기관지염 치료 중 심장마비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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