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팬데믹 시대의 성장.. '자본'아닌 '혁신'에 달려
특허출원 많을때 GDP 상승 등
혁신·생산성의 상관관계 입증
과도한 법인세 등은 산업 망쳐
창조적 파괴의 힘
필리프 아기옹·셀린 앙토냉·시몽 뷔넬 지음
이민주 옮김│에코리브르
혁신, 위기에서도 일어서는 힘
공공부채 급격히 늘리면 위험
한계 기업은 과감히 정리해야
회복탄력 사회
마커스 브루너마이어 지음│임경은 옮김 어크로스
‘소득주도성장’에서 ‘민간주도성장’으로. 지난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을 요약하는 캐치프레이즈다. 저임금 근로자 소득을 높여 성장을 유도한다는 전임 정부의 ‘소주성’ 이론이 실업자 양산, 국가부채 급증 등의 부작용을 낳았다는 문제의식이 담겼다. 이번 주 나란히 출간된 ‘창조적 파괴의 힘’과 ‘회복탄력 사회’는 ‘민주성’ 구호를 산업현장에 구현하려는 새 정부에 실질적 지침이 될 연구서다. 세계적 석학이 쓴 이들 책은 모두 오스트리아 출신 미국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의 이론을 토대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위기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며 기존 패러다임을 혁신하는 ‘창조적 파괴’로 성장을 이끄는 해법을 탐색한다. 슘페터 이론은 ‘자본 축적’이 늘면 총생산이 증가한다는 1980년대 신고전주의 모델의 문제점을 보완한 것으로 성장의 원천을 ‘자본’이 아닌 ‘혁신’에서 찾는다.
프랑스 최고 국립교육기관인 ‘콜레주 드 프랑스’의 필리프 아기옹 교수가 말하는 ‘창조적 파괴’는 이런 슘페터 이론을 심화시킨 개념이다. 스티브 잡스 같은 혁신가의 아이디어가 기존 기술을 대체하는 과정이 창조적 파괴의 핵심이다. 신생 기업과 기존 기업의 경쟁 속에 일자리는 소멸과 창출을 반복한다. 저자는 다양한 통계를 통해 혁신과 생산성의 상관관계를 입증한다. 실제로 미국 여러 도시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특허 출원이 많았을 때 혹은 신생 기업의 창업 비율과 폐쇄 비율의 평균값(창조적 파괴 비율)이 높을 때 1인당 국내총생산이 올라갔다.
이런 혁신 의욕을 꺾는 요소 중 하나는 과도한 세금이다. 저자가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과세율과 성장률 그래프는 ‘거꾸로 된 U자형’을 그린다. 일정 수준까지 증세하면 성장률이 높아지지만, 정점을 넘어서는 순간 ‘과도한 세금이 산업을 망치는’ 상황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저자는 잘못된 조세정책의 대표적 사례로 실업률을 줄이기 위해 로봇 활용에 세금을 부과하는 조치를 꼽는다. 이 이론을 수용한다면 법인세를 낮춰 기업 투자 의욕을 끌어올리겠다는 한국 정부의 기조는 방향을 제대로 잡은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다. 이와 함께 저자는 자국산업 보호를 위해 중국과 무역전쟁을 벌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을 언급하며 “세계화 시대에 관세에 의존하는 ‘보호주의’는 혁신 동력을 감소시킬 뿐”이라고 지적한다.
책은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은 한국을 혁신에 바탕을 둔 성공 사례로 지목하기도 한다. 농업경제에서 산업경제로 이행하기 위한 개혁에 실패한 아르헨티나 등과 달리 한국은 1997년 찾아온 외환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았다. 기존 ‘선진국 따라잡기’ 전략을 ‘혁신성장’ 전략으로 전환하며 해외 투자자의 국내시장 진입을 가로막는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아울러 스타트업 기업의 혁신을 가로막는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대한 벌금은 크게 늘렸다. 산업현장의 역동성을 높이는 이들 조치 덕분에 한국은 1990년 초만 해도 미국특허청에 출원한 특허가 독일보다 8배 적었으나 2012년에 이르러 30%나 많은 특허를 가진 나라로 부상했다.
혁신 이론의 기반을 닦은 슘페터는 불평등을 강화하는 자본주의에 회의적이었으나 저자는 이 지점에서 ‘스승’과 결별한다. ‘국가-기업-시민사회’의 삼각 구도가 자본주의를 적절히 규제하고, 실직자 보호조치 등 사회안전망을 강화한다면 혁신 의지를 살리면서도 불평등을 축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일류 기업가의 혁신이 당장은 최상위 계층과 중산층 이하의 격차를 벌려 놓지만, 장기적으로는 일자리 창출을 통해 하위층이 상위층에 진입하는 ‘사회 이동’을 활성화한다는 사실을 통계로 증명한다.
마커스 브루너마이어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교수가 쓴 ‘회복탄력 사회’ 역시 슘페터 이론에 기대 창조적 파괴로 상징되는 혁신이 장기성장의 촉매제라고 역설한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측하며 주목받은 저자에 따르면 혁신은 위기에도 다시 일어서는 힘, 즉 회복탄력성 위에서만 빛을 발할 수 있다. “바람에 흔들리되 꺾이지 않는 갈대”처럼 충격을 흡수해야 팬데믹 이후에 찾아올 기후 변화, 사이버 공격, 생명공학적 재앙 등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회복탄력성을 갖추려면 ‘저스트 인 타임(Just in time)’ 체제에서 ‘저스트 인 케이스(Just in case)’ 체제로 이행해야 한다. 전자가 상황에 따른 임기응변식 시스템이라면, 후자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완충장치를 마련하는 시스템이다. 저자는 팬데믹 시기에 한국을 비롯한 각국이 당장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공공부채를 급격히 늘린 것은 ‘저스트 인 타임’ 체제의 부작용이라고 지적한다.
아울러 경제회복의 기로에 선 지금, 회생 가능성이 크지 않음에도 정부나 채권단의 지원으로 연명하는 ‘한계 기업’을 정리해야 한다는 도발적 주장을 내놓기도 한다. 한계 기업이 많으면 회복탄력성이 약해져 경제가 영영 성장 궤도로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큰 만큼 서둘러 구조조정에 돌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헤쳐갈 통찰이 담긴 두 책은 창조적 파괴를 위해선 과거 시스템을 뒤엎는 결단이 필요하며, 행동하지 않으면 지속 가능한 성장이 요원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아기옹이 인용한 프랑스 철학자 앙리 베르그송의 말처럼 “미래는 우리에게 일어날 무언가가 아니라, 우리가 행동으로 옮길 무언가다.” 각 권 578쪽, 3만5000원. 420쪽, 1만9800원.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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