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미·중 사이 중간점 찾으려는 건 '실수'..국제질서 원칙 따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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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석학에게서 듣는다 - (4) 존 아이켄베리 프린스턴大 정치학과 석좌교수
-7월 7일‘문화미래리포트’제1세션 두 번째 강연-
존 아이켄베리 프린스턴대 석좌교수는 최근 과열되고 있는 미국과 중국 간 경쟁과 관련해 한국에 미·중 갈등을 뛰어넘은 외교정책을 세울 것을 주문했다. 그는 이러한 방안 중 하나로‘글로벌 코리아’라는 모토를 통해 캐나다나 호주 등 다른 국가들과 협력해무역·기술·안보 등 여러 분야에서 글로벌 규칙과 규범 형성에 일익을 담당할 것을 제시했다. 그는 한국을 성공한 현대 국가로 묘사하면서 국제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작지 않음을 강조하고, 그런 맥락에서 ‘글로벌 중추 국가’를 표방하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안보 비전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아이켄베리 교수는 또 대미·대중 외교정책 방향을 둘러싼 국내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국제 질서의 원칙을 지키는 외교정책에 무게를 두라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과의 협력 관계를 유지하되, 미국 등 자유민주주의 세계와의 동맹과 개방적이고 다자적인 세계 질서가 유지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아이켄베리 교수는 한국이 미·중 사이에서 중간점을 찾으려고 하는 시도는 ‘실수’라고 단언하면서 한국과 미국은 중국이 추구하는 비자유적인 동아시아 지역 질서에 저항하는 방향으로 가야 함을 강조했다. 다음은 아이켄베리 교수와의 서면 인터뷰 일문일답.
中을 적으로 보라는 건 아니지만
韓·美, 같은 이해관계 묶인 동맹
쿼드·IPEF는 中 억제 아닌 견제
해당 지역 이익 보호하려는 시도
현대 국제질서 체계 핵심원칙은
영토 병합·核위협 않는다는 것
韓은 부유하고 성공한 현대국가
글로벌 규칙·규범 후원자 될 것
―최근 러시아와 중국 등의 군사적·경제적 위협이 커지면서 국제 질서가 흔들리고 있다.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들을 중심으로 대응하면서 신냉전 시대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국제 질서를 산산조각 냈고, 미국과 자유를 제한하는 국가(러시아, 중국) 사이의 분열을 고착시켰다. 미국과 유럽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의 공격을 개방적이며 규칙에 기반한 국제 질서에 도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국제 질서의 역사는 1945년 수립된 유엔의 원칙, 냉전 시대 이후 유럽 평화 및 안보 체계가 구축됐던 시기에서 시작된다. 러시아는 다른 국가의 영토를 병합하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했으며,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했고,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위협했다. 미국의 관점에서 이것은 현대 사회 국제 질서의 핵심 규범, 또는 원칙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다. 중국은 러시아와 멀어지지 않은 채로 여전히 러시아의 석유를 사들이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게 저항하지 않고 있다.”
―국제 질서가 어떻게 변화되고 있다고 보나.
“이러한 상황을 보면 오늘날 국제 질서와 관련해 두 가지 ‘비전’이 작동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는 미국과 자유민주주의 세계에 연결된 자유주의적 국제 질서이고, 다른 하나는 러시아와 중국이 행사하는 ‘영향력 범주’에 대한 접근이다. 우크라이나 침공은 단순히 우크라이나의 미래에 관한 것만이 아니며, 국제 질서의 핵심 원칙과 규범의 미래에 관한 것이다. 글로벌 거버넌스 관점에서 현재 세 가지 위기가 펼쳐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지정학의 위기이자 글로벌 권력 구도의 전환이다. 세계는 기존 서구 중심,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에서 더 다양하고 다극적인 질서로 변화하고 있다. 다만 과거 전후 질서의 많은 규칙과 제도를 만든 미국과 서방 국가들만이 여전히 제자리에 있다. 이제는 국제 질서를 형성해 나가는 정치적 흐름이 바뀌었다. 중국의 부상과 비서방 국가들의 부상을 상대로 한 투쟁 수요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늘 봐 왔듯이 항상 가변적인 세계 질서에 내재 돼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러시아에 대한 주변 국가 내 여론이 친러시아(친러)와 반러시아(반러)로 양분되는 것처럼 한국 내부에서도 정치권은 물론 전문가들 사이에도 중국과 가까이 지내야 한다는 의견과 중국과 거리를 둬야 한다는 의견이 대립하고 있다. 국내의 정치적 대립을 가라앉히려면 어떠한 외교 원칙을 세워야 하나.
“한국은 중국과의 협력 관계를 유지하되, 미국 및 자유민주주의 세계와의 동맹 및 동반자 관계와 연계된, 개방적이고 다자적인 세계 질서에 대한 약속을 준수하는 균형을 잡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한국은 푸틴의 러시아가 제국주의적 대전략을 ‘정상화’하지 못하도록 하는 쪽에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러시아가 정상화에 성공한다면 중국은 동아시아에서 더 쉽게 영향력을 구축해 나갈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토론의 핵심은 우리가 현대 국제 질서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원칙이어야 한다. 즉, 한 국가는 다른 국가의 영토를 병합하지 않으며, 무고한 민간인을 죽이지 않고, 핵무기를 이용해 위협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이것은 친러 원칙이나 반러 원칙이 아니다. 이것은 계몽된 현대 국제 질서 체계의 핵심이 돼야 하는 기본적인 원칙이다.”
―스웨덴, 핀란드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에 가입하면서 국제 안보 질서의 새 지평이 열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변화가 한반도 주변 상황에 어떤 영향을 줄 것으로 보나.
“나토 동맹은 세계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안보 협정 중 하나다. 세계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국가가 함께 협력하고, 서로의 안보를 보장하기 위해 협력할 때 우리가 사는 세계는 더 나아질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스웨덴과 핀란드는 강수를 둬야 했고, 국가 안보를 위해 나토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 나토와 대서양의 파트너십이 강하고 건전해진다면 이는 한·미 관계에 좋은 소식이 될 것이다. 한·미 동맹은 한반도 안보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협의하고, 정책을 조정하고, 인내하는 외교 등을 토대로 높은 수준에서 작동해야 한다.”
―최근 미국 우드로윌슨센터 주도로 한·미 전문가 20명이 ‘두 대통령, 하나의 길’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내며 미·중 사이에서 중간지대를 찾으려 하지 말고 한·미 동맹에 집중하라고 주문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심각한 상황에서 적절한 주문이라고 보는가.
“저는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간 지점을 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실수라고 생각한다. 한국과 미국은 동맹국이며 두 나라는 공동의 가치와 제도, 이해관계로 묶여 있다. 그렇다고 해서 중국을 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한국은 미국을 계속 가까이에 두고, 파트너십을 활용해 한·미 동맹이 북한과 중국의 행동 방식에 영향을 미치길 원한다. 이런 점으로 미루어 생각하면 한국과 미국은 장기적으로 중국 중심의, 비자유적인 동아시아 지역 질서에 저항하는 쪽에 강한 관심을 가질 것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와 같은 전략이 중국을 견제하는 측면에서 실효적이라고 보는가. 오히려 동맹국 내의 정치적 갈등을 확산시키고 지역의 불안을 조장한다는 우려도 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쿼드(Quad·미국, 일본, 호주, 인도 4개국 안보 협의체)와 IPEF를 통한 바이든 행정부의 인도·태평양 지역 참여는 동아시아에 국한되지 않고 더 넓은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중요하다. 이러한 이니셔티브는 미국이 이 지역에 밀착한 상태에서, 지속 성장하는 중국의 힘과 야망을 견제하는 역할을 한다. 이는 중국을 ‘억제’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해당 지역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과 협력하고, 가치와 이익을 보호하는 플랫폼을 갖게 하기 위한 시도다. 중국은 위험하고, 권위주의적인 방향으로 돌아서고 있다. 시민 사회, 언론의 자유, 공개 토론, 정치적 다원주의는 우리가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현대 정치 활동의 특징이지만, 중국에서는 이런 활동들이 거의 사라졌다. 중국을 상대로 균형추를 만드는 일은 지역 및 국제 질서가 어둡고 비자유적인 중국 성향에 지배되지 않도록 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의 추가배치 공약을 철회한 것은 한·미 동맹 강화만큼이나 한·중 관계 관리도 중요하다는 판단으로 보인다. 미·중 사이에서 한국이 운신의 폭을 넓히려면 어떤 전략을 펴야 할까.
“동의한다. 윤 대통령은 미국과의 동맹, 중국과의 관계 두 가지를 모두 관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숙련된 외교와 확고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한국은 미·중 경쟁을 뛰어넘는 외교 정책을 세울 만한 충분한 기회를 가지고 있다. 부유하고, 성공한 현대 국가이며, 중간 세력과 협력을 늘려 왔다는 점에서 지역 및 세계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글로벌 코리아’는 매우 매력적인 아이디어다. 한국은 캐나다, 호주, 기타 국가와 협력해 무역, 기술, 투자, 환경, 안보 분야에서 글로벌 규칙과 규범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는 후원자가 될 수 있다.”
―북한이 연쇄 미사일 도발 와중에 코로나19로 인한 내부 상황을 공개하면서 국제사회에 지원을 요청한 것이란 해석이 나오기도 하는데.
“국제 사회는 북한의 백신 및 공중 보건 지원 요청에 대응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북한의 위기가 얼마나 심각한지는 알 수 없지만, 국제 사회는 인도적 지원을 기꺼이 해야 한다. 이것은 도덕적 문제이자 전 세계 공중 보건 문제이다.”
―한국 정치 지형상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 간의 대북 정책의 입장 차가 크다. 한국 정부에 대북 정책과 관련한 조언을 한다면.
“외부인으로서 한국 정치인들에게 조언하기는 어렵다. 다만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과 미국은 대북 전략을 광범위하게 추진했으나, 거의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현시점에서 양측이 비핵화와 제재 완화의 방향으로 이어지는 상호적 조치를 모색하는 단계적 과정을 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정치적 입장을 중요시하지 않는 한국 국민은 오판과 전쟁의 위험을 줄인다는 측면에서 실용적인 외교를 지지하고자 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9년 국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한 미국 시민으로서 단언컨대, 미·일 동맹과 한·미 동맹 간에 우선순위나 위계질서는 없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여전히 같은 생각인가.
“여전히 같은 생각이고, 더 그러하다. 우리는 모두 ‘함께’하며, 우리의 삶을 보호하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다.”
김유진 기자 klu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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