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가 '안나'를 만났을 때..거짓말 같은 일이 벌어졌다

서정민 2022. 7. 1. 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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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에서
거짓말 일삼는 주인공 유미 연기
'불안' 내세운 연기 변신에 호평
"내 안의 여러 모습 보여드릴게요"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에서 연기 변신으로 호평받고 있는 배우 수지. 쿠팡플레이 제공

“지금까지는 연기로 칭찬받은 적이 없었는데, 요즘 제 연기를 칭찬하는 기사들이 많이 나와서 맨날 찾아보고 있어요. ‘맞아. 잘 보셨구만’ 이러면서요(웃음). 기분은 좋지만 낯설어서 이 칭찬이 제 것처럼 느껴지지 않기도 해요.”

29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수지는 살짝 달뜬 모습이었다. 2010년 걸그룹 미쓰에이로 데뷔한 그는 올해로 11년차 배우이기도 하다. 영화 <건축학개론> <백두산>, 드라마 <드림 하이> <구가의 서> <스타트업> 등 10편 넘게 출연하고도 연기력을 인정받은 적은 없다던 그는 요즘 쏟아지는 연기 호평 세례에 “놀랍고 신기하다”고 했다.

연기자로서 수지를 재발견하게 해준 작품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 지난 24일 공개된 1·2부만으로도 벌써 호평이 차고 넘친다. 수지는 여기서 주인공 유미의 10대 시절부터 30대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화한다. 집안은 가난해도 공부 잘하고 재주 많은 10대 소녀 유미는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지치고 좌절한다. 의도치 않게 시작한 거짓말이 점점 불어나고, 급기야 타고난 금수저 현주(정은채)의 여권과 학력증명서를 훔쳐 ‘안나’로 변신한다. 대학교 강단에 서며 유명 청년 사업가와 결혼한 안나는 거짓되지만 화려한 삶을 누린다.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에서 주인공 유미의 10대 시절부터 3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얼굴을 연기한 배우 수지. 쿠팡플레이 제공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에서 주인공 유미의 10대 시절부터 3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얼굴을 연기한 배우 수지. 쿠팡플레이 제공

거짓된 말과 행동을 일삼는 반사회적 성격장애 ‘리플리 증후군’을 소재로 한 작품은 적지 않다. 이 용어의 기원이 된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씨>는 알랭 들롱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1960)와 맷 데이먼 주연의 <리플리>(1999)로 영화화됐다. 지난 2월 공개돼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넷플릭스 시리즈 <애나 만들기>는 자신을 ‘독일 출신 상속녀’로 꾸미고 미국 뉴욕 상류층을 상대로 사기 행각을 벌인 애나 소로킨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하지만 <안나>는 리플리 증후군을 다룬 다른 작품들과는 결이 다르다고 수지는 설명했다. “리플리 증후군 환자는 자신의 거짓말을 스스로 진실이라 믿는다고 들었어요. 반면, 유미는 거짓된 스스로를 믿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불안해하죠. <안나>는 거짓말에 관한 작품이라기보다 유미가 왜 이런 삶을 살게 됐을까를 보여주는,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는 다른 리플리 증후군 작품들을 일부러 보지 않았다. <안나>의 원작인 정한아 작가의 소설 <친밀한 이방인>도 보지 않았다. “소설과 드라마가 많이 달라서 볼 필요 없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고요, 괜히 소설 봤다가 혼란스러워질까 봐 대본 속 유미에만 집중했어요.”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에서 주인공 유미의 10대 시절부터 3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얼굴을 연기한 배우 수지. 쿠팡플레이 제공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에서 주인공 유미의 10대 시절부터 3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얼굴을 연기한 배우 수지. 쿠팡플레이 제공

유미에 완벽하게 녹아들기 위해 그가 주목한 열쇳말은 ‘불안’이었다. 거짓말을 하면서 불안해하는 심리를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불규칙한 호흡과 흔들리는 눈동자로 불안감을 표현해볼까도 했지만, 불안하면 오히려 티를 안 내려고 괜찮은 척하기도 하잖아요. 유미는 후자에 가까울 거라 보고 불안감을 숨기려고 애쓰는 쪽으로 갔어요.”

유미의 불안을 연기하기 위해 수지는 자신의 불안을 마주하려 했다고 말했다. “내가 언제 불안했나 곱씹어보다 데뷔 초 치열했던 시간들을 돌아보게 됐어요. 그땐 하루 3시간 자며 주 7일 일했거든요. 참 열심히 했고 욕심도 많았는데, 지금 보니 안쓰럽기도 해요. 그런 과거의 나를 만나 잘 쓰다듬어주는 시간을 가지게 됐죠.”

가수로 먼저 데뷔한 그에게 연기는 어떤 의미일까? “뜻하지 않은 길을 가다가 뭔가 더 좋은 걸 만난다는 내용을 어느 책에서 본 적이 있어요. 제겐 연기가 그래요. 가수를 하다가 갑자기 배우를 하게 됐는데, 우연히 만난 좋은 길을 계속 잘 가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에서 연기 변신으로 호평받고 있는 배우 수지. 쿠팡플레이 제공

10년 전 <건축학개론>이 붙여준 ‘국민 첫사랑’이란 수식어는 28살이 된 지금도 쫓아다닌다. 이제는 떼버리고 싶을 법도 한데, 그는 예상 밖의 대답을 내놨다. “그 말 너무 좋아요. 계속 가져가고 싶고요(웃음). 사람에겐 여러 모습이 있잖아요. 제 안에도 여러 모습이 있으니 차근차근 보여드리려고 해요.”

이전과 다른 유미(안나)의 모습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 그가 다음엔 또 어떤 변신을 보여줄까? 궁금증과 기대감을 낳는 배우가 됐다는 점에서 <안나>는 그의 연기 인생에 변곡점을 만든 작품이라 할 만하다. 총 6부작인 <안나>의 3·4부는 1일, 5·6부는 8일 공개된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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