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 헤엄치고.. 해먹 낮잠자고.. 이것 때문에 배낭을 쌌다
'불혹 뒤 지천명 이전' 말레이시아로 불쑥 떠난 보름간의 백패킹
질긴 피지배의 역사 거쳐 인종·종교·언어·음식 뒤섞인 멜팅포트
도시와 자연의 공존..다음엔 '타만 느가라' 우림 여행 꿈꾸며
5월초 다 시작되고, 대개 결정된 일이다. 저녁 말레이시아 지인과 와츠앱으로 안부를 나누던 중이었다. 휴식이 절실하단 얘기에 답하길 “케이엘(KL)에 오면 내 집에서 머물러.” “주변에 엠아르티(MRT) 있어.” “나도 페낭(Penang) 가고 싶네, 음식이 그리워.” “고향이 트렝가누(Terengganu)인데 우린 말레이어도 다른 지역보다 잘해.”
그 나라 사람들이 그 나라 말을 더 잘하는 지역이 따로 있을 까닭은 물론, 부호 같은 정보들로 ‘홍수’가 일 즈음, 한마디를 더 한다. “운이 좋다면 홍수도 볼 텐데 말이야.” 와우.
불쑥 던진 어휘들, 실상 말레이시아를 짓는 ‘주춧말’이고 여행은 옹근 그 말들을 꿰어가는 여정이란 걸 미처 몰랐다. ‘케이엘’은 동남아 경제강국의 엔진인 쿠알라룸푸르, ‘엠아르티’는 최근 1년마다 등록 차량이 100만대씩 늘고 있는 수도의 지하철(말레이시아 다른 도시엔 없다). 대비되길 차이나타운이 아니고선 맥주 한캔 사기 어려운 트렝가누는 서말레이시아 동북부 전통의 주였다. 며칠 뒤 지인에게 문자했다. 6월2일 비행기를 끊었다고, 돌아오는 항공편은 미정이라고, 섬과 숲을 상상한다고, 백패킹이라고.
“나도 10년 전 부산 배낭여행 때 길에서 잔 적은 있지만…. 괜찮겠어? LOL(영미권의 ‘ㅋㅋ’)”이라는 문자를 받기 전, 사실 밤마다 꽤 깊은 고민을 해야 했다.
나이와 격조, 백팩과 체력, 즉 격조가 부족할 때의 궁색, 체력이 부족할 때의 궁상. 그리고 6월2일 이런 우려들까지 국으로 담아 8.8㎏ 배낭 하나를 짊어지고 오전 11시40분 호찌민행 항공편에 오르고 말았다.
말하자니 ‘불혹 후 지천명 전 백패킹’, 줄여 ‘40대 배낭여행’이다. 전체 비행 노선은 베트남 호찌민(2~3일 친구 만남)~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3~14일)~싱가포르(14~15일 도시 배회)~제주(15~16일 한라산)~김포(16일 아침 9시)다. 이 가운데 말레이반도 남부의 여정을 격조와 궁상 사이 번뇌할 싱글 백패커들과 나누고자 한다.
용광로 속 다채로움 지닌 나라
말레이시아의 두 표지로, 수세기 이식배양된 혼종, 더 오래 자생한 호의의 생태를 거칠게나마 꼽아본다. 인종, 종교, 언어, 음식, 도시와 자연이 이처럼 뒤섞인 나라는 미국 말고 없지 싶다. 다양성의 스펙트럼이 한끼 5~7링깃(1500~2100원)에서 50~100링깃 밥값처럼 넓고, 유명도시 페낭의 성당, 교회, 절, 모스크, 힌두 사원이 줄지어 제각기 수백년 삶을 보듬었을 조지타운의 한 반경(부둣가에 도교 사원도 있다)처럼 조밀하다. 3개국에 발이 닿는 여행자처럼 아침 중국식을 먹고, 점심 인도, 저녁 말레이 음식을 먹었다. 장이 미처 놀랄 새 없었고, 할랄·비건 식당은 흔했다.
“우린 먹는 데 별로 아끼지 않아”라는 이 나라 여러 사람의 말은 저 많은 문화와 규범에서 합일된 삶의 근원을 독송하고 함께 위안받는 일이리라. 무엇이 말레이인다움(Malayness)인가 결결이 합의되기 어려워도 “두리안은 우리 게 최고야, 태국(타이) 걔네 아니라니까.”
미국의 멜팅포트(다문화)가 이주인들의 개척시대에서 비롯한다면, 말레이시아에선 질긴 피지배사를 복기해야 한다. 그런데 이들은 적의 없고 나긋하다. 관광국가라서? 아니, 상술도 호객도 못 봤다. 2주 동안 위협이나 불쾌감을 경험 못 했는데, 하루 다섯번을 신에게 기도하는 모로코에서의 2019년 험궂은, 특히 도시 페스(Fez)의 5월이 공연히 되씹혔다.
유럽 열강이 16세기 처음 점령한 동남아가 말레이반도의 믈라카(영어: 말라카)다. 아랍·인도계 이슬람 상인이 앞서 발달시킨 항구도시로 “믈라카를 지배하는 자는 베네치아의 목을 누른다”고 했던 포르투갈에 의해서다. 다음 세기 네덜란드, 그다음 세기 영국이 주인 행세를 했다. 무자비한 학살로 항일투쟁까지 부른 일본, 전쟁 땐 내뺐다 일본 항복 뒤 재점령한 영국을 거쳐 1957년에야 독립한 도시 복판에서 히치하이킹을 받아준 젊은 여성 운전자를 만나는 일이 우연일망정 몇곳에서 가능할까. 6월13일 저녁 6시께 믈라카, 택시, 버스, 그랩(차량호출서비스)도 1시간째 이용 못해 포르투갈까지 욕하며 둥개던 자는 “나도 다른 데서 도움받지 않겠어요?”라는 그의 말을 깊이 신뢰했다.(임피리얼 헤리티지 호텔에서 일하고 퇴근 중이라던 리잉(Lee Ing)에게 거듭 감사드린다.)
리잉은 물론, 마랑 터미널에서 노선을 직접 확인하고선 내가 탈 버스를 기다렸다 일러준 말레이계 청년들, 트렝가누 숙소 골목 한켠 더 지쳐 보이는 물품들을 깔아둔 채 삼시를 맞는 노파에게 해거름 물과 음식을 주고 가던 한 중년의 뒷모습까지 담은 탓인가, 날이 갈수록 백팩은 무거워졌다. 막상 여행의 경로는 잠시 들른 도시까지 포함하여 이랬다. 케이엘~이포(배우 양자경의 고향)~타이핑(식민시절 건설된 이 나라 최초의 기차역과 타이핑호수공원)~페낭(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음식·벽화·페낭힐·국립공원·바다)~카파스(섬)~트렝가누(전통시장·해산물·두리안)~케마만(커피·바다)~벤통(음식·자연)~케이엘~믈라카(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믈라카를 빼고 지인의 차로 이동했으나, 아니래도 괜찮겠다. 페낭~트렝가누, 트렝가누~케이엘은 버스(4~6시간, 심야버스 포함)·비행기편(1시간)으로 이동 가능하다.
투어와 트래블 사이에서
주석 채굴로 파인 데마다 흙탕물이었다는 쿠알라룸푸르(‘두 물길의 합+진흙’이라는 뜻)는 이제 쇼핑몰과 마천루로 가득한 국제도시다. 1970년대 한국보다 경제지표가 좋았던 국가의 오늘날 상징물인 페트로나스 트윈타워를 한·일 건설사가 한 동씩 짓고, 두 동을 또다른 한국 기업이 연결(스카이브리지)했다는 사실은 사진 찍는 한국인들을 한번 더 붙잡고, 타워와 케이엘시시(KLCC) 공원 사이 밤의 분수쇼는 누구든 15분씩 사로잡는다.
휘황한 도시는 ‘투어’(관광)에 충분하다. ‘트래블’(여행)은 도시의 손때로 비로소 꽉 찬다. 음영의 자취랄까. 호황의 쇼핑몰과 불황의 쇼핑몰(가령 부킷빈탕의 숭아이 왕 플라자)의 대비, 21세기 ‘고급주택촌’ 건너 반세기 낡은 ‘신촌’(新村) 등등 사연과 쟁점에 아득해질 때, ‘관광상품’으로 소개되기 전인 도시혁신 실험들을 보아 기뻤다. 1940년대 극장(RexKL)을 서점·공연장 등 문화예술 허브(2021년 11월 개관)로, 110년 넘은 한때 세계 최대의 기차정비소(Sentul Depot)를 푸드코트로 개조한 곳(2021년 11월)들과 이들 공간에 숨을 불어넣는 남녀노소들. 한 온라인 서점이 조호르 등 큰 도시들에 카페·식당·전시관 기능까지 담아 예술적으로 조성 중인 오프라인 서점들은 관광벨트가 될지도 모르겠다. 다만 “도대체 책 사는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유지되지?” 17만권을 소장했다는, 쿠알라룸푸르 마이타운 쇼핑센터 내 서점에서 헤세의 책 한권이 없대서 천장만 보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마르케스, 5400원)을 발견하고 환호한 내게, 룸푸르(진흙)빛으로 지인이 한 말이다. “네가 오늘 유일하게 책 산 사람일 거야.”
쿠알라룸푸르에선 1910년 세워진 기차역(KL 레일웨이 스테이션)도 여전히 사용 중일 만큼 과거는 현재에 도착 중이다. 그 기차역, 그 도시의 일부는 또 방치될 만큼 현재가 과거를 감당 못할 지경. 분명한 건 100~200년이 생색 없이 눈앞에 펼쳐진다는 점. 페낭과 믈라카가 200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유다. 물론 반도의 장엄한 열대우림은 가없이 국토의 뼈대, 산업 양식이 되어줬다. 오래된 도시들의 탐험에 이어 트렝가누를 향해 5억년의 산맥을 넘는 7시간은 역사와 자연의 ‘현재’라는 단위가 한국인 여행자에게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나 묻게 한다.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우주가 얼마나 크고 오래됐는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멋진 일”이라며 ‘과학적 사실’의 영감을 칭송한 리처드 도킨스에게 그랜드캐니언이 그랬다면, 아시아에선 이 나라가 그럴 만하다.
여행 동안 에어비앤비와 리조트, 호스텔, 지인의 아파트 등을 이용했다. 이동하면서 숙소를 구했다. 카파스섬에는 1박 예약으로 홀로 들어가 밤바다 탓에 결국 이틀 반을 머물렀다. 챙겨 온 소설책, 정찬의 <발 없는 새>를 해먹에서 다 읽었고, 대낮 텅 빈 자투리 해변을 찾아서, 달밤을 기다려서, 헤엄치고 또 헤엄쳤다. 우리가 바다에서 왔다는 진화론은 진리니까.
트렝가누에서 나름 알려진 관광휴양지는 르당섬이다. 마침 숙소가 없었다. ‘안 된다’ 찾은 데가 카파스로, 무슬림 지역민이 북적이는 해변, 사유지라며 주로 백인들이 자적하는 해변, 그리고 중대형 리조트 앞 해변 등이 구역화된 게 독특했다. 파도는 경계 없이 일었고, 어부는 앞바다를 가로질렀다.
언젠가 말레이 정글 여행을…
이슬람예술박물관의 위엄과 세련미는 국립박물관을 압도했다. 독립 전후 중국·인도계의 영향력을 견제하며, 말레이인의 정체성을 이슬람과 말레이어에 두어 통합 균형을 꾀해온 국가의 속내를 보는 듯했다. 하지만 ‘통합’이 비빔밥 한상 차리는 일일까. 화인이 거주국에 가장 동화되지 않은 동남아 국가로 말레이시아가 꼽히는 게 현실이다. 트렝가누는 초기 중국 이주민이 적어 말레이인과 가장 유연히 섞인 곳이다. 반면 상권을 지배하는 큰 도시의 중국계 다수는 말레이어를 하지 않는다. 개인의 선악이 자리할 수 있을까. 공산주의자의 세력화를 막기 위해 영국이 1950년대 40만명의 중국인들을 강제로 몰아넣어 게토화한 거주지가 곳곳의 신촌이다. 당시 군경에 통제되던 마을 건너엔 바투 고급주택단지가 들어서 저들끼리 외부 출입을 막고 있다. 때로 22시간 통행이 금지되고, 굶주림과 죽음에 내몰린 신촌은 ‘발 없는 새’의 쉴 수 없는 운명이 강요된 모진 과거형이되 애면글면 길을 내고 이어온 ‘족적들’의 더 질긴 진행형이다.
이제 젊은이들은 독립을 기념한 므르데카 광장, 전세계 가장 높이서 휘날린다는 국기 아래 연애하고, 킥보드 타고, 웨딩촬영 한다. 히잡 밖으로 마스크, 헤드폰을 끼고 춤춘다. 데사 파크시티에선 세상의 모든 개가 뛰어놀고, 수방자야에선 사방 영어가 들려왔다.
<발 없는 새>는 동아시아가 나눠진 파괴적 운명을 소재로 했다. 하지만 결국 땅을 딛고 걷는 인간, 연이 없을 법한 길과 길이 만나 새 길을 내는 풍경이기도 하다. 말레이시아도 아시아의 그 길에 서 있다. 상반기 아주 고됐다. 새삼 묻진 말자. 오늘의 거처에서 내일 길이 시작되는 거다. 난관은 또, 또또 있을 테지, 그땐 정말 타만 느가라 깊은 우림으로 들어가보고 싶다.
현지인 인터뷰로 보는 여행정보
“뇨냐 식단과 락사, 꼭 먹어보길”
―자기소개 및 한국과의 인연?
“쿠알라룸푸르 사는 탄(Tan). 건축가다. 오래전 서울·부산을 여행했다. 몇년 전 유럽에서 석사를 마쳤는데, 기숙사 옆방 (한국인) 동기가, 난 별로 술 안 좋아했는데, 자주 들고 왔다.”
―(화제 바꿔) 꼭 가봐야 할 두 곳만 꼽는다면?
“식민, 중국인 거주 역사와 문화 다양성의 페낭. 바다·산이 어우러진 코타키나발루.”
―필수 음식 두 가지는?
“말레이시아 식재료에 중국 조리법이 더해져 이주 초기에 자리잡은 뇨냐 식단, 그리고 락사(시큼한 국물요리). 지역마다 재료가 달라 어떤 지역은 아예 다른 음식이 된다.”
―쿠알라룸푸르는 걷기 좋지 않다. 인도가 미비하다.
“차 중심이다. 덥기도 하고. (진행 차선은 영국처럼 왼쪽, 횡단 때 조심해야). 대부분 그랩(Grab) 사용한다. 우버는 없다.”
―유심은 뭐가 좋을까?
“디지(Digi)통신이 전국에서 가장 잘 터진다.”(실제 공항 쇼핑몰 내 상품 중 가격도 가장 저렴했다. 한달짜리 무제한이 35링깃이었다.)
―싱가포르도 가보았나?
“많이. 공항세도 비싸 싱가포르인조차 조호르바루(말레이시아 인접 도시, 스나이공항이 있다)에서 다른 나라로 간다.”(1965년까지 말레이시아였던 싱가포르에 15시간 경유하며 명소를 둘러보았다. 창이공항 터미널3에 24시간 짐 보관소가 있다. 경유시간이 짧다면 낮 보타닉 가든, 밤 가든스 바이 더 베이를 가겠다. 말레이시아는 자연을 가졌고, 싱가포르는 자연을 만들었다.)
추신: 안전 등 여행 경험은 처지마다 다를 수 있겠습니다. 메일로 여행 질문 주시면 더 자세히 답해보겠습니다.
글·사진 아시아 행인1 haidam3@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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