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이 다가온 '보통 일베들', 어떻게 혐오를 만드나
‘여성가족부 폐지’ 한 줄 공약, 성별 갈라치기, 문자 ‘총공’, 팬덤 정치. 2022년 두 차례 선거 국면에서 한국 정치는 온라인에서 파생된 정치 문법에 휘둘렸다. 주류 정치인들이 인터넷 여론에 감응하면서 소수자와 여성에 대한 혐오와 배제가 제도권 정치의 틈새에 스며들기도 했다.
독립 연구자 김학준씨는 이 변화의 근간에 2010년대 ‘일베(일간베스트) 현상’이 있다고 본다. 김씨는 2014년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저장소에서 나타나는 혐오와 열광의 감정동학’이라는 석사논문을 발표하며 주목받았다. 김씨는 논문에서 일베에 모인 이들이 단순한 사회 부적응자가 아니라 누구보다 체제에 순응적이고 평범을 갈망하는 이들이라고 분석했다. 그로부터 8년이 흘렀고, 일베에서 파생된 ‘소수자 배제’ 정서는 대선 캠페인에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일베의 존재감이 예전 같지 않지만, 그 영향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김학준씨는 8년 전 논문을 기반으로 데이터를 보강하고, 분석의 폭을 넓혀 최근 〈보통 일베들의 시대〉(오월의봄)를 출간했다. 그는 제도권 정치까지 확산되는 소수자 혐오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일베 현상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6월10일 그와 만나 일베 현상의 여파와 최근 인터넷 혐오 여론의 흐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왜 지금, 다시 일베인가?
일베 자체는 꺼진 불이 맞다. 그러나 일베의 영향력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20대 남자들’로 대표되는 새로운 정치적 현상과 이준석이라는 보수정당 당대표, ‘여성가족부 폐지’를 비롯한 성별 편가르기 등은 일베의 영향력과 무관하지 않다.
일베 사용자들의 ‘평범 내러티브’를 강조하고 있다.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고등학교 때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가고, 군대 다녀와서 대기업에 취업하고, 가정을 일구고 중산층 아파트에 사는 삶을 열망한다. 이들은 이걸 ‘평범’이라 여기는데, 그게 어디 쉽나. 문제는 이들이 이 경로를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적으로 간주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체제 순응적이다. 일베식 ‘평범’은 조건이 많고 상당히 엄격하다. 이 평범함을 달성하는 데 실패한다면 내가 잘못한 것이고, 성공했다면 내가 잘해서 그런 것이니 다른 사람을 무시해도 된다는 사고 구조로 이어진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사회에서 두드러진 능력주의, 공정 담론도 일베의 영향력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실제로 데이터를 업데이트하고 내용을 보강해 책으로 만들어내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이른바 ‘조국 사태’ 즈음이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공정 담론이나 능력주의가 대두되는 모습을 보면서 2014년에 했던 일베 분석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느꼈다. 능력주의의 맹아는 온라인 공간에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최근에는 일베보다 ‘에프엠코리아(펨코)’의 영향력이 더 강하다. 지난 대선에서 주요 주자들이 펨코의 반응을 살피기도 했다. 이들이 일베와 다른 점은 무엇일까?
이용자의 세대차가 존재한다. 일베에 지금 남아 있는 이들은 40대 이상이 많다. 반면 펨코는 2030 남성이 절대적이다. 혐오 표현은 펨코가 좀 덜하긴 한데, 대신 일베에 비해 중국에 대한 반발 심리가 격하게 표출되고 있다.
책에서 ‘이준석 국민의힘 당대표의 등장’을 중요한 순간으로 평가한다.
‘제도화된 일베’라 표현하고 싶다. 그동안 일베에서 파생된 온라인 혐오는 대표자가 없거나, 버림받거나, 인정받지 못했다. 그런데 이것들을 제도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 책에서는 이준석 대표를 ‘일베가 취할 수 있는 가장 정돈된 형태의 인물’로 표현했다. ‘평범 내러티브’라는 일베의 내용과 ‘내로남불과 냉소’라는 일베의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능력주의라는 일베식 비전을 실현하려 한다. 그가 “공부 열심히 해서 장학금 받고, 최고의 학교를 다니고, 나중에 제1야당 당대표까지 할 수 있으면 그게 공정”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이런 한국적인 능력주의가 튀어나오는 논리가 일베를 분석한 결과와 흡사했다. 이준석은 자신의 ‘성공 스토리’를 통해 스스로를 능력주의의 롤모델로 위치시킨다.
일베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제도권 정치로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게 될까?
여성혐오적 선동을 정치적 수사로 만들어내면서 그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모습이 세상에 등장했다. 대표자가 나타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책 제목처럼 ‘보통 일베들의 시대’가 드디어 왔다고, 탄핵을 전후로 일베 현상이 사라진 게 아니라 이제야 세상에 나타난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다. 결국은 이들의 논리를 어떻게 파훼하느냐 계속 고민해야 한다.
일베식 혐오에 대해 진보 지식인들이 게으르게 대응했다는 대목도 있다.
(일베식 혐오에 대해) 항상 해오던 교과서적인 말로는 아무도 설득하지 못한다. “쟤네 일베다”라고 낙인찍으며 인상비평으로 대응하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일베식 혐오에 단호하게 “아니다. 틀렸다”라는 말을 하면서도, 저런 혐오의 배후에 있는 불만을 캐낼 생각을 해야 하는데, (진보적 지식인들이) “어, 너 일베, 끝” 이런 식으로 게으르게 대응한 것 아닌가 싶다. 그래도 최근에는 젊은 연구자들 사이에서 충실한 데이터에 기반을 둔 다양한 이론화가 시도되고 있다.
눈앞에 도래한 ‘보통 일베들의 시대’에 대응하기 위한 제도적 대안은 있을까?
더 많은 ‘소셜 믹스’가 필요하다. 자기 안의 세계에서 자기랑 비슷한 사람들끼리 머물러 있을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하고, 들러붙고, 내쳐지고 하면서 관계성 안에서 모난 부분이 무뎌진다고 믿는다. 사람들은 조금 더 서로 부대낄 필요가 있다. 더 많은 대면이 필요하다.
김동인 기자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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