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나온 책] 이제 둘째딸들의 목소리를 들어라

시사IN 편집국 2022. 7. 1. 06:2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차녀 힙합 이진송 지음, 문학동네 펴냄

“차녀들이여, 이제 우리가 MIC를 쥘 차례다. 소외된 차녀들 왼발을 한 보 앞으로.”

가족을 심적으로 책임진다는 ‘K-장녀’ 서사가 나왔을 때 주변의 K-장녀들이 은근 부러웠다. 사람을 두루 챙기는 리더십을 볼 때 ‘역시 장녀의 자질인가!’ 싶었다. 그에 비해 차녀 서사는 서러움 덩어리다. 백일 사진이 없는, 언니가 입었던 옷을 물려받는, 엄마가 다른 아이 엄마로 불리는 그 미묘한 서러움. 자전적 이야기를 시작한 저자는 울분과 인정욕구를 동력 삼아 집 밖의 세계를 일궈나가는 둘째 딸들의 이야기를 썼다. 빠른 눈치로 소외된 사람을 세심히 챙기고, 갈등 상황을 잘 중재하는 것도 차녀들의 특징이다. 가족이라는 ‘정치적 장소’에서 자기만의 세계를 확장해간 딸들의 서사가 등장하고 있다.

 

 

 

 

 

병든 의료 셰이머스 오마호니 지음, 권호장 옮김, 사월의책 펴냄

“우리는 치료하고 때로는 과잉 치료하지만 치유하지는 않는다.”

아일랜드에서 의대를 마치고 영국에서 소화기내과 전문의로 환자들을 진료했던 의료계의 원로가 현대 의학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저자의 관점은 의학이 오히려 건강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이반 일리치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가 보기에 환자, 의사, 그리고 사회 전체가 의산 복합체의 희생자이자 봉이며 노예다. 거대 제약회사뿐만 아니라 의학 연구, 전문가 집단도 비판 대상이다. 소위 자연주의적인 접근법으로 모든 인공적인 의료 행위를 거부하자는 주장과는 거리가 멀다. 책은 ‘요즘 사람들은 너무 오래 산다’라는 도발적인 챕터로 출발한다. 그는 “노화와 죽음에 대해 새로운 화해를 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한다.

 

 

 

 

 

마음이 하는 일 오지은 지음, 위고 펴냄

“나는 이제 보이는 것들 너머의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롤모델을 찾아 헤매다 보면 롤모델 비슷한 무엇이 되는 날도 온다. 꾸역꾸역 살아온 날들 덕분이다. 그리고 대단해 보였던 어떤 사람들에게도 ‘잠 못 드는 밤’이 있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된다. 〈마음이 하는 일〉은 스물일곱에 데뷔한 뮤지션 오지은이 ‘분류상’ 중년 여성이 되기까지 지나온 시간의 마디마디를 살펴 기록한 책이다. 후배들에게 “버티면 괜찮아진다”라는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버틴 날들을 ‘흑역사’로 간단히 요약하지도 않는다. 어떤 각오 앞에 스스로를 몰아세우지 않고, 변화 앞에 흔들리면서도 나아가고자 하는 다짐을 따라 읽다 보면 그 마음이 가는 길을 좌표 삼고 싶어진다.

 

 

 

 

 

타인의 기원 토니 모리슨 지음, 이다희 옮김, 바다출판사 펴냄

“‘진실’이라는 말도 그것의 부재가(모호성이) 존재보다 강렬해서 따옴표에 가두어야 할 정도다.”

‘폭력’과 ‘낭만’이라는 단어는 얼마나 가까운가. 저자는 노예제도가 그 두 단어를 바퀴 삼아 굴러왔다고 말한다. 타인은 사르트르가 썼듯 ‘지옥’이지만 동시에 ‘발명’되는 것이다. 제도는 어렵게 사라졌지만 인종차별은 굳건히 살아남았으며, 모든 차별은 권력의 결과물임을 역사와 문학을 통해 사려 깊게 짚어낸다. 여전히 우리가 그 손아귀에 있다는 것도. 흑인인 동시에 여성이라는 정체성은 스스로의 삶을 날카로운 질문 위에 세워야 하는 일이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경계, 가장자리, 울타리 바로 앞은 언제나 가장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지는 곳”이기도 해서 소수자는 세계의 ‘목격자’가 된다.

 

 

 

 

 

난생처음 베이킹 김보미 지음, 티라미수 펴냄

“비밀스러운 해방의 공간에 들어간 듯 오직 만들고 굽는 데만 마음을 쏟았다.”

마감을 마치는 시간은 새벽 3시. 당장 곯아떨어질 것 같지만 그래도 가장 하고 싶은 것은 베이킹이다. 아무 생각 없이 밀가루를 치대고 좋아하는 재료들을 양껏 넣고, 저울에 재료를 올려 ‘정량’이라는 것을 세심하게 맞추고. 베이킹의 매력은 아마도 단계별로 이루어지는 정밀하고 성실한 노동, 그 이후에 온 집에 퍼지는 고소한 향기일 거다. ‘행복한 빵순이’인 저자는 베이킹을 하며 ‘실패해도 계속 좋아할 수 있는 대단한 마음’을 알게 된다. 말랑거리는 반죽을 조물거리고, 부드러운 반죽을 조금 떼어 둥글리고, 갓 구운 빵의 향이 세상 모든 향을 뛰어넘을 때! 이 정도면 뭐든 괜찮다는 위로를 받는다.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 김은정 지음, 강진경·강진영 옮김, 후마니타스 펴냄

“치유만이 최선이라는 규범에 저항할 때 (…) 대안적인 존재론이 열릴 수 있다.

치유는 어떻게 폭력이 될까. 치유란 상처나 외상에서 회복해 손상 이전의 정상성으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에서는 그에 더해 아픈 몸에서 건강한 상태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면에서는 도덕적 당위가 아니라 정치적인 개념이기도 하다. 장애와 질병을 당연히 없애야 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사회에서 치유는 정상과 건강의 테두리를 만들어내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장애와 질병에 대한 공포는 이를 부정하려는 노력으로 이어진다. 시러큐스 대학 여성·젠더학과 부교수인 저자가 여성주의 장애학의 관점에서 한국의 역사적 맥락을 짚는다. 시작은 황우석이다.

시사IN 편집국 editor@sisain.co.kr

▶읽기근육을 키우는 가장 좋은 습관 [시사IN 구독]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