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와 시간성을 무너뜨린 건축가 조경래(上)

효효 2022. 7. 1. 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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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효 아키텍트-133] 상경대학을 졸업한 건축가 조경래는 기술을 먼저 배웠다. 문화재청 문화재수리기술 '단청'과 '보수' 자격증을 갖고 있다. 건축에서 '보수(補修)'는 '낡거나 부서진 것을 고친다'는 뜻이나 고(古)건축에서 보수는 복원, 신축, 개축도 포함하는 개념이다. 목조이든 석조이든 기술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그는 현장에서 기술을 배우고 나서 미술사(고건축 분야) 공부를 했다.

우리나라 전통 고택은 봉우리가 보이는 방향으로 대문이나 마당을 배치했다. 반대로 바위 절벽이나 흉한 산이 보이는 곳은 건물이나 숲을 조성해 '차폐(遮蔽)'한다.

하회마을 종택인 양진당(보물 307호)은 단정한 필봉(마늘봉)이 보이도록 대문을 배치했다. 양진당은 크게 안채, 사랑채, 행랑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랑채가 정자의 모습을 띠고 있는 가옥형 정자이다.

충효당(보물 414호)은 앞산이 옆으로 길게 늘어져 볼썽사납다. 앞을 긴 행랑채로 가로막고, 대문으로는 반듯한 일자(―字)형 봉우리가 보이도록 배치했다. 충효당은 'ㅁ'자형 건물인 안채와 '-'자형으로 달아낸 사랑채, 12칸에 이르는 행랑채와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충효당 전경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은 목조에 기와를 얹은 주택 형식인 '한옥'이 완성된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당대 상류층 주택 단지이다.

조경래는 양진당을 사당을 제외하고 전면 해체 보수하였으며 충효당은 일부 부분 해체 보수하였다. 수년 뒤인 2010년 8월 하회마을은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에 앞서 경북 안동시 원주변씨 간재종택도 연목 이상 해체 후 부식재를 교체하는 보수를 했다(2005). 종택은 소유와 보전 간 충돌이 많다. 내부를 완전히 변형하지 않는 한 편리성 위주로 보수를 허용하는 게 최근 추세이다.

원주변씨 간재종택 전경
건축가들은 비례를 잘 얘기하지 않는다. 답도 없고 어려워서이다. 일반 건축물은 시공 과정에서의 오류나 수정도 비례를 찾는 과정으로 본다. 건축에서 '아름답다'는 표현은 맞아떨어지는 수치로 평가하는 게 곤란하지만 수치를 대입하지 않을 수도 없다. 비례는 직관이나 감각이다. 형태, 크기, 색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고건축과 전통 건축 전문인 조경래는 구조에서 비례가 나온다고 말한다. 가령 한옥에서 창방(昌防; 기둥머리를 연결하는 부재) 등 각종 가로 인방(引枋)을 여백의 비례를 위한 것으로 이해하는 이가 있다. 조경래는 목 구조인 집이 '돌아가는' 걸 막아주는 실질적인 역할을 한다고 본다.

일각에서 목 구조 집의 한 단면으로 이해하는 '가구(架構)'도 그는 도리와 대들보가 들어간 공간 형성 목적의 골격 구조로 이해한다.

원주변씨 간재종택 뒷모습
기둥의 구조상의 안전성과 시각상의 착오를 시정하고자 나온 배흘림(entasis) 양식은 기둥의 하부 1/3이 가장 굵다. 조경래는 이를 기와 지붕의 하중을 전달하는 한 방식으로 본다. 배흘림을 적용하는 기둥은 대체로 길이가 짧다는 점을 강조한다.

최순우의 <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와 같은 책은 미학적 관점에서만 서술이 되었다고 본다. 비례의 원리가 적용되는 '기둥 굵기'에 대한 이해는 구조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현장에서는 구조가 전승되고 있으나 대학에서 고건축 박사 심사를 하는 문화재위원조차 그러한 현장을 모른다고 한다.

프리츠커상을 받은 중국 건축가 왕수(王澍·Wang Shu, 1963년~ )는 중국의 대학 건축학과 커리큘럼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1980년대에 살아 있는 현장의 장인 시스템을 주목했다. 그는 1990년부터 1998년까지, 옛 가옥의 해체 현장에서 매일 아침부터 한밤중까지 장인들과 같이 먹고 자고 일하면서 전통건물의 구조와 설계를 배웠다. 장인은 중국 사회의 하류층에 속하는 이들이다. 그는 과거의 형태를 답습하기보다는 중국 전통 건축에 담긴 정신을 되살려냈다고 평가받았다.

건축학도가 우리 고건축에 무지한 이유는 겨우 한 학기 동안만 한국건축사를 배우며 현장 경험은 전혀 쌓지 않기 때문으로 본다.

조경래는 <조선시대 3칸 불전건축의 비례체계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전통목조건축물은 일련의 비례체계가 있었으며, 전통으로 내려오며 정립된 구조적인 의미에 기초한 모듈(module)이 적용되었다고 본다. 건물의 규모와 비례에 따라 하중 지지력(휨 강도, 응력)의 차이가 있었으며, 이에 따른 본부재(木部材)의 모듈이 다르게 적용되기에 구조부재(構造部材)와 일련의 체계가 정해졌다고 본다.

건물의 규모와 기능, 위계 등은 하중 지지력이 감안된 주칸(柱間)과 칸수(間數), 평면 유형에 따라 결정된다. 이 주칸은 상부(上部) 지붕 가구(架構)와 형태, 입면의 비례, 건물의 외관 등의 결정에도 직결된다는 것을 분석하였다.

주칸과 주고(柱高), 공포(?包: 처마를 받치려 기둥머리에 짜맞추어 댄 나무쪽들)의 높이와 내외출목(內外出目)길이의 비례 등은 민도리식, 익공식 등 공포 유형별로 차이를 보인다. 이는 돌출된 처마와 내부(內部)의 상부 가구 구조를 지탱하여 전체 하중을 캔틸레버(외팔보)로 받는 공포의 구조적인 역할에 기인한다. 비례체계를 알면 가구의 물매(수평 경사), 각부의 입면 비례, 합각(合閣)의 위치, 목부재(木部材)의 직경 등 건축 구조·의장을 계획하면서 건물 성격과 위계, 용도, 맥락(주변지세)에 따라 고려되는지를 안다.

강화도 전등사 약사전(藥師殿)은 전등사 대웅보전과 함께 1621년도에 지어졌다. 400년 된 건물이다. 그런데 약사전 정면에서 봤을 때 '왼쪽 앞으로' 살짝 기울어 있다. 전등사 약사전 처마는 곡선미가 빼어나다. 특히 뒤쪽 처마는 중앙부가 보통 사찰의 전각보다는 꽤 아래로 처졌다.

조경래는 국보와 보물급 건축물은 눈에 띄는 하자에도 불구하고 비례 체계를 최우선으로 본다고 말한다.

화가 박생광(1904~1985)은 단청의 강렬한 빛깔로 불화, 무속화 등에서 발견한 토속적인 이미지들을 화폭에 담았다. 조경래는 이처럼 문화예술의 타 장르에까지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단청도 비례로 풀 수 있다고 말한다. 건물의 크기와 위계에 따라 건물을 구성하는 각 부재의 크기는 달라지기에 단청도 주문양(主文樣)에 부문양(副文樣)이 확장되고 또한 채색도 다채로워지기 때문이다.

단청은 가칠(假漆)·긋기·모루(毛老) 등이 있다. 가칠은 선이나 무늬를 그리지 않고 바탕색만으로 마무리한다. 가칠 위에 먹 선 또는 색 선을 그어 채색하는 게 긋기 단청이다. 모루는 마무리면 기타 적당한 곳(서까래, 출목 등의 마구리)에 간단한 문양을 넣는 단청이다.

단청의 안료는 대부분 수입산을 쓴다. 수백 년 전에도 중국산을 수입했으나 지금은 일본산을 많이 쓴다.

미술 재료에 강한 일본은 짜맞춤도 빈틈이 없다. 우리는 기와를 얹는 과정도 듬성듬성하여 틈이 있다. 다만 원거리에서 보면 비례가 맞는다. 한국의 전통 건축은 전체를 구조적으로 보강하는 창의력을 발휘한다. 문제는 현장 장인들을 지휘하는 건축가(기술자)의 능력에 따라 건축의 질이 결정된다는 점이다.

일본은 문화재 보수를 지역 장인들이 담당하나 우리는 경복궁을 보수하던 이가 지방의 사찰까지도 담당하는 폐단이 있다. 목조 건축의 총감독인 도편수도 전통 계보와 아닌 게 있다고 말한다.

[프리랜서 효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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