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디지털 플랫폼 통한 지속적 환자 관리가 미래 병원 할 일"
[인터뷰]
명함엔 ‘명지의료재단 이사장’이라고 적혀 있지만 그의 정체는 쉽게 단정하기 힘들다. 무대 위에서 바이올린을 켜는가 하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로 적극 소통하고 의학 전문지 청년의사의 발행인이기도 하다. 외과 전문의지만 신종플루,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코로나19 등 감염병이 한국에 들이닥쳤을 때 병원 내 상황을 진두지휘하며 경기 북부 일대 방역을 책임지는 사령관으로 꼽히기도 한다. 병원을 ‘치유의 공간’으로 바꾸고 싶다는 신념으로 한국에서 처음 병원 로비와 강당, 병실 등 곳곳에서 환자와 의료진을 위한 음악 공연을 열었고 코로나19 환자들에게 음악 치료를 진행하기도 했다. 맨손으로 경기 일산과 충북 제천 등을 합쳐 총 10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을 일군 이왕준(57) 명지의료재단 이사장 이야기다.
이 이사장은 ‘병원 치료하는 의사’로도 통한다. 개원도 취업도 해 본 적 없는 34세의 이왕준은 1998년 부도 직전이던 인천사랑의료재단(구 세광병원)을 인수해 3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았다. 2009년 경영난을 겪던 경기 고양시 명지병원을 인수해 경기도 북부권역의 응급의료센터, 감염병과 재난 의료의 거점 병원으로 바꿔 놓았다.
“인턴 시절 의학 전문지 청년의사를 창간해 의료 현장의 여러 문제를 제기했는데, 그때 선배 의사들이 ‘직접 경영해 봐라, 현실이 어떤지’라고 말하더군요. ‘직접 보여줘야 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운 좋게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와 금융 위기로 인천사랑병원과 명지병원을 인수할 기회가 왔고 놓치지 않았죠.”
그가 기회를 놓치지 않은 데는 감염병의 흐름을 보는 감각과 철저한 준비성이 있었다. 민간 병원은 정부 지원을 받아도 음압 격리 병상 구축을 반기지 않는다. 음압 격리 병상이 있고 감염병 거점 병원이 되면 다른 환자들이 방문을 꺼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명지병원은 2009년 신종플루 때부터 감염병을 일선에서 다뤄 왔다. 다른 병원에서 받지 않겠다던 음압 격리 병상을 자진해 받겠다고 했고 메르스가 터지기 1년 전부터 원내 오염과 추가 전염을 막는 신속대응팀(CDRT)을 만들어 모의 훈련을 했다. 병원 감염의 주요인으로 지적돼 온 긴 가운과 넥타이도 과감히 벗어던졌다. 의사들은 기존보다 40cm 이상 길이가 짧아진 양복 형태의 심플한 재킷 가운과 나비넥타이(보타이)를 착용하고 진료에 나섰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단 한 건의 2차 감염 없이 메르스 환자 5명을 완치시켰다. 2014년 6개밖에 안 됐던 음압 격리 병실은 현재 34개로 늘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명지병원의 준비는 빛을 발했다. 2020년 1월 25일 저녁 한국 3번 확진자가 명지병원에 이송됐다. 명지병원에선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았다. 당시엔 코로나19 사태는 말 그대로 ‘신종’ 바이러스였기 때문에 어떤 정보도 없었다. 이튿날 오전 8시 확진 결과가 나오자 이 이사장은 2시간 만에 전 직원에게 현재 상황을 알리고 걱정하지 말라는 문자를 보냈다. 입원 환자에게는 직접 찾아가 설명했다. 당시 명지병원은 열이 나는 환자는 모두 응급센터에 소속된 음압 격리 병상에 머무르게 했기 때문에 원내 감염도 없었다. 옆 나라에서 감염병이 발생했고 한국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다면 첫째는 아니더라도 둘째, 셋째에는 명지병원에도 환자가 올 수 있다는 판단으로 감염병 대응 체제에 돌입했기 때문이다. “당시 오전 11시에 코로나19 브리핑이 있었다. 직원과 환자들에게 브리핑 전에 먼저 사실을 알리고 투명하게 설명하는 것이 신뢰를 얻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코로나19 첫해 정부 지원금 40억원을 뺀 명지병원의 순손실액은 120억원이다. 하지만 이듬해인 2021년 명지병원은 210억원의 흑자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명성이 올라간 만큼 환자들이 몰렸고 재택 치료 지원 등에 발 빠르게 대응하며 수익을 냈다. 최근엔 한국에서 처음으로 코로나19 후유증 클리닉을 개설, 이곳에 현재까지 3100여 명의 환자가 찾았다. “격리 해제 이후에도 한 달이 넘도록 숨이 가쁘고 호흡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환자들이 있다. 하지만 후유증 조사는 시작한 지 얼마 안 됐고 치료 지침도 없다. 후유증 클리닉을 개설해 1240명의 데이터를 확보하고 논문을 낸 이유다.”
이 이사장을 만나 뉴 노멀과 명지병원의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병원의 뉴 노멀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감염 대응 시스템입니다. 첨단 장비를 구축하고 암 수술을 잘하는 병원도 중요하지만 ‘감염 관리를 잘하는 병원’이란 이미지도 중요해졌습니다. 병원들은 땜질식이 아니라 상설적인 감염 대응 시스템을 구축해야 합니다. 동선‧공간 분리, 인력·병상 등을 감염병 대응 시 응급으로 바로 전환할 수 있는 역동적인 시스템을 말합니다. 병원 스스로 트랜스포머 같이 자기 탄력성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죠.”
또다른 요소는 무엇인가요.
“그동안 대형 병원의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해 환자와 보호자가 몰리고 기다리는 상황이었다면 뉴 노멀에선 대형 병원 밖으로 의료 서비스가 뻗어 나가야 합니다. 병원 치료와 홈 케어의 경계선이 없을 정도로 전 주기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엮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위해 통합 의료 시스템이 필요하죠. 대형 병원이 있고 통합 의료 시스템 안에 동네 병원들이 들어와 같이 환자를 관리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만성 질환 환자는 90일 중 하루만 병원을 찾아도 됩니다. 다만 짚고 넘어갈 점은 ‘병원을 안 가도 된다’는 것이 아니란 점입니다. 공백을 채우면서 연속적인 환자 관리가 가능할 때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죠. 다시 말해 병원 밖에서도 환자를 관리하는 통합적 서비스가 제공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맞춤 의료’라고도 하죠. 미국 등에선 대형 병원과 동네 병원이 하나의 그룹으로 맞춤 의료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물론 한국은 아직 제도적으로 뒷받침돼 있지 않은 상황입니다.”
구체적인 예가 궁급합니다.
“디지털 헬스케어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디지털 헬스케어는 통합 의료 시스템의 한 방법이에요. 모바일 플랫폼이 될 수도 있고 메타버스 플랫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핵심은 오프라인에선 경쟁하더라도 온라인에선 전문가에게 즉시 케어를 받을 수 있는, 통합적 일상생활 케어가 이뤄져야 합니다.”
디지털 헬스케어 시대를 준비하고 있나요.
“먼저 코로나19 상황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명지병원은 2020년 8월 원격으로 건강 상담을 지원하는 MJ버추얼케어센터를 열었습니다. 명지병원 의료진은 멤버십 가입 환자들에 대해 비대면 진료 시스템을 활용, 24시간 상시 관리 체제를 유지합니다. 정기적인 건강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정신 건강 고위험군을 관리합니다. 비대면으로 진료·처방전도 발행하고 있죠. 오미크론 대유행 시기엔 버추얼 케어 시스템을 재택 치료에 활용했습니다. 환자 입원 결정과 병상 배정, 이송 요청, 격리 해제 판정 등이죠. 고양시 외에도 광명 구리시까지 포함하면 150만 명의 재택 치료를 지휘한 셈입니다. 하루 2000명까지 수용 가능했습니다.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반년간 10만 명의 환자를 돌봤습니다.”
버추얼케어센터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긴급 의료 상담을 우선 오픈했지만 버추얼케어는 좀 더 포괄적인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당뇨병 관리나 건강 증진 상담을 꼭 병원에서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병원을 방문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지속적인 케어’가 이뤄지느냐는 겁니다. △웨어러블 디바이스를 통해 환자의 상태를 파악하고 △단순 상담 진료 및 만성 질환자들의 일상적인 생활 관리와 뇌졸중 등 고위험군 환자의 상시 모니터링 △정신 상담 △심정지 등 응급 상황 발생 시 골든타임 확보 등 통합적이고 연속적인 케어를 환자에게 제공하는 것이 버추얼케어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이러한 서비스는 한국에 국한하지 않고 전 세계에 제공하려고 합니다. 버추얼케어를 구현하는 플랫폼 베타 버전과 운영하는 회사(가칭 큐로스콥)를 오는 9월쯤 공개할 예정입니다.”
최근 로봇이 병원에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한국 의료계에서 도입하는 로봇은 약품을 배달하는 등 물리적인 일손을 덜어 주는 정도입니다. 1세대라고 볼 수 있죠. 로봇의 도입을 스마트 병원으로 연결한다면 단순 노동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AI)을 의료 서비스에 활용하는 수준이 돼야 합니다. 예를 들면 AI 스피커를 병실마다 둬 환자들이 궁금한 사항을 AI를 통해 알 수 있도록 하거나 의료진과 AI가 수술을 같이 진행하는 것 등이 있죠.”
명지병원도 AI 등 로봇 시스템을 구축하나요.
“명지병원은 경기 고양시와 충북 제천시에 이어 하남시에 셋째 병원, 충남 내포 신도시에 넷째 병원을 계획 중입니다. 새로 건립하는 병원뿐만 아니라 기존의 병원들도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함께 로봇 등 신의료 기술을 접목할 계획입니다.”
김태림 기자 t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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