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의 경고, 어촌 소멸]③ 살고 싶은 섬?.."기반 시설 없으면 소멸"
■ '살고 싶은 섬'의 생활 기반 시설은?
경상남도는 2020년부터 해마다 섬 2곳을 '살고 싶은 섬'으로 선정하고 있습니다. 주민 주도형 마을 사업을 지원해 공동체를 활성화하고, 주민의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해 섬의 인구 소멸을 막겠다는 취지입니다. 이 사업의 핵심은 기반 시설 확충에 머물던 기존의 섬 개발에서 벗어나 섬 고유의 자원을 활용해 섬마을을 가꾸는 것입니다.
섬의 고유 자원인 둘레길이나 탐방로, 숲 등을 가꿔 관광 자원화하고 섬의 잠재가치를 발굴해 지속할 수 있는 섬 발전을 이루는 게 목표인데요. 경상남도는 '살고 싶은 섬'으로 가꾸기 위해 노후 주택 수리와 공중화장실 설치 등 정주 여건도 개선하기로 했습니다.
섬 한 곳에 3년 동안 30억 원씩 투자할 계획인데요. 문제는 '살고 싶은 섬' 사업에는 정작 물 공급이나 교육, 의료 등 기본적인 기반 시설 확충에 대한 계획이 없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살고 싶은 섬'의 생활 인프라가 인구 소멸 방지에 도움이 되는지 확인해 보기 위해 취재진이 직접 '살고 싶은 섬'으로 찾아가 주민들을 만나봤습니다.
■ '살고 싶은 섬' 추도, '물 부족'으로 주민 고통
우선 경상남도가 올해 '살고 싶은 섬'으로 선정한 통영시의 추도에서 문경자 씨 부부를 만났습니다. 문 씨 부부는 경남 창원에 살다가 추도에서 바라본 풍경에 반해 추도로 귀촌했는데요. 추도에 땅을 사서 집을 지은 끝에 올해 초부터 섬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만반의 준비를 했지만, 본격적으로 섬에서 살아보니 육지에서 느낄 수 없었던 불편한 점이 많았습니다. 섬을 오가는 배편도 적은 데다 유람선 크기도 작아 섬으로 들어올 때마다 차를 싣지 못할까 봐 불안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불편한 건 '물 부족'이었습니다. 부부는 추도에 지방상수도조차 연결되지 않아 빗물을 받아 쓰고 있었는데 봄 가뭄 탓에 빗물조차 없었습니다.
■ 광역상수도 없는 통영 섬 17곳…가뭄으로 식수난 우려
도시에서 살다가 섬으로 귀촌한 사람들만 불편한 게 아닙니다. 추도에는 지하수를 마시는 물로 사용하는 소규모 수도시설이 설치돼 있는데요. 올해 기록적인 봄 가뭄으로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추도의 일부 주민들은 물이 남아있는 다른 마을로부터 제한급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박현여 추도 대항마을 이장은 마을 주민들이 물이 남아있는 인근 마을로 가서 1.8ℓ 생수병에다가 물을 담아오는 생활을 두어 달 정도 했다고 말합니다. 물이 부족하다 보니 생수병 두 병으로 샤워하고 한 병은 마시는 생활을 이어갔다는 겁니다.
이렇게 기본적인 물 공급조차 원활하지 못하다 보니 수십 년 전 1,000명대였던 주민은 지금 140여 명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추도의 광역상수도 설치는 이제서야 추진되고 있습니다.
섬마을 식수난은 추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통영시 욕지도의 마을 10곳, 950여 가구의 식수원은 욕지저수지입니다. 욕지도 주민들은 올해 가뭄이 심해지자 지난 3월엔 기우제를 열기도 했습니다. 사람이 살고 있는 통영시의 섬 41곳 가운데 광역상수도가 연결되지 않은 지역은 17곳으로 거주 주민은 2,400여 명입니다.
■ 경남 소재 40개 섬, 의료시설 없어 병원선에 의존
경남의 또 다른 '살고 싶은 섬'인 남해군의 조도와 호도의 주민들은 의료시설이 없어 곤란을 겪고 있습니다. 간호사 1명이 근무하는 보건진료소조차 없습니다. 조도와 호도의 주민 70여 명 가운데 57명이 50대 이상인데, 고혈압과 당뇨 등의 기저질환을 갖고 있는 고령층이 많습니다. 섬의 주민들은 한 달에 한 차례 오는 병원선을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습니다.
조도와 호도처럼 마땅한 의료시설이 없어 병원선이 다니는 경남의 섬은 모두 40곳입니다. 이 40곳 주민은 2,500여 명으로 절반이 고령층입니다. 대다수가 기저 질환자여서 응급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지만, 응급의료시설 접근성은 낮습니다.
■ 어촌 등 외곽지역 대부분 응급의료시설 접근 취약
위의 지도는 응급의료시설까지 가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 지 나타낸 현황도로 붉은색이 진할수록 접근성이 좋습니다. 대다수 어촌은 물론 섬 지역이 모두 30분 안에 응급의료시설에 도착할 수 없는 취약지역입니다. 섬에서 응급 환자가 발생하면, 보통 해양경찰과 소방당국이 배를 통해 육지의 응급의료시설로 옮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경남 남해군 남면 등 면 지역 9곳의 주민 18,000여 명은 30분 안에 응급의료시설에 도착할 수 없습니다.
경남의 섬 지역의 응급환자 이송 시간을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인해 봤습니다. 통영해경은 평균 51분, 사천해경은 71분, 경남소방은 69분이 걸렸습니다. 문제는 이 이송 시간이라는 것이 응급 환자를 응급의료시설까지 옮기는 시간이 아니라 육지의 항구 등에서 기다리는 구급차까지 옮기는 시간이라는 겁니다.
중증 외상의 골든타임은 1시간, 심혈관 질환은 2시간, 뇌졸중은 3시간입니다. 이 시간 안에 환자가 제대로 된 의료 처치를 받아야 생존 가능성이 커집니다. 하지만 섬 지역 응급 환자 이송에 걸리는 평균 시간을 보면 중증 외상과 심혈관 질환 환자의 골든타임은 지키기 어려워 보입니다.
■ "살고 싶은 섬 되려면 생활 기반 시설 확충해야"
경상남도는 3년 전, 응급의료취약지역의 환자 이송 시간을 줄이기 위해 '닥터헬기' 도입을 약속했습니다.섬 지역 주민들의 응급의료시설 접근성을 개선하기 위한 차원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닥터헬기에 탑승할 의료진조차 구하지 못했습니다. 의료진들이 헬기 탑승을 꺼려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헬기 착륙장이 있는 경남의 섬의 7곳에 불과해 닥터헬기가 도입된다고 해도 대다수 섬에는 착륙조차 할 수 없습니다.
'인구소멸지수'는 숫자가 작을수록 소멸 위험성이 크다는 것을 뜻합니다. 섬 지역은 0.234로 어촌 0.303, 농촌 0.341보다 더 낮아 가장 빨리 소멸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습니다. 특히, 다리가 연결돼 있지 않은 섬 400여 곳의 인구는 현재 10만 명이 넘지만, 2060년쯤이면 절반 수준인 52,000여 명으로 감소할 것으로 추산됩니다. 섬 400여 곳 가운데 60여 곳이 무인도가 되고, 주민 36.9%가 65살 이상 고령층일 것이 될 것이란 전망입니다.
취재진이 만났던 섬 주민들은 무엇보다도 식수와 의료, 교육, 교통 등 기본적인 기반 시설을 확충해야 섬의 인구 소멸을 막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살고 싶은 섬'을 만들기 위해 관광 자원을 개발하는 것도 좋습니다. 다만, 생활 기반 시설부터 개선하는 노력이 있어야 섬에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입니다.
다음 순서에는 대부분 1인 가구에 중·장년층인 귀어 인구 실태를 보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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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석 기자 (cjs@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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