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와 방황, 9년의 기다림..드디어 ML 마운드 밟은 마크 아펠[슬로우볼]

안형준 2022. 7. 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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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안형준 기자]

필라델피아 필리스는 6월 30일(한국시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홈경기에서 1-4로 패했다. 필라델피아가 3점차로 끌려가던 9회초, '패전처리'를 위해 등판한 투수가 애덤 듀발(ATL)을 삼진으로 돌려세우자 시티즌스 뱅크 파크 관중석에서는 큰 박수와 함성이 나왔다. 투수는 안타 1개를 허용했지만 9회초를 단 10구만에 깔끔하게 막아낸 뒤 마운드를 내려왔다. 마운드를 내려오는 투수를 향해 관중들의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그는 바로 1991년생 우완투수 마크 아펠이었다. 올해로 30세. 다음달이면 31세 생일을 맞이하는 그는 이날 빅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누구보다 간절했던 데뷔전이었다.

아펠은 평범한 '늦깎이 빅리거'가 아니다. 메이저리그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특급 유망주였다. 2009년 고교 신인으로 참가한 드래프트에서 15라운드(DET) 지명을 받자 스탠포드 대학교 진학을 선택한 아펠은 대학리그 최고의 투수 자리에 오른 뒤 2012년 신인드래프트에 다시 참가했다.

당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갖고 있던 휴스턴 애스트로스가 가장 먼저 아펠의 이름을 부를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아펠은 휴스턴 측이 상한으로 제안한 계약금 600만 달러에 만족하지 못했다. 드래프트 계약금 슬롯머니를 전체 1순위 지명자에게 모두 쏟아부을 수 없었던 휴스턴은 결국 아펠보다 3살 어린 고교 유격수를 전체 1순위로 지명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휴스턴이 아펠 대신 전체 1순위로 부른 이름은 바로 카를로스 코레아였다.

600만 달러도 거절한 아펠을 겁없이 지명한 구단은 전체 8순위 지명권을 행사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였다. 피츠버그는 아펠에게 380만 달러의 계약금을 제시했지만 아펠은 이를 거절하고 스탠포드 대학교로 돌아갔다. 그리고 2013년 신인드래프트에 다시 참가해 기어코 635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아내며 입단계약을 맺었다. 지명 순위는 전체 1순위. 그를 지명한 구단은 1년 전 '퇴짜'를 맞았던 휴스턴이었다. 그리고 아펠의 에이전트는 스캇 보라스였다.

2012-2013년 신인드래프트에는 엄청난 선수들이 참가했다. 코레아를 비롯해 바이런 벅스턴, 케빈 가우스먼, 맥스 프리드, 루카스 지올리토, 코리 시거, 마커스 스트로먼, 호세 베리오스(이상 2012), 크리스 브라이언트, 존 그레이, J.P. 크로포드, 팀 앤더슨, 마르코 곤잘레스, 애런 저지, 션 마네아(이상 2013) 등 메이저리그에서 스타로 떠오른 수많은 선수들이 2012-2013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지명을 받았다. 아펠은 이들을 모두 제치고 2년 연속 전체 1순위 평가를 받은 '특급 중의 특급' 유망주였다.

두 팀이나 '퇴짜'를 놓고 다시 참가한 드래프트에서도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았다. 이제 휴스턴과 함께 메이저리그를 지배하는 투수로 성장하는 일만 남은 것 같았다. 하지만 아펠의 앞에 펼쳐진 것은 '탄탄대로'가 아니었다. 아펠은 싱글A에서부터 기대와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였고 더블A와 트리플A에서도 고전했다. 휴스턴은 결국 2015년 겨울 켄 자일스를 영입하며 필라델피아로 아펠을 보냈다.

새 팀에서는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아펠은 어깨, 팔꿈치 등 부상에 시달리며 휴스턴 산하에 있을 때보다 더 성적이 떨어졌다. 세상 무서울 것이 없던 '특급 재능'으로 평가받았던 아펠은 거듭된 실패에 좌절했고 급기야 2018년에는 '야구를 떠나있고 싶다'는 선언과 함께 팀을 떠나기도 했다. 아펠은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취소됐던 마이너리그 시즌이 재개된 2021년 다시 복귀했고 지난해 더블A와 트리플A에서 시즌을 치렀다. 성적은 여전히 부진했고 더이상 그를 주목하는 이도 없었다.

그렇게 잊히는 듯했던 아펠에게 다시 기회가 왔다. 불펜으로 전향한 아펠은 올시즌 트리플A에서 19경기 28이닝, 5승 5세이브, 평균자책점 1.61의 호성적을 기록했고 필라델피아는 불펜에 결원이 생기자 그를 콜업했다. 그리고 아펠은 이날 드디어 프로 입단 9년만에 빅리그 데뷔전을 치렀다. 30세 349일의 나이. 아펠은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많은 나이로 빅리그 데뷔전을 치른 전체 1순위 지명자가 됐다.

MLB.com에 따르면 아펠은 "음악은 점점 커지고 눈앞은 점점 밝아졌다. 필라델피아 팬들은 정말 대단했다. 사람들이 나를 향해 환호하는 것을 들었다. 정말 특별한 순간이었다"고 빅리그 마운드에 처음 오른 순간을 돌아봤다. 긴 방황의 시간을 지나온 아펠은 "길을 잃었었다. 마치 희망이 모두 사라진 것 같았다. 꿈은 영원히 현실로 다가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정말 울음을 꾹 참고 있었다"며 "모든 것이 특별한 한 해다. 그저 모든 것에 감사한다. 작년 챔피언을 상대로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현실이 아닌 것만 같다"고 데뷔전 소감을 밝혔다.

특별한 데뷔전을 치렀지만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다. 드래프트 지명으로부터 벌써 9년이나 지났다. 올시즌 처음으로 마이너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쓴 아펠은 필라델피아의 중요 전력이 아니고 팀이 아끼는 유망주도 아니다. 부상 선수가 돌아오면 가장 먼저 자리를 잃게 될 선수가 바로 아펠이다. 어쩌면 데뷔전이 마지막 빅리그 등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반대로 방황의 시간을 이겨내고 늦깎이 성공을 거두는 빅리거가 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곧 31세가 되는 아펠은 어린 선수가 아니지만 그리 많은 나이도 아니다. 시속 97마일이 넘는 강속구를 던질 수 있는 투수고 작년 우승팀을 상대로 1이닝을 확실하게 막아낼 수 있는 능력도 있다.

최고의 재능을 가졌음에도 뼈아픈 실패를 겪고 힘겨운 시간을 보낸 아펠은 드디어 그토록 염원하던 '메이저리거'가 됐다. 빅리거로서 첫 발을 뗀 아펠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자료사진=마크 아펠)

뉴스엔 안형준 markaj@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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