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뜰] 풀과의 전쟁, 지성무식(至誠無息)

2022. 7. 1.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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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지나고 여름이 익어가는 이맘때면 풀과의 전쟁에 전 국토는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이 기간에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무기를 총동원해 풀과 인간의 전면전이 벌어진다.

그 추웠던 겨울에 죽었으리라 생각했던 풀이 때가 되면 나와서 인간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그 정도면 질리고 질렸을 풀을 상대하며 놀이니 명상이니 이름을 붙여 그들의 도전에 꿈쩍도 않고 상대하는 인간의 모든 행위 이면에는 성실이라는 우주의 본질이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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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도 없이 자라나는 풀과
만물의 존재 방식은 성실
쉬지 않는 지극한 성실은
세상 바꾸는 힘으로 작동
익어가는 여름 풀과 대결
내안의 성실 실천하는 것


봄이 지나고 여름이 익어가는 이맘때면 풀과의 전쟁에 전 국토는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다. 이 기간에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무기를 총동원해 풀과 인간의 전면전이 벌어진다. 호미와 낫으로 무장한 보병 부대, 예초기를 든 기계화 부대, 제초제를 사용하는 화학전 부대, 비닐로 무장한 원천봉쇄 부대는 합동작전을 펼치며 논과 밭, 정원과 마당에 끝도 없이 자라나는 풀과 한판 대결한다.

어떤 사람은 이 전쟁이 싫어서 농촌을 떠나 도시 아파트로 이사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 전쟁터에서 맡는 풀의 ‘피 냄새’가 좋아 농촌으로 이사했다고도 한다. 그래서 풀과의 전쟁은 어떤 사람에게는 노동과 혐오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놀이와 명상의 시간이기도 하다.

깎고 뒤돌아서면 또 자라나는 풀을 보면서 ‘도대체 무슨 이치가 있길래 저 풀은 끝도 없이 자랄까?’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그래! 성실이다. 풀은 성실하니까 저렇게 쉬지 않고 자라는 것이다. 낮에도 밤에도 쉬지 않고 자라는 성실함이 저 풀을 자라게 하는 힘이다.’ 성(誠)은 인간의 단어가 아니라 애초에 자연의 단어였다. 만물의 존재 방식은 성실이다. 성실하지 않으면 존재도 없다. 물과 공기와 먹이를 성실하게 섭취하고 온몸의 세포가 쉬지 않고 성실하게 기능한 덕분에 비로소 만물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쉬지(息) 않는(無) 무식(無息)한 성실이 저 풀을 자라게 하고 그 풀에 대항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극한 성실(至誠)은 무식(無息)한 것이다. 지성무식(至誠無息), <중용>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우주의 생성 비밀이다.

우주가 존재하기 훨씬 이전, 조그만 씨 하나가 쉬지 않고 무식하게 성실해서 세상은 비로소 만들어졌다. 그렇게 성실하게 오랜 시간이 지나자 땅은 점점 두터워지고 하늘은 점점 높고 밝아지게 됐다. 두터운 땅 위에는 생명체가 살기 시작했고 높은 하늘에는 반짝이는 해와 달과 별이 나무에 달린 사과처럼 매달리게 됐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작은 성실함이 있으면 저절로 드러나게 되고 드러나면 분명해지고 분명해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감동이 일어나고 감동이 일어나면 변화가 시작되고 변화가 시작되면 동화돼 결국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으로 작동된다. 세상의 모든 시작도 성실이요 그 끝도 성실이다. 불성무물(不誠無物), 성실이 없다면 존재도 없다. <중용>에서 말하는 천지창조의 비밀이다.

중학교 시절 교훈은 근면·성실·정직이었다. 그땐 성실이 그냥 말썽 안 피우고 어른들 말씀 잘 듣고 학교 결석하지 않고 가는 것으로 생각했다. 성실은 그보다 훨씬 높은 차원의 개념이라는 것을 나이 먹어서야 깨달았다.

그 추웠던 겨울에 죽었으리라 생각했던 풀이 때가 되면 나와서 인간에게 도전장을 내밀고, 그 정도면 질리고 질렸을 풀을 상대하며 놀이니 명상이니 이름을 붙여 그들의 도전에 꿈쩍도 않고 상대하는 인간의 모든 행위 이면에는 성실이라는 우주의 본질이 살고 있었다. 뒷마당 장독대에서 정화수 떠놓고 자식 잘되기를 비는 어머님의 지성(至誠)이 하늘을 감동(感天)하게 하는 힘이라는 것을 이제 알았다. 태초에 성(誠)이 있었으니 그 성이 세상을 짓고 키우고 만들었다.

이제 풀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나를 죽이려고 달려드는 풀이 아니라 본성에 충실한 것뿐이다. 풀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내가 아니라 내 안의 성실을 실천하려는 것뿐이다. 더위가 익어가는 여름날 성실의 무식(無息)함에 반했다.

박재희 (석천학당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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