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숲] 양파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

2022. 7. 1. 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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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산골에도 양파를 재배하는 농장이 생겼다.

양파는 그동안 경남북과 전남에서 주로 생산했는데, 최근에는 강원에서도 재배하기 시작한 것.

그날 양파밭에서 쓰러져 누운 양파들을 곰곰이 생각하며 며칠을 지내다가 양파가 던져준 시 몇줄을 건졌다.

"그래서 양파는 벗기고 벗겨도 또 벗길/깊은 속을 지니게 된 거라고/그래서 양파는 저를 까는 사람 눈물 쏙 빼놓을 만큼/매운맛을 지니게 된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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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산골에도 양파를 재배하는 농장이 생겼다. 양파는 그동안 경남북과 전남에서 주로 생산했는데, 최근에는 강원에서도 재배하기 시작한 것. 급격한 기후변화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얼마 전 대량으로 양파를 재배하는 농장 옆을 지나는데, 푸른 잎들이 일제히 옆으로 쓰러져 있었다. 양파의 생태를 잘 모르는 나는 쓰러져 있는 양파를 궁금한 시선으로 들여다보고 있는데, 마침 풀을 뽑고 있던 주인이 내 곁으로 다가왔다.

“왜 저렇게 푸른 양파 잎들이 다 누웠죠?”

양파밭 주인이 웃으며 대꾸했다. “도복(쓰러짐)이라고 하는데요. 양파는 저렇게 옆으로 쓰러지면서 수확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걸 미리 알려줘요. 저 죽을 때를 모르는 사람보다 낫죠!”

“하하하…. 정말 똑똑한 식물이군요.”

양파밭 주인은 식물이 저 죽을 때를 모르는 사람보다 낫다고 했지만, 식물을 연구해온 학자들은 식물도 인간 못잖은 지능이 있다고 말한다. 일찍이 진화생물학자인 찰스 로버트 다윈도 숱한 실험을 통해 더 진화하거나 덜 진화한 생물은 없다고 못박으면서 식물도 지능이 있는 존재임을 밝혔다. 이를테면 뿌리 부분에는 식물의 활동을 제어하는 일종의 지휘본부가 존재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이런 다윈의 주장을 양파와 연관 지어 추정해보면, 수확철이 가까워진 뿌리가 잎들에 ‘도복’을 명령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결실의 때가 됐으니 더이상 꼿꼿이 서서 광합성을 하느라 애쓸 필요가 없다고.

양파는 사람에게 자신을 먹거리로 내줄 뿐만 아니라 사람의 질병을 치료하는 약으로 선택되기도 한다. 양파뿐 아니라 식물 대부분이 자신의 건강에 필요한 것보다 많은 양의 화학물질을 만들어낸다는 건 이미 알려져 있다. 이런 치유물질의 분비를 통해 식물군락과 생태계의 건강을 지켜주는 것. 북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사람이 병들면 그 병을 치유하는 데 필요한 식물이 나타나서 환자가 그 식물을 발견하도록 도와준다고 했다. 그렇다면 식물은 다른 식물과 곤충, 고등동물과 같은 자신의 주변환경과 의사소통을 하는 가운데 어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지능적 생물이란 말이 아닌가. 즉 고통받는 다른 생명체에 측은지심이나 연민조차 느낄 줄 아는 존재라는 말이 아닌가.

스테파노 만쿠소가 쓴 <매혹하는 식물의 뇌>를 보면 최근 식물학자들은 한발 더 나아가 식물도 인간처럼 오감(五感)을 갖고 있다고 주장한다. 식물의 오감 능력이 동물이나 인간보다 더 예민하다고 하니, 우리는 식물을 무생물처럼 취급해온 삶의 태도를 반성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식물과 공존하는 지혜를 새롭게 터득해야 하지 않을까.

그날 양파밭에서 쓰러져 누운 양파들을 곰곰이 생각하며 며칠을 지내다가 양파가 던져준 시 몇줄을 건졌다. “그래서 양파는 벗기고 벗겨도 또 벗길/깊은 속을 지니게 된 거라고/그래서 양파는 저를 까는 사람 눈물 쏙 빼놓을 만큼/매운맛을 지니게 된 거라고.”

그렇다. 식물들은 자신이 돌아가야 할 때를 알고 있지만 사람들처럼 떠벌리지 않는 고요한 침묵을 사랑할 만큼 ‘깊은 속’을 지니고 있고, 다른 생명을 살리는 치유의 에너지인 ‘맛과 향’을 지닌 거라고.

고진하 (시인·잡초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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