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410) 무신정변

2022. 7. 1.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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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향해 분노폭발한 무신
어느날 밤 연회장 난입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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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고금, 무릇 나라에선 문신이 무신을 지배해왔다. 책만 읽던 서생이 창검을 휘두르던 무신을 졸로 부리는 것이다. 이것은 만고불변의 불문율이 돼 문신은 무신을 항상 얕잡아 본다. 피 튀기는 전쟁이 일어나면 문신은 무신의 등을 떠밀어 목숨을 걸도록 하고 책만 보던 문신은 뒤에 숨어 싸움만 지켜보다가 누가 잘했느니 누가 못했느니 따지기만 하는 것이다. 하오나 무신이 화가 끓어올라 임계점을 넘으면 참혹한 피바람이 몰아친다.

1146년 고려는 17대 임금인 인종이 물러나고 18대 의종이 즉위했다. 의종은 부국강병에는 관심이 없고 허구한 날 가무음곡에 주색잡기를 즐겼다.

불볕더위가 한풀 꺾이고 서늘한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초가을 어느 날. 그날도 의종은 문신에게 둘러싸여 나들이에 나섰다. 흥왕사에서 질펀하게 한바탕 잔치를 벌일 동안 무신들은 쫄쫄 굶으며 창칼을 잡고 호위만 했다. 일차 연회를 마치고 오곡이 익어가는 들판을 가로질러 보현원으로 향했다. 경치 좋은 냇가에서 의종의 명으로 행렬이 멈췄다.

“산 좋고 물 좋은 이곳에서 쉬었다 가자꾸나.”

문신들은 의종을 둘러싼 채 술상 앞에 앉고 무신들은 칼과 창을 놓고 ‘오병수박희(五兵手搏戱)’를 준비했다. 수박은 고구려 때부터 내려온 우리네 무술로, 맨손으로 싸우는 기술인데 군졸들에게 그나마 한줄기 위안이 됐다. 수박에서 출중한 실력을 드러내는 졸병은 일약 특진을 할 수 있었고 왕이 그들의 무술을 지켜보고 관심을 둔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기골이 장대한 젊은 졸병이 빼어난 실력으로 연전연승하자 의종 곁에서 달콤한 말만 일삼는 한뢰가 말했다.

“재미가 없네요. 졸개들만 서로 붙지 말고 장군들이 나가봐요. 자, 대장군 이소응이 나가신다.”

이소응이 우물쭈물하자 의종은 “뭘 하는가, 저 독불장군에게 한수 가르쳐주지 않고” 했다. 대장군 이소응이 가만히 보니 기가 막혔다. 자신은 회갑이 지나 백발이 성성한데, 젊은 졸병은 키가 육척에 나이는 아들뻘도 되지 않으니 결과는 보나 마나 였다.

의종이 박수를 치자 이소응은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삼합도 치르지 않아 그는 주저앉고 말았다. 한뢰가 걸어오더니 이소응의 뺨을 갈기며 “무엄하게 폐하 앞에서 대장군이 졸병에게 항복을 하다니!” 하고 소리쳤다. 보다 못한 상장군 정중부가 “네 이놈, 종5품 주제에 감히 정3품 대장군의 뺨을 때리다니”라며 다그치더니 “폐하를 에워싼 저런 간신배는 처단해야 마땅한 줄 아룁니다” 하고 말했다.

한뢰란 놈은 오히려 “폐하 앞에서 큰소리치는 저런 무뢰한은 역심을 품은 놈입니다” 하며 반격했다.

때는 이때다. 이고와 이의방이 분노의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칼자루를 잡고 거사를 일으키려는데 정중부가 눈을 찡긋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는 신호다.

개경으로 환궁하느냐 보현원으로 가느냐. 급박한 상황에서 역사는 기어코 후자를 택했다. 의종 행렬이 보현원에 당도했을 때는 밤공기가 싸늘했고 따뜻한 실내엔 주지육림(술로 만든 못과 고기로 이룬 숲) 연회 수라상이 차려져 있었다.

젊은 장수 이고와 이의방이 정중부를 다그쳤다.

“상장군은 수염이 태워지고 대장군은 뺨을 맞는 이 더러운 세상에서 아직도 좌고우면하십니까.”

몇년 전 연회에서 내시 김돈중이 상장군 정중부의 수염을 태워 연회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이고와 이의방이 참담했던 그 치욕을 일깨워 정중부의 오장육부를 뒤집어놓았다.

“문신 놈들은 모조리 척살하라.”

정중부가 호랑이 같은 목소리로 밤 공기를 찢으며 연회장 문을 발로 차 부수자 무신들이 난입해 피바다를 이뤘다.

“한뢰는 죽이지 마라.”

모두 눈이 둥그레지자 누군가가 “대장군이 손수 처단하시오”라고 말했다.

곤룡포(임금이 입는 정복)를 붙잡고 목숨을 구걸하는 한뢰를 대장군 이소응이 의종 앞에 패대기쳤다. 먼저 철퇴로 오른다리 뼈를 으깨놓고 다음은 왼다리 그다음은 오른팔·왼팔, 마지막으로 머리를 내리쳤다. 한뢰의 머리가 터지며 피가 튀자 의종의 얼굴이 검붉게 물들었다. 정중부는 태연한 척 의종을 앞세워 환궁, 또 다시 문신들을 닥치는 대로 척살했다. 금세 시신들이 산을 이루고 머리는 여기저기 굴러다녀 발에 채였다. 이렇게 무지막지한 무신정권이 고려 흑역사를 백년이나 이어가는 서막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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